루닛 창업자 백승욱 전 대표와 서범석(오른쪽) 대표이사./루닛

상장 4년차 국내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루닛(328130)이 외형 성장에는 성공했지만, 적자 확대와 현금 고갈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파트너십과 인수합병(M&A), 국책 과제 선정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지만, 매년 이어지는 적자에 현금성 자산이 빠르게 줄고 있다. 루닛은 세 차례나 흑자 전환 시기를 미루며 2027년을 목표로 제시했지만, 현재의 재무 구조로는 달성이 쉽지 않다는 평가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루닛은 최근 인건비 절감을 위해 전체 인력의 15%를 줄이는 구조조정을 마쳤지만, 불어나는 적자로 인해 흑자 전환과 관리종목 지정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지난해 인수한 뉴질랜드 볼파라 헬스 테크놀로지와의 통합 과정에서 추가 비용이 불가피해, 남은 현금이 올해 안에 바닥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불어나는 적자에 2027년 흑자전환 불투명…법차손 리스크도

루닛은 2022년 기업공개(IPO) 이후 지난해까지 매년 적자를 냈다. 2022년 506억원, 2023년 422억원에 이어 지난해 676억원으로 규모도 해마다 커지고 있다. 다올투자증권은 루닛의 올해 3분기 영업손실이 전년 동기 대비 16.5% 늘어난 192억원으로, 올해 연간 적자 규모는 8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2027년 흑자 전환도 불투명하다. 금융데이터 업체인 에프앤가이드 전망치(컨센서스)에 따르면 루닛의 적자는 2026년 460억원, 2027년 105억원 수준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회사의 대표 제품인 AI 암 진단 플랫폼 '루닛 인사이트'와 AI 암 치료 바이오마커 플랫폼 '루닛 스코프'의 매출이 증가한다고 해도 흑자 전환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기업에 대한 신뢰도 하락도 문제다. 서범석 루닛 대표는 상장 당시 2024년 1000억원 매출과 흑자전환을 목표로 제시한 뒤, 목표 시기를 2025년, 2027년으로 두 차례 미뤄 주주들의 불만을 샀다. 루닛 주주 커뮤니티에는 "더 이상 신뢰가 안 간다"는 반응이 빗발친다.

2022년 기술성장특례로 상장한 루닛은 지난해까지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법차손) 규제에서 면제됐지만, 상장 4년차인 올해부터는 규제 대상이다. 만약 올해부터 2027년까지 3년간 2회 이상 자기자본 대비 법차손 비율이 50%를 넘으면 관리종목 지정되고, 최악의 경우 상장폐지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해 루닛의 법차손 비율은 50.5%로 이미 기준선을 넘겼다. 올해 적자 규모가 예상대로 800억원대로 확대되면, 내년부터는 관리종목 지정 리스크가 현실화된다.

현금성 자산도 빠르게 줄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현금성 자산은 664억원으로 연간 인건비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올해 2분기에는 이 자산이 417억원으로 줄었다. 평균 임금이 높은 개발 인력 15%를 줄였지만, 추가 지출이 발생하면 단기간 내 자금난을 피하기 어렵다.

그래픽=손민균

◇비용 절감·사채 발행으로 '버티기' 시도…"단기 연명책일 뿐"

회사는 매출 확대를 통해 돌파구를 찾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GE헬스케어, 필립스, 후지필름 등 글로벌 기업과 차세대 의료 AI 솔루션 공동 개발을 진행 중이지만, 아직 이로 인한 매출은 발생하지 않았다.

전체 매출의 약 90%가 해외에서 나오고 있는 만큼, 자회사 볼파라를 중심으로 해외 영업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볼파라 법인을 '루닛 인터내셔널·아메리카'로 변경하며 글로벌 조직 재편도 마쳤다.

루닛 관계자는 "최근 본사 영업 인력을 볼파라에 배치해 해외 매출 확대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며 "자사 제품을 도입한 의료기관은 지난해 4800곳을 돌파했고, 이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R&D 투자 확대, 클라우드 시스템 구축, 정부 과제 수행 등으로 추가 비용 부담은 불가피하다. 최근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AI 특화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수행기관으로 선정돼 연구비 지출도 늘어날 수 있다.

루닛은 유상증자 대신 지분 희석 없는 자금 조달 방법을 찾고 있다. 현재 볼파라 지분을 담보로 한 1000억원 규모 사모사채 발행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회사 관계자는 "내년부터 현금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사모사채 발행 외에도 다양한 자금 조달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단기 유동성 확보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사모사채를 발행해도 내년부터 손실을 500억원 이하로 줄이지 못하면 관리종목 지정 위험을 피하기 어렵다"며 "올해 조달은 단기 연명책에 불과하고, 지금 같은 손실 구조가 이어지면 2027년 흑자전환은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담보형 사채 발행은 투자자 신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