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과 당뇨 환자가 급증하면서 대사이상 지방간염(MASH) 치료제 시장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승인된 치료제는 단 2종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기존 치료제 대비 경쟁력을 입증하지 못한 글로벌 제약사들이 잇따라 신약 개발을 중단하면서, 개발을 이어온 국내 기업들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MASH는 한동안 비알콜성 지방간염(NASH)으로 불리다, 대사 요인을 강조하기 위해 지난해 글로벌 간학회가 MASH로 공식 명칭을 바꿨다. 대사는 인체가 영양분을 분해해 에너지를 얻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과정을 말한다. MASH는 음주와 무관하게 이 과정에 문제가 생겨 지방이 간에 쌓이고 염증과 손상을 일으키는 질환으로, 간이 딱딱하게 굳는 간경화, 간암으로 진행될 수 있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AZ)는 6일(현지 시각) 항감각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 계열 신약 후보물질 'AZD2693'의 개발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회사는 이날 3분기 실적 보고서에서 "MASH·간섬유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2b상 임상에서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대신 일본 다이이찌산쿄와 공동 개발한 항체약물접합체(ADC)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트주맙 데룩스테칸)와 후속 약물인 다트로웨이(다토포타맙 데룩스테칸)에 이어 차세대 ADC 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다.
MASH 개발을 중단한 곳은 아스트라제네카뿐이 아니다. 앞서 미국 화이자도 MASH 병용요법을 포함해 11개 연구개발(R&D)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군)을 정리했다.
화이자는 간섬유화 환자 대상 단독요법 임상에서 개발을 중단했던 클레사코스타트를 DGAT2 억제제 에르보가스타트와 병용해 다시 임상시험에 돌입했으나, 이번에 프로젝트를 공식 종료했다. 이 병용요법은 2022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MASH 치료제 우선심사(패스트트랙) 대상으로 지정까지 받았던 후보물질이다.
현재까지 FDA 승인을 받은 MASH 치료제는 지난해 3월 최초로 승인된 미국 마드리갈 파마슈티컬스의 레즈디프라(레스메디롬)와 지난 8월 비만에서 MASH로 영역을 넓힌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뿐이다. 다만 두 약물 모두 간경변 전 단계 환자에게만 사용할 수 있어, 후기 환자용 치료제 개발이 여전히 필요하다.
노보 노디스크는 최근 MASH 치료용 짧은간섭리보핵산(siRNA) 후보물질 2종(NN-6581, NN-6582)의 임상시험을 중단했다. RNA는 디옥시리보핵산(DNA)의 유전 정보를 복제해 단백질을 합성하는데, 크기가 작은 RNA인 siRNA가 세포에서 특정 유전자가 단백질을 합성하는 것을 막는다.
노보 노디스크는 siRNA 후보물질 대신 지난달 7조원에 인수한 미국 아케로 테라퓨틱스로부터 차세대 MASH 치료 물질을 확보했다. 아케로가 개발 중인 섬유모세포 성장인자 21(FGF21) 유사체 계열 후보물질인 에프룩시퍼민은 현재 임상 3상 시험 단계에 있다. FGF21은 간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혈당과 중성지방을 낮추고 에너지 대사와 지방 활용, 지질 배설을 증가시킨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MASH 파이프라인을 잇따라 접는 사이, 국내 기업들이 새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한미약품(128940)은 MASH 신약 후보물질 2종을 개발 중이다. 자체적으로는 한국과 미국에서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글루카곤(GCG)·위억제펩타이드(GIP) 삼중 작용제인 '에포시페그트루타이드'의 임상 2b상을 진행하고 있다.
또 하나는 GLP-1·GCG 이중 작용제인 '에피노페그듀타이드'로, 2020년 미국 머크(MSD)에 기술 이전했다. 연말 임상 2b상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으며, MSD가 임상 3상 시험에 진입할 경우 블록버스터(연 매출 1조원 이상 의약품)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디앤디파마텍(347850)도 GCG와 GLP-1 이중 작용제인 DD01의 미국 임상 2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FDA의 패스트트랙으로도 지정받았다. 회사는 임상 2상 중간 결과에서 간 내 지방을 30% 이상 줄이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DD01 투약군의 12주차 평균 지방간 감소율은 62.3%로, 위약군(8.3%) 대비 유의미하게 높았다. 회사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글로벌 기술이전을 추진 중이다.
지난 2월 9000억원 규모로 미국 일라이 릴리에 OLX702A을 기술 이전한 올릭스(226950)도 주목받고 있다. OLX702A는 이번에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을 중단한 siRNA와 같은 계열 물질이다. 올릭스는 전임상에서 간 내 지방 감소 효과를 확인했고 현재 호주에서 MASH와 기타 심혈관·대사 질환 관련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릴리는 위고비와 경쟁 중인 비만 치료제 마운자로(티르제파타이드)도 MASH 치료제로 자체 개발 중이다. 여기에 올릭스로부터 이전받은 siRNA 후보물질도 MASH 치료제로 개발 중인 위고비와의 경쟁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