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동제약 본사. /일동제약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와 '마운자로(티르제파타이드)' 등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주사제가 장악해온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에 저분자 경구용(먹는) 약이 새로운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주사 대신 알약으로 간편하게 복용할 수 있고, 생산 단가가 낮은 데다 부작용도 적기 때문이다. 내년 미국 일라이 릴리의 경구용 비만 신약 출시를 시작으로 개발 경쟁이 본격화할 전망인 가운데, 국내에서는 일동제약(249420)이 가장 앞서 임상시험 데이터를 확보하며 첫 기술수출 가능성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제약사들은 저분자 비만 알약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보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 일동제약의 신약개발 자회사 유노비아가 임상 1상 시험에서 경쟁 물질보다 우수한 효능을 입증했다. 회사는 하루 한 번 복용하는 먹는 GLP-1 후보물질(ID110521156)을 개발 중이다.

국내 성인 36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1상에서 고용량(200㎎) 투약군의 4주 뒤 평균 체중 감소율은 9.9%(8.8㎏)로, 릴리의 경구용 비만약 오포글리프론(6.4%)이나 스위스 로슈의 후보물질(7.3%)보다 높은 수치다. 특히 일동제약은 "간 기능 지표가 오히려 개선됐고, 투약 후 이상사례도 모두 경미해 간독성 우려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비만 치료제 시장은 위고비·마운자로의 한계로 꼽히는 위장관 부작용, 투약 중단 후 요요현상(체중증가), 근손실 등을 극복한 차세대 비만약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기술을 가진 기업들에 대해 글로벌 제약사의 인수합병(M&A)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로슈, 아스트라제네카, 미국 머크(MSD) 등 15개 이상의 후보물질이 개발 중이며, 국내에서도 한미약품(128940), 일동제약 등이 개발에 나섰다.

일동제약이 개발 중인 후보물질은 펩타이드 의약품인 위고비·마운자로와 달리 화학 합성으로 만든 저분자 화합물이다. 복잡한 생명공학 공정이 필요하지 않아 대량 생산이 쉽고 제조 단가가 낮다. 반감기가 길고 경구 제형 개발이 용이해 복용 편의성과 경제성도 갖췄다.

펩타이드는 단백질을 이루는 조각이다. 펩타이드 기반 신약은 체내 소화 과정에서 대부분 분해돼 알약 형태로 만들기 어렵지만, 그보다 분자량이 훨씬 적은 저분자 화합물은 이런 제약이 없다. 실제로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신약의 상당수가 저분자 화합물이다.

다만 GLP-1 계열 약물은 분자 구조가 복잡해 합성이 까다로워 지금까지 개발 성과가 부진했다. 미국 화이자와 턴스(TERNS) 등은 개발을 중단했고, 로슈와 아스트라제네카 역시 기존 약물보다 개선된 결과를 내지 못했다. 간 기능 이상 등 부작용으로 용량을 늘리기 어려운 점이 주요 실패 원인이었다.

릴리의 오포글리프론은 이러한 기술 장벽을 넘었다. 오포글리프론은 주 1회 주사제 마운자로의 뒤를 이을 저분자화합물 기반의 차세대 비만약으로, 2018년 일본 쥬가이제약에서 기술을 도입해 개발했다.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심사를 받고 있다.

임상 3상에 성공한 오포글리프론을 제외하면, 화이자의 다누글리프론이 가장 앞선 후보였지만 지난 3월 부작용 문제로 개발 중단되면서, 현재는 일동제약을 비롯한 임상 1상 단계의 신약들이 선두 그룹에 올랐다.

SK증권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현재 릴리의 오포글리프론 외에는 먹는 저분자 비만약의 공급이 거의 없다"며 "일동제약이 첫 빅파마 기술이전 계약을 성사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기술이전 규모는 앞서 경쟁사의 계약 규모를 웃도는 1조5000억~4조원 수준으로 전망했다.

최형진 서울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는 "펩타이드 약물은 기존 수용체 결합 구조를 기반으로 개선이 가능하지만, 저분자 약물은 처음부터 수용체에 잘 결합하는 물질을 새로 설계해야 해 훨씬 어렵다"며 "동물 모델 실험이 까다롭고 간독성 등 부작용 위험도 높다는 점도 개발의 한계였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먹는 형태의 편의성, 저렴한 생산비와 간단한 유통·보관, 새로운 작용 기전을 활용한 복합제 개발 가능성은 제약사 입장에서 큰 장점"이라며 "새로운 작용 기전을 바탕으로 다른 약물과의 복합제 개발 가능성도 높아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미국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메디컬센터 연구진과 함께 GLP-1 유사체가 뇌에서 시상하부 가운데와 등쪽에 있는 신경세포를 통해 포만감을 높인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규명해 지난해 사이언스에 발표한 의사과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