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승인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는 새 가이드라인의 방향을 공개했다. 불필요한 임상시험을 줄여 개발비를 낮추고, 시장 진입 문턱을 낮추겠다는 취지다.
29일(현지 시각) FDA는바이오시밀러가 오리지널 의약품과 얼마나 동등한지를 평가할 때 적용할 새로운 임상시험 기준 초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절차를 단순화하고, 꼭 필요하지 않은 비교 임상 효능시험(CES)을 생략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최종 지침은 3~6개월 내 확정될 예정이다.
이번 조치는 도널드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한 약가 인하 정책의 일환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제네릭(화학합성의약품 복제약)과 바이오시밀러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복제약 도입을 확대해 국민의 약값 부담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제네릭과 바이오시밀러는 모두 특허가 끝난 오리지널 의약품을 대신하는 복제약이다. 다만 제네릭은 화학 성분을 합성해 만들기 때문에 완전히 똑같은 약을 만들 수 있지만, 바이오시밀러는 세포를 배양해 생산하는 단백질 의약품이라 제조·임상시험 과정이 훨씬 복잡하다. 생산 환경이 조금만 달라도 품질이 변할 수 있어 개발 기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FDA 새 지침의 목표는 바이오시밀러를 제네릭 수준으로 단순화해 약값을 낮추고 경쟁을 촉진하는 데 있다. 현재 바이오의약품은 전체 처방의 5%에 불과하지만, 약제비의 절반 이상(51%)을 차지하고 있다. FDA에 따르면 지금까지 76개의 바이오시밀러가 승인됐지만, 특허 만료를 앞둔 오리지널 의약품 중 실제 바이오시밀러로 개발이 진행 중인 건 10%에 불과하다.
FDA는 "복잡한 승인 절차가 시장 진입을 막고 있다"며 "새 지침을 통해 개발비를 최대 90%까지 줄이겠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비교 임상시험에만 평균 1~3년, 약 2400만달러(한화 346억원)가 들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약효 차이를 가려내는 정확도가 낮아 비효율적이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새 지침에 따르면 바이오시밀러 개발사는 사람 대상 임상시험 대신, 세포 실험으로도 약효 차이를 입증할 수 있다. 기존에는 오리지널 약과 번갈아 투여해 동등성을 확인하는 '교차 투여 시험(switching test)'도 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이런 절차가 대부분 생략된다.
또 동물 독성시험이나 면역 반응 시험, 효능 시험 등도 대부분 폐지되거나 면제된다. 다른 국가의 기준으로 만든 의약품이라도 동일성만 입증되면 미국에서도 인허가를 받을 수 있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Robert F. Kennedy Jr) 미국 보건부 장관은 "이번 개혁은 약값을 내리고 경쟁을 확대하기 위한 핵심 조치"라며 "복잡한 절차가 사라지면 더 많은 저렴한 치료제가 시장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마티 마커리(Marty Makary) FDA 국장은 "바이오시밀러는 암, 자가면역질환, 희귀질환 환자들의 의료비를 크게 줄일 잠재력이 있다"며 "이번 간소화로 환자 접근성을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FDA는 이번 개편을 시작으로 오리지널 의약품의 중복 특허 제한과 국제 기준 통합도 추진할 계획이다. 각국 환자들이 더 저렴하고 공평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번 정책 변화는 미국 시장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에게도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셀트리온(068270) 등은 이미 다수의 바이오시밀러를 미국에 출시했거나 판매를 앞두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승인 절차가 단축되면 임상 부담이 줄어 제품 개발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며 "국산 바이오시밀러의 미국 시장 경쟁력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