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황반변성 치료제 시장을 독점해온 '아일리아(성분명 애플리버셉트)'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입하는 한편, 새로운 치료 방식의 차세대 신약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시장 재편이 빨라지는 모습이다./픽사베이

10년 넘게 황반변성 치료제 시장을 독점해온 '아일리아(성분명 애플리버셉트)'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입하는 한편, 새로운 치료 방식의 차세대 신약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시장의 급변이 예고된다.

황반변성은 망막에서 광수용체가 모여 있는 중심 부위인 황반이 노화로 손상돼 시력이 급격히 저하되는 질환이다. 심할 경우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황반변성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21년 98억4000만달러(한화 13조 원)에서 2028년 132억달러(18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아일리아 독주 막자"…차세대 신약 속속 등장

미국 리제네론과 독일 바이엘이 공동 개발한 아일리아는 2011년 출시 이후 10년 넘게 황반변성 치료제 시장 1위를 지켜왔다. 지난해 전 세계 매출은 13조60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스위스 로슈의 신약 '바비스모(Vabysmo)'가 2022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뒤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하며 시장 판도를 흔들고 있다.

아일리아가 시력에 나쁜 신생 혈관 생성을 유발하는 혈관 내피 성장 인자(VEGF)만 공략하지만, 바비스모는 VEGF와 함께 신생 혈관의 불안정성을 유발하고 혈관 누출을 증가시키는 안지오포이에틴-2(Ang-2)도 동시에 차단하는 이중항체로 치료 효과를 높였다.

의약품 시장조사업체 마켓스코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아일리아의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13% 감소한 21억달러(3조원)인 반면, 바비스모는 전년 대비 19% 증가한 13억달러(1조8600억원)를 기록했다.

미국 리제네론과 독일 바이엘이 공동 개발한 황반변성 치료제 '아일리아'(왼쪽)와 스위스 로슈가 개발한 '바비스모'./각 사

최근에는 미국 일라이 릴리도 유전자 치료제 개발사인 애드베럼을 약 1000억원에 인수하며 안과 질환 시장에 뛰어들었다. 애드베럼은 '익소벡(ixo-vec)'이라는 황반변성 유전자 치료제 후보물질을 갖고 있다.

기존 유전자 치료제는 수술을 통해 망막 아래로 투여하지만, 익소벡은 수정체 뒤쪽의 젤리 같은 유리체에 주사할 수 있다. 한 번 주사로 안구 내에서 애플리버셉트 농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도록 설계됐다. FDA와 유럽의약품청(EMA)의 우선심사 품목으로도 지정됐다.

국내에서도 신약 개발이 활발하다. 올릭스(226950)는 습성 황반변성뿐 아니라 건성·안구건조증 치료제의 2a상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며, 글로벌 제약사와 기술이전을 협의하고 있다. 압타바이오(293780)는 경구용 황반변성 치료제의 임상 1상 시험을, 이연제약(102460)도 뉴라클제네틱스와 습성 황반변성 유전자 치료제 'NG101'의 임상 1·2a상을 하고 있다.

◇바이오시밀러, 美 시장 출시 타이밍 경쟁

신약뿐 아니라, 아일리아를 복제한 바이오시밀러도 아일리아의 입지를 흔들고 있다. 아일리아의 물질특허는 미국에서 지난해 6월, 유럽은 올해 5월 만료됐다. 국내외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바이오시밀러 출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리제네론은 특허권을 연장하기 위해 바이오시밀러 개발사를 상대로 미국에서 제형·공정 관련 특허 소송을 제기했다. 아일리아의 전체 매출의 60%가 미국 시장에서 나오는 만큼, 바이오시밀러 진출을 막고 독점권을 연장하겠다는 의도다. 소송 대상 기업에는 산도즈, 암젠, 마일란은 물론, 국내 셀트리온(068270)과 삼성바이오에피스도 포함됐다.

현재까지 유일하게 소송에서 승소한 암젠은 내년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인 '파블루(Pavblu)'를 미국에 출시할 예정이다. 리제네론과 합의를 이룬 마일란은 내년 하반기 출시를, 셀트리온은 내년 말 미국 시장에 진출한다. 셀트리온은 이달 초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 '아이덴젤트(Eydenzelt)'로 FDA 허가를 받았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올해 5월 FDA로부터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 '오퓨비즈'의 품목허가를 받았지만, 아직 리제네론과의 합의를 이루지 못해 미국 시장 진출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2023년 1월 아일리아 물질특허가 만료돼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 모두 바이오시밀러를 출시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유럽 시장 진출도 준비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시밀러의 약가 경쟁력과 유전자 치료제를 비롯한 신약이 동시에 시장을 흔들 것"이라며 "향후 2~3년이 황반변성 치료제 시장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