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엽 네오켄바이오 대표는 23일 강릉 세인트존스호텔에서 열린 '제1회 강릉 천연물 바이오 국제 콘퍼런스'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그동안 군사시설 보호와 환경 규제로 성장이 더뎠던 접경지역이 규제 샌드박스로 지정되면서, 국산 의료용 대마 생산이 현실로 다가왔다"고 말했다./강릉=염현아 기자

"경기도 연천군과 DMZ(비무장지대)에서 의료용 대마(大麻·헴프) 생산과 재배가 가능해졌습니다. 이제 GMP(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 시설을 구축해 국산 의료용 대마를 해외로 수출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함정엽 네오켄바이오 대표는 지난 23일 강릉 세인트존스호텔에서 열린 '제1회 강릉 천연물 바이오 국제 콘퍼런스'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그동안 군사시설 보호와 환경 규제로 성장이 더뎠던 접경지역이 지난 9월 규제 샌드박스로 지정되면서, 국산 의료용 대마 생산이 현실로 다가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규제 샌드박스란 기업이 새로운 제품·기술 상용화를 위해 실증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유예 또는 면제해 주는 구역을 말한다.

의료용 대마는 대마의 꽃과 잎에서 추출한 칸나비디올(CBD) 성분을 활용한다. CBD는 중독성이 없고 통증 완화, 신경 안정 등 효과가 있어, 뇌전증·파킨슨병·치매·우울증·암 등 다양한 질환에 효과가 확인됐다. 대마가 치료제로 변신하려면 꽃·잎에서 CBD를 추출하고 환각과 중독을 유발하는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 함량을 0.3% 이하로 낮추는 정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의료용 대마 시장은 2032년 1080억달러(약 158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미 미국(38개 주)·캐나다·영국·독일·호주 등 56국이 의료용 대마를 허용했다. 마약에 보수적인 일본도 지난해 CBD 사용을 전면 허용했고, 프랑스 역시 관련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함정엽 네오켄바이오 대표(가운데)와 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 연구원들이 스마트팜에서 의료용 대마를 키우고 있다. 약용 물질을 많이 생산하는 신품종도 개발 중이다. /KIST

◇"기술력은 상용화 수준…규제 완화 분위기 뚜렷"

네오켄바이오는 2021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의 책임연구원이던 함 대표가 세웠다. 회사는 2021년 안동 규제자유특구(안동 특구)에서 국내 최초로 마약 성분을 완전히 제거하고, 치료 효과가 있는 CBD 성분만을 고순도로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함 대표는 "자체 기술로 경쟁사보다 더 많은 CBD를 한 번에 추출할 수 있어 생산 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네오켄바이오는 현재 고순도 CBD의 생산·제조와 함께, 항암제와 병용하는 차세대 항암 신약 개발을 위한 전임상 연구를 진행 중이다.

국내 의료용 대마 기술은 이미 상용화 수준에 근접했지만, 마약류관리법에 묶여 정작 임상시험이나 해외 수출의 관문인 GMP 시설 구축은 불가능했다. 의료용 대마 산업의 거점으로 출범한 안동 특구도 같은 한계에 부딪혔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신산업 규제 완화 기조를 내세우면서 업계의 기대감이 커졌다. 관련 법 개정이 아니더라도 대통령령 개정을 통해 규제가 완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6월 국회에서는 처음으로 '의료용 대마 활성화 토론회'가 열리며 논의가 본격화됐다.

경북 안동 규제자유특구 내 네오켄바이오의 CBD 스마트팜 모습./네오켄바이오

◇"항암·신경질환 치료 잠재력 커…해외 협력도 확대"

네오켄바이오는 이미 DMZ에서 CBD용 대마 시험 재배를 시작했다. 연천군에서 폐교된 대광중학교 부지에 GMP 시설을 세우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다만 GMP 설립 가능 여부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승인이 필요하다. 회사는 이곳에서 우수농산물관리기준(GACP)을 충족하는 CBD 스마트팜 구축 시범사업도 추진한다.

함 대표는 "접경지역 폐교나 유휴 군부지를 CBD 산업 거점으로 활용하면 보안과 안전을 확보하면서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며 "기후변화로 DMZ 내 콩 수확량이 줄면서 대체 작물이 필요했는데, 의료용 대마가 새로운 대안이 됐다"고 말했다.

안동 특구 역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네오켄바이오는 최근 이 지역의 1만8000평 부지를 추가로 확보했다. 경북도청 관계자는 "의료용 대마 생산을 위한 GMP 설립을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네오켄바이오는 CBD를 항암제와 병용해 부작용을 줄이고 치료 효과를 높이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KIST와 진행한 전임상 연구에서 CBD와 화학항암제 에토포사이드(Etoposide)를 병용 투여한 결과, 폐암 세포의 사멸이 촉진되는 효과를 확인했다.

연구진은 "두 약물이 세포 성장과 단백질 생성에 관여하는 신호경로를 차단해 비소세포폐암 세포의 생존율을 낮춘다"고 밝혔다. 비소세포폐암은 암세포가 큰 폐암을 말한다. 전체 폐암의 85%를 차지한다.

또 대마 성분의 염증성 장질환 완화 효과도 관찰돼 논문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국내 제약사와 진행한 CBD 병용요법 연구에서는 간암·대장암·췌장암 등에서 치료 효과를 확인했다. 해외 기업들과의 협력도 늘고 있다. 호주 기업과는 정신질환 치료제 공동 연구를, 일본의 칸나테크(CannaTech)와는 CBD 제품 제조 관련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GW파마슈티컬스의 CBD 뇌전증 치료제 '에피디올렉스'

◇"국산 CBD, 의료비 절감·건보 재정에도 도움"

세계 첫 의료용 대마 신약은 영국 제약사 GW파마슈티컬스의 뇌전증 치료제 '에피디올렉스(Epidiolex)'다. 201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으며, 지난해 매출은 9억7240만달러(1조4400억원)에 달했다. 올해는 연 매출 10억달러를 넘는 블록버스터 의약품 반열에 오를 전망이다.

한국은 2019년 CBD 치료제를 제한적으로 허용했지만 수입 약품인 탓에 한 달 약값이 3000만원에 이르고, 보험 적용도 까다롭다. 함 대표는 "CBD를 국내에서 고순도로 안정적으로 생산한다면 환자 부담은 물론 건보 재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게 바로 CBD 국산화가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CBD 자체로도 의료비 절감 효과가 있다. 실제로 미국 이스턴미시간대 연구에 따르면 의료용 대마가 합법화된 뒤 7년간 미국 건보 시장에서 의약품 지출이 평균 22% 감소했다. CBD가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나 고가 항경련제 처방을 대체한 것이다.

함 대표는 "의료용 대마는 국민에게 불안감을 주거나 위험한 성분이 아니라, 질병 치료와 산업적 가치가 있는 안전한 소재"라며 "국산 자체 기술로 고부가가치 산업을 키우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