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오난 첸(Luonan Chen) 중국 상하이 자오퉁대 석좌교수가 지난 23일 강릉 세인트존스호텔에서 열린 '제1회 강릉 천연물 바이오 국제 콘퍼런스' 직후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박수현 기자

"전기 회로와 생명 회로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생명 현상도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으로 볼 수 있죠."

루오난 첸(Luonan Chen) 중국 상하이 자오퉁대 석좌교수는 지난 23일 강릉 세인트존스호텔에서 열린 '제1회 강릉 천연물 바이오 국제 콘퍼런스'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첸 교수는 전기공학을 기반으로 시스템 생물학(Systems Biology)을 개척한 세계적 석학이다. 시스템 생물학은 유전자, 단백질, 세포 간의 상호작용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이해하는 학문이다. 학사부터 박사까지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가 수학으로 생명 현상을 해석하는 길을 선택한 것은 30여 년 전 일이다.

첸 교수는 "전기 회로에는 이미 완성된 이론이 있었지만, 생물학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 넓었다"며 "생명도 결국 하나의 시스템이라면, 전기 회로처럼 수학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가상 공간에서 세포 시스템 구현"

그는 생체 리듬을 수학으로 해석하는 연구부터 시작했다. 인간이 24시간 주기로 활동하는 생물학적 시계를 하나의 수학적 모델로 만든 것이다. 첸 교수는 "햇빛이 없어도 생체 시계는 일정한 주기로 움직인다"며 "우리는 이를 동역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의 연구는 인공적으로 생명 시스템을 설계하는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과도 연결됐다. 그는 "합성생물학은 생명을 단순히 이해하는 단계를 넘어 설계하는 학문"이라며 "이 역시 공학과 맞닿아 있다"고 덧붙였다.

합성생물학은 생명의 설계도를 특정 목적에 맞게 최적화하는 연구 분야이다. 대장균에서 원하는 물질을 생산하는 데 꼭 필요한 유전자만 남기고 생산성을 높일 다른 유전자는 추가하는 방식이다.

첸 교수는 향후 10년간 생명과학이 이해에서 설계로 옮겨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AI(인공지능)와 시스템 생물학이 결합하면서, 수학적으로 설계된 생명체가 현실이 될 것"이라며 "이 두 분야는 빠르게 융합해 새로운 혁신을 낳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세포와 장기를 가상 공간에 구현한 연구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미 DNA 정보를 복사한 RNA가 단백질을 합성하는 데이터를 활용한 기초 단세포 모델을 쓰고 있다.

첸 교수는 "몇 년 안에 다양한 생명 데이터를 통합한 고정밀 가상 세포 모델이 나올 것"이라며 "이는 신약 개발, 질병 예측, 인체 반응 시뮬레이션(모의 실험) 등에서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상 실험으로 질병 임계점 찾을 것"

첸 교수는 요즘 비선형 동역학과 AI를 결합한 새로운 데이터 과학, 이른바 '동적 데이터 과학(Dynamical Data Science)'을 연구하고 있다. 비선형이란 인과 관계가 일방적이지 않고 양방향인 것을 의미한다. 결과가 다시 원인에 영향을 주는 식이다. 생명체가 대표적인 비선형 현상이다.

그는 현재 데이터 과학의 토대인 통계는 효율적이지만, 시간에 따라 변하는 동적 변화를 잘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첸 교수는 "금융 시장이나 사회처럼 생명체에도 수많은 요인이 얽혀 있어서, 정교한 수학 모델을 만들어도 다른 데이터에서는 쉽게 깨진다"며 "그래서 '모델 중심'이 아니라 '데이터 중심' 접근에 동역학의 원리를 접목시키는 게 내 목표"라고 했다.

그는 건강한 상태에서 질병으로 전환되는 임계점을 예측하는 데 도전하고 있다. 첸 교수는 "질병이 발병하기 직전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면 조기 진단이 가능하다"며 "이런 연구는 통계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시스템의 시간적 변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자들은 통계적으로 유전자와 질병 사이의 상관 관계는 찾을 수 있지만, 실험 없이 인과 관계를 검증하긴 어렵다. 첸 교수는 실제 실험 대신 데이터 상에서 변수 X를 바꿔보며 결과 Y의 변화를 관찰하는 가상 개입 방법을 쓰고 있다. 그는 "실험 없이도 어떤 유전자를 조작하면 질병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