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백신연구소의 전략 전환을 본격화하겠습니다. 회사가 감염병에 좌지우지되지 않을 수 있도록 사업 구조를 개편할 계획입니다."
한성일 차백신연구소(261780) 신임 대표이사는 22일 서울에서 간담회를 열고 "지속 가능한 성장 구조를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차바이오텍(085660) 계열사인 차백신연구소는 2021년 코스닥에 기술 특례 상장했다.
이번 간담회는 지난 8월 한성일 대표이사 취임 이후 처음 마련된 자리다. 한 대표를 비롯한 주요 경영진들이 함께 회사의 중장기 성장 전략과 글로벌 사업 비전을 발표했다. 이날 한 대표는 "대상포진 백신과 면역항암제 중심으로 역량을 집중하고, 면역 증강제 플랫폼을 기반으로 기술 사업을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고려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퍼듀대에서 생화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에서 활동했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에서 연구개발 센터 구조 기반 신약 개발 부서장을 지내다 올해 6월 차백신연구소에 합류했다.
차백신연구소는 실적 개선이 중요한 과제다. 작년 영업손실은 76억9642만원으로 전년보다 적자가 확대됐다. 올해 상반기 기준 영업손실은 54억6274만여원, 순손실은 63억6066만여원으로 보고됐다. 이에 상장 폐지 위기에 놓일 수 있는 관리 종목 지정이라는 잠재 위험도 안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코스닥 상장 기업이 연 매출액 30억원 미만, 3년간 2회 이상 자기자본 대비 법차손 비율이 50%를 초과하면 관리 종목으로 지정한다. 기술 특례 상장 기업은 매출액 요건은 5년간, 법차손 요건은 3년간 유예된다. 유예 기간이 끝난 뒤 2년 연속 법차손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상장 5년째부터 관리 종목으로 지정될 수 있다.
차백신연구소는 올해로 상장 4년 차다. 매출액 요건은 2027년부터 적용되는데, 아직 백신 매출이 없어 가시적인 실적 개선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회사는 상업화 가능성이 높은 연구 개발 물질에 자원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미 내부적으로 조직 구조 일부를 조정하고 후보물질 발굴과 연구 개발에 인공지능(AI)을 도입하는 등의 비용 효율화 작업도 하고 있다고 했다.
회사가 현재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핵심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은 대상포진 예방 백신 후보물질 'CVI-VZV-001′이다. 임상 1상 시험에서 안전성과 100% 혈청 방어율이란 유효성(예방 효과)을 확인했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회사는 내년 임상 2상 시험을 기점으로 기술 이전과 글로벌 파트너십을 병행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경쟁 백신으로는 이미 상용화된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유전자 재조합 단백질 백신인 싱그릭스가 있다. 차백신연구소는 자사의 대상포진 예방 백신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봤다. 싱그릭스가 효능은 높지만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하고 가격이 비싼데, CVI-VZV-001은 이와 효능은 동등하면서도 국내 기술 기반으로 더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어 공급 불안정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려동물용 면역항암제 후보 CVI-CT-002도 회사가 기대하는 파이프라인이다. 회사가 원래 인간 대상 면역항암제로 개발하던 물질인데, 동물실험에서 치료 효과가 확인돼 반려견 유선암을 표적으로 개발 중이다. 동물용 의약품 개발이 막대한 개발 시간과 비용이 드는 인간 의약품보다는 용이한 데다 세계 동물의약품 시장이 커지고 있어 이를 캐시카우(수익원)로 노리고 있는 것이다.
회사에 따르면 CVI-CT-002의 파일럿 연구(임상 1·2상)에서 매주 1회 종양 내 투여를 3회 한 것만으로 100% 반응률을 확인했다. 최근 출시된 반려동물용 항암제는 매일 정맥 투여를 해야 하는 데다 반응률도 30%대로 알려졌다. 한 대표는 "현재 적응증 확장과 기술 수출 병행 전략을 추진 중"이라며 "2027년까지 피벗 연구(임상3상)를 완료하고 2027년 제품 출시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회사는 일본뇌염 백신 후보물질 CVI-JEV-001, B형간염 치료백신·예방백신 CVI-HBV-002도 개발을 지속한다고 밝혔다. 면역증강 플랫폼 사업을 확장해 나갈 방침이라고 했다. 한 대표는 "면역증강 플랫폼을 기존 재조합 단백질 백신 외에도 메신저리보핵산(mRNA) 등과 같은 다양한 모달리티(치료 접근법)를 활용해 백신 플랫폼 개발 사업을 다각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차백신연구소는 국제 기구인 CEPI(감염병혁신연합)의 '면역증강제 라이브러리' 사업에 선정돼 회사가 개발한 면역증강제 리포-팜(Lipo-Pam)을 전 세계 백신 기업과 연구기관에 공급할 수 있게 됐다. 회사는 이를 통한 글로벌 파트너십과 기술 이전 기회를 노리고 있다.
김상기 차백신연구소 최고재무관리자(CFO)는 회사의 실적 개선 가시화 시점을 묻는 질문에 "(주요 파이프라인 진행 상황을 고려할 때) 2027년으로 예상하고 있다"면서 "그 이전에 단기 매출을 증대시킬 여러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답했다.
한 대표는 "화이자에서 20년 이상 쌓아온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차백신연구소의 글로벌 파트너십을 성장시킬 것"이라며 "임상 중심의 성과 창출과 글로벌 파트너십을 통해 이른 시일 내 매출과 영업이익을 확보하고, 시장에서 차백신연구소의 신뢰를 공고히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