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강릉 세인트존스호텔에서 제1회 강릉 천연물 바이오 국제 콘퍼런스가 열렸다./강릉=박수현 기자

자연의 원리에서 해답을 찾는 과학과, 과학을 일상 속으로 확장하는 문화가 한자리에 모였다.

22일 강릉 세인트존스호텔에서 개막한 제1회 강릉 천연물 바이오 국제 콘퍼런스 현장에는 자연의 원리를 응용한 첨단 바이오 기술과 과학문화 콘텐츠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행사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강릉시, 조선비즈가 공동 주최했다.

◇포스텍, 홍합 단백질로 약물전달 기술 구현

이날 홍합의 접착력을 모방한 약물전달 기술부터 콩벌레와 곰팡이의 공생에서 발견한 신경 보호 물질의 인공 합성 기술 등, 자연의 원리를 과학으로 풀어낸 연구들이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차형준 포스텍 화학공학과·의과학대학원 교수 연구진은 홍합이 바닷속에서도 단단히 바위에 달라붙을 수 있는 비밀인 '접착단백질'에 주목했다. 연구진은 이 단백질을 응용해 약물이 몸속 특정 부위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전달 시스템을 만들었다.

기존 약물은 정맥주사나 경구투여로 온몸을 돌아다니며 작용하다 보니 부작용과 전신독성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 기술은 질병 부위에 직접 붙어서 천천히 약을 내보내는 방식으로 이러한 문제를 줄였다.

이어 기술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 폐암 치료용 흡입형 나노입자를 개발했다. 홍합의 접착단백질에 특정 아미노산을 더해 만든 이 입자는 폐 속 점막에 잘 달라붙으면서도 약물을 선택적으로 방출한다. 즉, 암세포 주변에 머물며 표적 치료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KAIST, 콩벌레 곰팡이에서 '뇌 질환 치료 실마리' 찾아

한순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연구진은 자연계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희귀한 천연물 '허포트리콘(herpotrichone)'을 실험실에서 직접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물질은 콩벌레와 공생하는 곰팡이에서 아주 미량만 얻을 수 있는데, 뇌 속 염증을 줄이고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효능이 있다. 치매나 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뇌 질환 치료제 후보로 주목받지만,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양이 너무 적어 연구가 어려웠다.

한 교수 연구진은 이 곰팡이가 물질을 만드는 과정을 모사해, 복잡한 구조를 화학적으로 재현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마치 퍼즐 조각이 맞물리듯 탄소와 수소를 조합해 고리 형태를 만들고, 그 반응이 정확한 자리에서만 일어나도록 수소결합을 정밀하게 조절했다. 그 결과, 허포트리콘 A, B, C 세 종류를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연구진은 천연물을 바탕으로 알츠하이머병 치료 후보물질도 개발하고 있다. 뇌 속 독성 단백질인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는 '콜리노락톤'의 유도체를 합성해, 원래 물질보다 강력한 생리활성을 확인했다.

또 까마중의 독성 대사경로를 조절해 유용 성분 '디오스게닌'을 대량 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했으며, 최근에는 식물의 천연물 생합성 경로를 인공지능(AI)으로 예측하는 모델 '리드레트로(READRetro)' 를 만들어 신약 후보 탐색 속도를 높이고 있다.

제1회 강릉 천연물 바이오 국제 콘퍼런스 현장./강릉=홍아름 기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천연물 자원 통합 '중앙은행' 구축

이번 콘퍼런스에서는 대학과 연구 기관의 개별 연구뿐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추진 중인 '다부처생명연구자원 선진화사업'도 함께 소개됐다. 이 사업은 생명연구자원의 체계적 관리와 산업화를 목표로 한 국가 프로젝트로, 천연물 분야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이 '천연물 중앙은행' 역할을 맡아 총괄한다.

천연물 중앙은행은 국내외 식물과 식물세포주 등 다양한 천연물 자원을 통합 관리하며, 이를 기반으로 표준화된 소재 확보·분양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또 표준 분석법, 성분·효능 정보, 추출물 데이터 등을 정리해 연구자와 기업이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천연물 빅데이터 플랫폼'을 운영한다.

이와 함께 분리·분석 서비스와 자원 분양 서비스, 그리고 산학연 공동 활용을 위한 정보 통합 프로그램과 기업 지원 시스템도 제공한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앞으로 합성화합물·모델동물·종자 등 다른 클러스터와도 협력해 식의약 원천물질 개발과 천연물 기반 제품 생산을 효율화함으로써 국가 바이오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계획이다.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을 일상 속으로

이번 콘퍼런스에서는 천연물 연구뿐 아니라 과학을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함께 선보였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은 시민과 청소년이 과학을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자체 제작한 디지털 콘텐츠와 토크쇼를 공개했다.

대표 콘텐츠 '곽곽! 과학자의 하루'는 실험실 안 진지한 연구자의 모습부터, 때로는 허당미 넘치는 일상까지 담아낸 영상 시리즈로, '과학자도 결국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유쾌하게 전한다.

또 다른 인기 프로그램 '오늘과학'은 일상 속 궁금증을 연구자들이 직접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코너로, '지식은 기본, 웃음은 덤'이라는 슬로건 아래 관객들과 소통했다.

특히 유튜브와 연계한 '과몰입러' 과학 토크쇼도 주목받았다. 유명 크리에이터 승헌쓰, 찰쓰엔터가 함께 진행한 이 프로그램은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흥미진진한 과학 몰입형 콘텐츠로 호응을 얻었다.

이 외에도 창의재단의 '사이언스 프렌즈' 프로젝트는 허팝, 닥터프렌즈, 마이린, 사물궁이, 시니, 쏘영, 올블랑 등 15개 인기 유튜브 채널과 협업해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과학 콘텐츠를 제작·공유했다. 이번 행사를 통해 과학이 실험실을 넘어 문화와 일상 속으로 확장되는 새로운 소통의 장이 마련됐다.

이번 콘퍼런스는 '강릉을 넘어 세계로, 천연물 바이오 미래를 연결하다!'를 주제로 22일부터 24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