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부터 21일(현지 시각)까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유럽종양학회 연례학술대회(ESMO 2025) 현장 전경. /ESMO

17∼21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종양학회 연례학술대회(ESMO)'에서 글로벌 대형 제약사(빅파마)들이 항암 신약 연구 개발 성과를 앞다퉈 내놨다. ESMO는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미국암학회(AACR)와 함께 세계 3대 암 학회로 꼽힌다. 종양학은 의약품 시장 규모가 가장 큰 분야라 제약 산업계도 주목하는 행사다.

◇ADC, '삼중 음성 유방암' 치료 한계 넘나

이번 학회에서는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미국 머크(MSD), 길리어드, 스위스 노바티스를 비롯한 글로벌 빅파마들이 개발 중인 항체약물접합체(ADC) 항암제의 임상시험 결과가 큰 조명을 받았다.

특히 기존 면역항암제로는 치료에 한계가 있는 삼중음성유방암(TNBC)을 겨냥한 ADC 신약의 임상시험 결과가 잇따라 발표됐다. ADC는 항체에 약물을 붙여 정확히 암세포에만 전달하는 치료 기술로, 그만큼 정상 세포가 덜 손상되고 치료 효과가 좋아 '암세포를 잡는 유도미사일'이라 불린다.

ADC 약물의 구조와 특성. ADC는 암세포를 찾아가는 항체와 암세포를 죽이는 약물인 페이로드, 이를 연결하는 링커로 구성된다. /네이처

대표적으로 아스트라제네카와 다이이찌산쿄 두 회사가 공동 개발해 상용화한 ADC 항암제 '다트로웨이(Datroway, 성분명 다토포타맙 데룩스테칸)'가 이번 학회에서 TNBC 환자 대상 치료 효과를 입증한 임상 3상 결과로 관심을 모았다.

발표에 따르면, 해당 연구에서 다트로웨이는 항암 화학요법 대비 사망 위험을 21% 줄이는 효과를 보였다. 치료 후 질병이 악화되지 않는 기간인 무진행 생존기간은 다트로웨이군이 10.8개월로 대조군 5.6개월보다 두 배가량 연장된 것으로 나타났다.

신약의 상업적 성공에 중요한 과제인 '적응증(치료 범위) 확대' 가능성에 초록불이 켜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같은 유방암, 폐암 등이라고 해도 발병 요인인 유전자 변이가 다르다. 이 때문에 환자에게 치료 효과를 내는 치료제도 발병 원인과 표적 변이에 따라 다르다.

다트로웨이는 앞서 절제 불가능하거나 전이성 호르몬수용체(HR)가 양성이고, 인간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 2형(HER2)은 음성인 유방암 성인 환자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먼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이어 지난 6월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 변이 폐암 치료제로도 가속 승인을 받았다.

길리어드 사이언스는 PD-L1 음성인 TNBC 환자를 대상으로 한 ADC 항암제 트로델비(Trodelvy)의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PD-L1은 암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단백질이다. 앞서 트로델비는 전이성 삼중음성 유방암 2차 이상 치료제로 2020년 FDA 허가를 받았다. 국내에선 2023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허가했다.

이번 발표에 따르면, 트로델비는 항암 화학요법 대비 질병 진행 또는 사망 위험을 38%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길리어드는 트로델비가 PD-L1 양성 환자 대상 임상시험에서 긍정적 결과를 얻은 만큼 TNBC 1차 치료의 '표준 치료(backbone)' 약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바티스의 방사성의약품 '플루빅토' 원리. /노바티스

◇ '방사선 미사일', 전립선암 치료 새 표준으로 부상

노바티스는 2022년 출시한 방사성 리간드 치료제(RLT) 플루빅토(177Lu-PSMA-617)의 전립선 치료 효과의 병용요법 효과를 확인한 임상 3상 결과로 주목을 받았다.

플루빅토는 방사성 동위원소인 루테튬(177Lu)이 전립선암에 많이 발현되는 항원과 결합해 치료용 방사선을 직접 전달하는 원리다. 암세포만 골라 방사선으로 파괴하는 식이다. 기존에는 호르몬 치료제 같은 항암 화학요법으로 남성 호르몬이 생성되는 모든 경로를 차단해 암 진행을 더디게 했다.

이번 연구는 전이성 호르몬 민감성 전립선암(mHSPC) 환자 1145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남성호르몬 억제요법과 안드로겐 수용체 억제제를 함께 쓰는 기존 표준 치료법에 플루빅토를 함께 쓰는 병용요법이 기존 치료법보다 질병 진행·사망 위험을 28% 줄였고, 생존기간도 연장됐다고 회사는 밝혔다. 암세포가 사라진 상태를 의미하는 완전 관해율은 플루빅토 병용군이 57.1%, 표준 치료군이 42.3%로 나타났다.

이 연구에는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국내 기관도 참여했다. 연구를 주도한 스콧 타가와 미국 코넬대 교수는 "플루빅토 병용요법은 질병 진행을 늦추면서 부작용도 비교적 적었다"고 설명했다. 시리람 아라드예 노바티스 개발 총괄 최고의료책임자는 "연내 규제당국에 승인 신청을 완료해 더 많은 환자가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의 방사성 의약품 전문기업인 퓨쳐켐(220100)도 이번 학회에서 전립선암 치료제 'FC705'의 국내 임상 2상 용량 측정 데이터를 포스터 발표했다. FC 705 투여 횟수에 따른 장기별 방사선 흡수 변화를 분석해 안전성을 확인한 게 이번 연구의 핵심이다.

앞서 FC705의 체내 순환 시간이 길어 안전성 문제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이번 연구에서 반복 투여 환경에서도 장기별 방사선 흡수선량이 안전 기준 이하로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데이터가 확인됐다고 회사는 밝혔다.

퓨쳐켐은 "안전성 우려는 사실상 해소됐다"며 "FC705의 국내 조건부 품목 허가 신청과 임상 3상 첫 환자 투여를 위한 IRB(윤리위원회) 심의를 서울대병원과 서울성모병원 등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