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인공지능(AI) 시장의 열기가 뜨겁지만, 국내 의료 영상 진단 AI 기업들은 겨울 바람을 맞고 있다. 일찍 AI 시장에 진출한 선두 기업들은 인력을 줄이고 사업부 일부를 매각·청산하는 등 몸집을 줄이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의료 영상 AI 기업인 루닛(328130)은 이달 말 완료를 목표로 인력을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루닛 관계자는 "전체 인력의 10~15%를 줄인다"며 "퇴사 대상자에 대한 보상안을 마련해 뒀으며, 이달 내로 인력 조정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이엘케이(322510)도 신약 개발을 위해 설립한 자회사를 올해 청산했다. 회사는 "지난 5월 이사회 의결을 통해 해산 결의와 청산인 선임을 완료해 청산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뷰노(338220)는 올해 골 나이 분석 AI, 흉부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 판독 AI 등 사업부 일부를 잇달아 매각하며 사업 재편을 하고 있다.
이들은 국내 1세대 의료 AI 기업으로 꼽힌다. 제이엘케이는 2019년 12월 국내 의료 AI 기업 중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했다. 뷰노는 2021년, 루닛은 2022년에 각각 코스닥에 입성했다. 이들은 의료 영상을 분석해 질병을 분석하고 진단하는 AI 소프트웨어를 각각 개발해 상용화에 성공했다. 모두 AI 기술 역량을 앞세워 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각 회사 제품의 대상 질환군이 달라, 시장을 나눠 동반 성장했다.
하지만 상업화 성공과 경영 성적이 공통 과제로 떠올랐다. 이들을 비롯해 현재 국내 헬스케어 분야 AI 기업들은 아직 모두 적자 경영 상태다. 상장 기업들은 흑자 전환을 위해 비용을 줄이는 경영 효율화 작업에 나선 것이다.
업계에서는 '법인세 비용 차감 전 계속 사업 손실', 이른바 법차손에 관한 규정을 주요 배경으로 꼽는다. 업계 관계자는 루닛, 뷰노, 제이엘케이의 구조 조정 배경에 대해 "기업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법차손에 따른 비용 통제 이슈가 생긴 게 공통된 이유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는 코스닥 상장 기업이 3년간 2회 이상 자기자본 대비 법차손 비율이 50%를 초과하면 관리 종목으로 지정한다. 의료용 AI 기업, 바이오 기업 같은 기술 특례 상장 기업은 법차손 요건에 따른 관리 종목 지정을 3년간 유예해 준다. 유예 기간이 끝난 뒤 2년 연속 법차손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상장 5년째부터 관리 종목으로 지정될 수 있다.
최근 업체들의 경영 효율화는 관리 종목 지정과 상장 폐지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고육책인 셈. 업계 관계자는 "또 적자 경영이 길어지면 추후 펀딩(투자 유치)이 어려워지는 문제도 있어, 재무적으로 개선해야 하는 이유도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 일각에선 국내 의료 AI 기업들의 성장 둔화를 우려하며 사업 모델에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다. 아직 상업적으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회사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의료 AI 기업들 사이에선 국내에서 의료 AI에 적용되는 건강보험 수가가 낮다는 불만 목소리도 나온 바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시장에 진출해 각국의 보험 제도에 등재돼 의료 수익을 내는 게 돌파구이지만, 진입 장벽이 높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의료 분야에 도전하는 AI 기업들이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라 경쟁은 더 치열해진 상황이다.
국내외 시장 사정이 어려워지자 의료 AI 기업들은 정부 정책 과제 수주에 더욱 목을 매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AI 분야에 통 큰 투자를 단행하면서 대형 정책 과제 수주 경쟁에 불이 붙었다는 것이다. AI 업계 한 관계자는 "세계 시장에서 성과를 내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정부 과제 수주를 하면 단기 실적에 반영되고 시장에서 호재로 해석되기 때문에 회사마다 이번 기회를 잡으려 경쟁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