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모든 세포로 자라는 줄기세포와 장기(臟器) 유사체인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재생의료가 차세대 의학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재생의료는 손상된 인체 기능을 재생·회복시키는 의료 분야로, 이 시장의 선두 주자는 일본이다. 일본 정부는 2014년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면서 매년 10만건 이상의 세포 치료를 하고 있다. 외국인 환자는 약 70%이며, 한국인도 약 2만명에 달한다.
한국도 뒤늦게 제도적 틀을 갖췄다. 2020년 시행된 '첨생법(첨단재생의료·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지원에 관한 법률)'으로 희소·난치질환 환자들이 줄기세포·유전자치료제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올해 2월 법 개정으로 적용 범위가 모든 질환으로 확대되며 경쟁력도 강화됐다.
최근 기술력과 임상 경험을 갖춘 한국 재생의료 기업들이 일본 시장에 속속 진출하며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이들은 지난 8~10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바이오재팬 2025'에 참가해 기술을 소개하고 현지 기업들과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바이오재팬은 일본 바이오협회(JBA)가 주최하는 아시아 최대 바이오 산업 전시회다.
◇"日서 줄기세포 치료 연 3000건 이상"
권신욱 일본 토탈셀클리닉(TCC) 이사는 지난 8일 바이오재팬 2025에서 "토탈셀클리닉은 암, 관절염, 난임·불임 치료를 중심으로 매년 3000건 이상 줄기세포 치료를 시행하는 일본 내 상위 15위권 의료기관"이라며 "도쿄 센터에 이어 후쿠오카를 비롯한 타 지역 개원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권 이사는 일본 기업 3곳과 줄기세포치료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이번 행사에 참가했다고 했다.
토탈셀클리닉은 2014년 차병원·차바이오그룹이 일본 도쿄에 설립한 줄기세포 전문병원이다. 차병원·차바이오그룹의 기술력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면역세포 배양 관련 일본 특허를 받았고, 세포배양·생산을 위한 우수의약품생산규격(GMP) 시설도 갖췄다. 지금까지 1만명 이상이 이곳에서 재생의료 치료를 받았다. 암 환자를 위한 면역세포 치료와 당뇨·만성통증 환자 대상 줄기세포 치료를 시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퇴행성 관절염, 불임, 아토피, 노화 방지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권 이사는 일본에서 20년 넘게 재생의료 현장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2000년 일본 최대 피부미용 의료기관인 가나가와클리닉에 일어·영어 동시 구사 인력으로 입사하며 의료 분야에 발을 들였다. 이후 차광렬 차병원·차바이오그룹 글로벌연구소장과의 인연으로 차병원·차바이오그룹 일본지사장, 일본 차병원 대표를 역임했고, 2021년부터 토탈셀클리닉 운영을 총괄하고 있다.
일본은 2014년부터 의료기관의 세포치료 시술을 폭넓게 허용했다. 2012년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의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 연구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면서, 정부가 재생의료를 '미래 의학의 핵심축'으로 선언했기 때문이다.
iPS세포는 다 자란 세포를 인체 모든 세포로 자라는 배아줄기세포 상태로 바꾼 것이다. 배아줄기세포는 수정란에서 얻는데, iPS세포는 그렇지 않아 윤리 논란을 피할 수 있다. 그만큼 상용화에 유리하다.
일본에서 재생의료를 시행하는 의료기관은 3100곳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15만명이 줄기세포 치료를 받았다. 한국이 줄기세포 치료를 중대·희소질환으로 제한한 반면, 일본은 항암·당뇨 등 중증 질환은 물론 면역 강화나 노화 억제 목적의 시술도 가능하다. 치료비는 환자당 수백만원에서 1억원대까지 다양하다. 관련 산업을 포함한 시장 규모는 수조원대로 추정된다.
권 이사는 "현재 차병원·차바이오그룹이 한국에서 진행 중인 엑소좀 치료 임상시험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면, 일본에서도 줄기세포 치료를 엑소좀 치료로 확대할 계획"이라며 "치매·파킨슨병 등 퇴행성 질환 치료에도 적용 가능성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엑소좀은 세포 간 신호전달을 담당하는 생체 유래 입자로, 약물을 특정 세포에 전달하는 차세대 치료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오가노이드 치료제 개발, 日법인 검토 중"
유종만 차의과학대 교수가 2018년 설립한 오가노이드 재생치료제 전문기업 오가노이드사이언스(476040)도 일본 재생의료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장기(臟器)와 비슷한 입체 구조로 배양한 것이다. 장기(organ)에 유사하다는 의미의 접미사(oid)를 붙여 만든 말로, 미니 장기라고도 부른다.
이 회사는 지난 5월 전 세계 최초로 오가노이드 기반 기술로 코스닥에 상장했다. 이경진 최고기술책임자(CTO·상무)는 이날 "일본 의약품 유통사인 스미토모 계열사 SPI와 업무협약을 맺고 오가노이드 기술의 현지 적용을 논의 중"이라며 "연내 일본 법인 설립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는 장, 침샘, 간, 자궁내막 등 장기별 오가노이드 모델을 기반으로 난치성 질환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대표 파이프라인인 '아톰-C(ATORM-C)'는 장 오가노이드이다. 내시경으로 채취한 환자 정상 장 점막 조직을 배양해 손상 부위에 주입하는 치료 후보물질이다. 직장염과 염증성 장질환(IBD) 치료가 목표다.
오가노이드는 최근 동물실험을 대체할 기술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인체 세포인 데다 장기의 입체 구조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신약 개발 초기 단계에서 동물실험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인공지능(AI)이나 인체 유래 세포, 오가노이드 등을 활용하는 대체 시험법(NAMs)을 도입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오가노이드사이언스는 신약 효능을 오가노이드로 평가하는 서비스도 개발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과 합작법인 '포도테라퓨틱스'를 세워 면역항암제 정밀의료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지난 3월 세브란스병원에서 시작된 이 서비스는 환자의 오가노이드로 항암제 감수성을 평가해 개인별 맞춤 치료법을 돕는다.
이 CTO는 "일본은 재생의료 제도가 한국보다 앞서 있지만,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사업은 아직 초기 단계"라며 "일본 내 재생의료 연구기관·제약사와 협력을 확대해 시장성을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