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재단이 저소득 국가를 중심으로 '공공보건형 저가 비만 치료제' 시장을 열기 위한 움직임에 나섰다. 전 세계 환자들이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생산 단가를 낮춘 대체 비만약을 개발·보급하겠다는 것이다./뉴스1

빌 게이츠 재단이 저소득 국가를 중심으로 저가 비만 치료제 시장을 열기 위해 나섰다. 저개발 국가 비만 환자들도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생산 단가를 낮춘 대체 비만약을 개발·보급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비만약이 고가여서 부유한 국가만 혜택을 볼 수 있는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저가 비만약은 가격 경쟁력과 복용 편의성을 앞세운 국내 제약사들의 차세대 비만약 개발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12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빌 게이츠 재단은 범아메리카보건기구(PAHO)와 함께 체중 감량 효과가 높은 비만 치료제를 저소득 국가에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재 비만약 시장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인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와 미국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티르제파타이드)'가 독점하고 있다. GLP-1 호르몬을 모방한 이들 치료제는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의 분비를 촉진해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으나, 체중 감량 효과가 확인되며 비만 치료제로 발전했다.

게이츠 이사장은 로이터에 "이전부터 재단은 고소득 국가에서 효과가 입증된 의약품을 '매우 저렴하게(super cheap)' 생산해 전 세계에 보급해왔다"며 "비만은 이제 세계가 공동 대응해야 할 만성질환"이라고 말했다.

게이츠 재단은 미국 길리어드가 개발한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IV) 예방약 '예즈투고'의 인도산 제네릭(복제약)을 연 40달러(한화 5만7000원) 수준으로 저소득국가에 공급하고 있다. 비만약 역시 같은 방법으로 저렴한 복제약을 개발해 환자가 많은 저개발 국가에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 약 10억명의 비만 인구 중 70%가 중·저소득 국가에 거주하지만, 이들 국가는 비만과 당뇨병, 심혈관질환 등의 문제를 해결할 보건 재정 여력이 부족하다.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월 수백 달러에 달하는 고가 의약품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과체중과 비만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2030년까지 3조달러(4285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약이 있어도 쓰지 못해 의료비가 더 나가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셈이다.

게이츠 재단은 '공중보건형 저가 공급 체계'다. 위고비·마운자로처럼 이미 검증된 약물을 복제하거나 제형을 단순화한 형태로 보급하는 방식이다. 내년부터 위고비의 주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 특허가 중국·인도 등 일부 국가에서 만료되면서 저가 제네릭 공급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현지 제약사들은 이미 제네릭 개발에 착수했으며, 생산 기술을 가진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에도 수혜가 예상된다.

저가 비만약 시장이 만들어지면 가격 경쟁력과 안전성, 복용 편의성을 갖춘 후발 신약도 새로운 시장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의약품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IQVIA)도 지난 8일 보고서를 통해 "먹는 경구제, 장기 지속형 주사제처럼 복약 편의성을 높인다면 중·저 소득국의 비만약 인프라에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제약사들도 이에 대응해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한 차세대 비만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디앤디파마텍(347850), 일동제약(249420), 한미약품(128940) 등은 경구용 비만약을 개발 중이며, 대웅제약(069620), 대원제약(003220), 동아에스티(170900) 등은 미세 바늘이 붙은 패치로 약물을 전달하는 비만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매주 맞는 비만약을 월 1회 투여로 주사 간격을 늘리는 장기 지속형 개발도 활발하다. 한미약품은 자체 기술로 장기 지속형 GLP-1 비만 주사제 '에페글레나타이드'를 개발해 임상 3상 시험을 진행 중이며, 지투지바이오(456160)는 3개월가량 약효가 지속되는 비만 주사제를 개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