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바그스베르드에 위치한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 본사 앞 간판에 회사 로고가 보인다. 노보 노디스크는 미국 바이오텍 아케로 테라퓨틱스(Akero Therapeutics)를 연내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글로벌 빅파마(대형 제약사)들이 수조원에 다른 기업을 사들이는 인수합병(M&A) 거래가 잇따르고 있다. 올해 미국의 관세 불확실성으로 주춤했던 파이프라인(신약 개발 후보군) 확보 경쟁에 다시 활기가 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비만 치료제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로 유명한 덴마크 제약사인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는 미국 바이오 기업 아케로 테라퓨틱스(Akero Therapeutics)를 최대 52억달러(한화 약 7조3800억원)에 인수한다고 9일(현지 시각) 밝혔다.

아케로 테라퓨틱스는 대사질환 치료제를 개발 중인 나스닥 상장 기업이다. 이날 피인수 소식에 아케로의 주가는 종가 기준 전일 대비 16.28% 올랐다. 노보 노디스크는 이 회사의 핵심 파이프라인인 대사이상 지방간염(MASH) 치료 신약 후보 물질 에프룩시퍼민(efruxifermin)을 확보했다.

노보 노디스크는 이번에 CVR(Contingent Value Rights, 조건부 가치권)이 포함된 계약을 했다. CVR은 인수 기업이 대상 기업의 가치를 전부 현금으로 한 번에 지급하지 않고, 계약 시점에 일정액을 현금으로 주고 이후 특정 조건 달성 시 추가 대가를 지급하는 M&A 거래 방식이다.

노보 노디스크는 아케로 주식 1주당 54달러, 총 47억달러(약 6조6700억원)를 현금으로 지급하고, 에프룩시퍼민이 2031년 6월 30일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으면 1주당 6달러, 총 5억달러를 추가로 줄 예정이다. 회사는 규제 승인 절차를 거쳐 올해 말에서 내년 초에 최종 인수 절차가 마무리될 예정이라고 했다.

업계는 노보 노디스크가 주력 의약품의 특허 만료에 따른 수익 공백을 메우고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 인수를 택했다고 분석했다. 노보 노디스크의 당뇨·비만 치료제 오젬픽·위고비의 중국 특허가 2026년에 만료되고, 미국 특허는 2031년 12월에 만료될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에도 빅파마들의 조 단위 M&A 발표가 이어졌다. 주로 시장 규모와 성장 폭이 큰 항암제와 대사질환 신약 후보물질을 보유한 바이오 기업들이 인수 대상으로 꼽혔다.

덴마크 제약기업 젠맙(Genmab)은 항암제를 개발 중인 네덜란드 바이오텍 메러스(Merus)를 80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미국 화이자(Pfizer)는 미국에 본사를 둔 비만·대사질환 치료제 개발 기업 멧세라(Metsera)를 49억달러에 사들였고, 스위스 기업 로슈(Roche)는 MASH 신약 후보물질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89바이오(89bio)를 24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올해 세계 증시에서 바이오 업종의 주가 흐름이 다른 업종보다 부진했는데, 이에 따라 프리미엄이 낮아지면서 빅파마의 M&A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반기 금리 인하 신호가 켜진 것도 한 몫 했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대형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미국 바이오 기업의 투자 심리도 개선되고 있다"며 "규제 불확실성 속에서 빅파마의 적극적인 파이프라인 확보 노력이 새로운 모멘텀(상승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