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사 화이자(Pfizer)가 22일(현지 시각) 미국 비만·대사질환 신약 개발기업 멧세라(Metsera)를 최대 10조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하면서 업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회사 인수금 자체는 멧세라 보통주 주당 47.5달러, 총 49억달러(약 6조8300억원)다. 여기에 특정 임상·허가 단계를 달성할 때 추가 지급되는 '조건부 가치권(CVR)'을 포함하면 총거래 규모가 최대 72억달러(약 10조원)에 달한다.
화이자는 멧세라 인수로 주 1회, 월 1회 주사제와 경구형까지 다양한 비만·대사질환 치료제 후보물질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앞서 개발에 실패한 먹는 비만약 파이프라인(신약 후보군)의 공백을 메우고 비만·대사질환 치료제 상업화에 재도전할 수 있게 됐다.
◇기업 매각 경험 창업가 '적기' 판단
멧세라는 영국 내과 전문의인 클라이브 민웰(Clive Meanwell) 이사회 의장이 윗 버나드(Whit Bernard) 최고경영자(CEO)와 같이 2022년 설립한 바이오 스타트업이다. 본사는 미국 뉴욕에 있다.
민웰 의장은 '더 메디슨스 컴퍼니(The Medicines Company)'를 창업해 스위스 제약기업 노바티스(Novartis)에 97억달러에 매각한 경험이 있다. 버나드 대표도 당시 같은 회사에서 사업 개발과 전략을 담당했으며, 멧세라 창업 초기부터 '투자-개발-매각'까지 로드맵을 염두에 두고 회사를 성장시켜온 것으로 알려졌다.
멧세라가 비만 대사질환 신약 개발 분야 다크호스로 단기에 부상할 수 있었던 건 이 분야에 특화된 다양한 파이프라인 덕분이다. 장내 호르몬 연구의 권위자 스티븐 블룸(Stephen Bloom)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CL) 교수가 설립한 스타트업 지힙(Zihipp)이 멧세라 출범 직후 합류하면서 2만여 개에 달하는 펩타이드 신약 후보군을 확보했고, 비만 치료제 연구의 과학적 기반을 넓혔다.
멧세라 창업자들은 비만·대사질환 치료제 시장이 성장세인 만큼 매각 적기로 본 것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데다 임상시험과 상업화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만큼, 독자 노선보다는 대형 제약사에 매각해 개발 속도를 높이려는 전략도 깔려 있다.
멧세라는 식후 소장에서 분비되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작용제, 췌장에서 인슐린과 함께 분비되는 호르몬인 아밀린을 모방한 아밀린 유사체, 복합요법 등 다양한 비만 치료 파이프라인을 임상 개발 단계로 진입시키고 있다.
주 1회 또는 월 1회 투여 가능한 MET-097i는 기존 약물보다 복용 편의성과 효과 면에서 차별성을 지닐 가능성이 있는 비만·대사질환 치료제 후보물질로 꼽힌다. 멧세라가 보유한 후보물질 중에는 국내 기업 디앤디파마텍(347850)이 2023년에 기술 이전한 먹는 비만약 후보물질도 포함돼 있다.
◇화이자, 비만약 지름길 확보…주가·실적 만회할지 주목
화이자는 이번 멧세라 인수를 통해 비만 치료 시장을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는 지름길을 확보했다. 회사는 2026~2027년 비만 치료제 후보물질의 임상 3상 시험에 착수해, 2028~2029년 출시를 목표로 잡았다.
현재 세계 비만·대사질환 치료제 시장은 덴마크 기업 노보 노디스크와 미국 기업 일라이 릴리가 선도하고 있으며, 연간 수십조원대로 급성장 중이다. 그간 화이자는 이들을 쫓기 위해 자체 비만 치료 후보 물질 '다누글리프론(danuglipron)' 개발에 도전했으나 부작용 문제로 개발이 중단됐다. 이에 외부에서 검증된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기로 한 것이다.
크리스 브로쇼프(Chris Broshoff) 화이자 최고과학책임자(CSO)는 이날 투자자 대상 콘퍼런스콜에서 "멧세라는 월 1회 제형, 아밀린 병용, 음식·물 제한 없는 경구제라는 3가지 축에서 뚜렷한 경쟁 우위를 갖췄다"며 "분기별 초장기 주사제, 병용 전용 펩타이드 후보물질 등도 개발 중이어서 파이프라인 확장성이 뚜렷하다"고 밝혔다.
화이자의 10조원 빅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시기 백신·치료제로 거둔 호황이 끝난 이후 지속된 주가와 실적 부진 위기를 역전하기 위한 카드라는 분석도 있다. 허혜민 키움증권 제약바이오 연구위원은 "화이자가 최근 주가 부진과 블록버스터 의약품 특허 만료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을 했다"라며 "CVR을 활용해 위험을 최소화하고 투자심리를 회복하려는 의지가 확인된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화이자의 이번 인수가 대형 제약사들의 공격적인 인수합병(M&A) 경쟁에 불을 부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허 연구위원은 "이번 M&A로 바이오텍에 대한 업계 투자심리 개선도 기대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