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머크(MSD)의 면역 항암제 키트루다. /머크

국내 기술로 면역 항암제를 1~2분만에 투여할 수 있는 피하(皮下) 주사제가 개발돼 미국에서 허가를 받았다. 면역 항암제는 보통 병원에서 의료진이 정맥(靜脈) 주사로 투여했는데, 피하 주사는 투여 시간이 짧아 정맥 주사보다 편리하다.

알테오젠(196170)은 파트너사인 미국 머크(MSD)가 '키트루다 큐렉스' 품목 허가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받았다고 20일 밝혔다.

키트루다 큐렉스는 키트루다 정맥 주사를 피하 주사 제형으로 바꾼 것이다. 키트루다는 머크가 지난 2014년 출시한 면역 항암제다. 사람의 면역 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유도해 암을 치료한다. 키트루다는 지난해 매출 295억달러(41조원)를 기록했다.

◇알테오젠 기술로 주사 시간 획기적 단축

키트루다 큐렉스는 흑색종, 비소세포폐암, 두경부암, 요로 상피암, 자궁 경부암, 담도암 포함 38개 적응증을 허가받았다. 키트루다 큐렉스에는 알테오젠의 'ALT-B4' 기술이 적용됐다. 이 기술은 정맥 주사를 피하 주사 제형으로 바꿔주는 기술이다. 피하 조직에서 히알루론산층을 분해해 약물이 빠르게 흡수될 수 있도록 한다.

앞서 머크는 키트루다 피하 주사가 정맥 주사와 효능이 동등하다고 밝혔다. 머크는 비소세포폐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키트루다 큐렉스 임상 3상 시험을 진행해 키트루다 피하 주사와 정맥 주사의 약동학(藥動學) 결과가 유사하다고 밝혔다.

키트루다 정맥 주사는 시간이 30분 걸린다. 키트루다 피하 주사는 3주에 한 번 1분, 6주에 한 번 2분 투약하는 방식이다. 미국에서 이르면 이달 말부터 환자가 의원급 병원에서 투약할 수 있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알테오젠은 지난 2020년 6월 머크와 첫 기술이전 계약을 맺고 ALT-B4 기술 사용권을 부여했다. 계약 일부를 지난해 2월 변경해 개발 단계에 따른 추가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과 매출 일부를 로열티(경상 기술료)로 받을 수 있게 됐다.

박순재 알테오젠 대표이사는 "ALT-B4 기술이 활용된 제품이 미국 허가를 받게 됐다"면서 "파트너사 제품 개발과 상업화를 위해 노력하고 더 많은 환자에게 편리함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환자가 직접 항암제 주사 시대 열려

의료계는 앞으로 환자가 집에서 피하 주사로 항암 치료를 하는 시대가 열린다고 본다. 피하 주사가 보편화되면 의료진이 정맥에 주사를 놓지 않아도 인슐린 주사체처럼 환자가 복부, 허벅지에 주사를 편하게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머크는 "정맥 주사가 어려운 환자에게 배꼽 주변 5㎝를 제외한 곳에 피하 주사를 놓으며 치료를 간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정맥 주사제를 피하 주사제로 개발하면 환자 편의성이 높아져 그만큼 시장이 늘어날 수 있다. 오리지널 신약 개발사들은 같은 기술로 특허 연장 효과까지 노리고 있다. 키트루다 특허는 오는 2028년 만료된다. 특허가 끝나면 키트루다 바이오시밀러(바이오 의약품 복제약) 출시가 이어지며 시장에서 영향력을 뺏길 수 있다. 머크는 키트루다 피하 주사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다는 전략이다.

국내 바이오시밀러 전문 업체인 셀트리온(068270)도 같은 방법으로 의약품의 부가가치를 높였다. 이 회사는 2016년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인 램시마 IV(정맥 주사)를 허가받은 데 이어, 이를 피하 주사 제형으로 개발한 램시마 SC(피하 주사)로 2023년 미국 FDA 신약 승인을 받았다.

레미케이드는 미국 존슨앤드존슨(J&J)의 제약 자회사인 얀센이 개발한 블록버스터 의약품이다. 셀트리온은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를 처음 개발한 데 이어 피하 주사제도 처음 개발했다. 램시마 SC는 지난해부터 상품명 짐펜트라로 미국에 출시됐다.

피하 주사제가 환자 편의성을 기반으로 시장을 넓히고 복제약을 신약으로 발전시키자 피하 주사 기술의 몸값도 높아졌다. 알테오젠은 지난 3월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와 1조8000억원이 넘는 규모로 피하 주사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

앞서 지난해 2월에는 미국 머크와 피하 주사 기술을 면역 항암제 키트루다에 독점 사용하는 6360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11월에는 일본 다이이찌산쿄의 ADC(항체약물접합체) 유방암 치료 신약 엔허투의 피하 주사 제형 개발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4400억원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