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사들이 영국 투자를 연달아 철회하고 있다. 수익 24%를 영국에 돌려줘야 하는 정책에 반발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투자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제약사들은 차라리 미국에 투자해 의약품 관세 부담을 피하려는 분위기다.
영국에서 발간하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에 본사를 둔 글로벌 제약사들이 잇따라 영국에 연구시설을 짓고 일자리를 창출하려던 투자 계획을 철회했다고 17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지난 10일 미국 제약사 머크(MSD)는 런던에 10억파운드(1조9000억원) 규모의 연구 시설 개발 계획을 철회했다. 머크는 런던에 '영국 디스커버리 센터'를 짓고 일자리 800개를 창출할 계획이었으나 무산됐다. 머크는 런던에 있는 과학자 125명도 해고할 예정이다.
머크 발표 이틀 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는 2억파운드(3800억원)를 투자해 케임브리지 연구 시설을 확장하고 일자리 1000개를 창출할 계획을 보류한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가디언 등 영국 언론들은 프랑스 사노피가 영국 신규 투자를 전면 중단했고, 미국 일라이 릴리는 런던에 2억7900만파운드(5300억원)를 들여 신약 개발 연구자들을 한 곳에 모으는 공간을 만들려다 포기했다고 전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영국 정부의 약가(藥價) 정책에 반발하고 있다. 영국에 진출한 제약사는 연간 수익의 23.5%를 국영 건강보험인 국민보건서비스(NHS)에 환급해야 한다. 프랑스(5.7%), 독일(7%)보다 환급 비율이 높다. 제약사들은 영국이 다른 유럽 국가처럼 환급 비율을 한 자릿수로 낮추길 기대한다. 폴 나이시 사노피 영국 책임자는 지난 12일 가디언지 인터뷰에서 "영국은 의약품을 개발·판매하기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글로벌 제약사의 눈길은 미국에 쏠리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제약사 12곳 이상이 2030년까지 미국에 3500억달러(485조원)를 투자하기로 약속했다고 지난 16일 보도했다.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향후 5년간 미국에 300억달러(42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에 맞춰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일라이 릴리도 미국 버지니아주에 50억달러(7조원)를 들여 제조 시설을 짓기로 했다. 지난 2월 미국에 제조 시설 4개를 270억달러(37조원)를 건설한다고 밝힌 계획의 일환이다. 미국 존슨앤드존슨(J&J)도 앞으로 4년간 550억달러(76조원)를, 아스트라제네카는 2030년까지 500억달러(69조원)를 미국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업계는 제약사들이 트럼프 정부의 의약품 관세 압박을 완화하기 위해 대미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