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몸 질환 치료제 '이가탄'으로 유명한 명인제약이 유가증권시장 IPO(기업공개) 과정에 본격 돌입했다. 비상장으로 운영돼 온 회사가 창립 40주년 만에 코스피에 올라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명인제약은 9일부터 15일까지 기관 투자자 대상으로 수요 예측을 해 최종 공모가를 결정한다. 이후 18~19일 일반 청약을 거쳐 코스피에 상장할 계획이다. 총 340만주를 공모할 계획이며, 희망 공모가는 4만5000~5만8000원이다. 주관사는 KB증권이다.
회사는 실적 성장세와 높은 영업이익률을 투자 유치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다.
이 회사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은 약 2694억원, 영업이익은 928억원으로 영업 이익률이 34.4%에 달했다.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이다. 작년 국내 제약 업계 평균 영업이익률은 9%다. 업계를 선도하는 업체들도 압도한다. 한미약품(128940)의 영업이익률이 14.5%였고, 대웅제약(069620)은 13%였다. 전통 제약 업계 1위인 유한양행(000100)은 2.7%에 그쳤다.
명인제약은 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사업 다각화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회사가 주목하고 있는 분야는 펠렛(pellet) 생산과 조현병 같은 중추신경계(CNS) 질환 분야 신약 개발이다.
의약품 제제에서 펠렛은 약효 성분을 함유한 작은 구형 또는 반구형 알갱이를 뜻한다. 다중 미립자로 제조돼 캡슐제 내부에 충전되거나 정제 형태로 활용된다. 펠렛 제형은 약물이 체내에서 방출되는 속도와 위치를 조절할 수 있어, 서서히 약물이 방출돼 약효가 오래 가는 서방형(徐放型) 제제 개발에 주로 사용된다.
국내 펠렛 의약품 시장 규모는 3500억원대다. 큰 시장은 아니지만 명인제약 외에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다. 회사는 국내에 경쟁사가 없고, 해외 경쟁사도 소수라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한 시장이라고 보고 이 분야 경쟁력을 더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명인제약은 펠렛 기술을 적용해 항파킨슨제, 고혈압·고지혈증 복합제, 항혈소판제·위산억제제(PPI) 병용제 등을 비롯해 약물 전달 시스템을 개선한 개량신약을 개발 중이다. 하루 3회 복용해야 하는 약물을 1일 1회 복용할 수 있도록 만든 서방성 펠렛 제제, 위가 아닌 장에서만 약효가 발현되도록 한 장용성 펠렛 제제 등이 그 예다.
회사는 내년 준공을 목표로 경기 화성 발안 2공장 신축을 추진 중인데, 상장을 통해 유입된 자금을 신축 공장에 투입해 펠렛·캡슐 제품 전용 생산공장으로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내년 15억원, 2027년 35억원 등 총 50억원을 투입해 펠렛 제형 신기술을 인도 또는 중국 제약사로부터 사들여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겠다는 복안도 세웠다.
명인제약은 이가탄으로 유명하지만, 실제 주요 의약품은 우울증, 조현병, 불안·수면 장애 등 CNS 전문의약품이다. 현재 CNS 치료제 분야에서 200여 의약품을 갖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2년 연속 CNS 분야 국내 1위 시장 점유율을 달성했다.
회사는 CNS 분야 치료 신약 개발에도 도전하고 있다. IPO로 확보한 자금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할 계획이다. 우선 조현병 치료 신약 후보 물질 '에베나미드(Evenamide)'에 대한 글로벌 임상 3상 시험에 총 35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에선 명인제약의 상장 시점과 공모가를 두고 여러 해석이 잇따랐다. 1949년생으로 76세인 이행명 회장이 자녀에 지분 승계 수단으로 상장을 삼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일각에선 상장을 승계 수단으로 삼고, 상속세를 줄일 목적으로 공모가를 기업가치보다 낮게 책정한 것은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다. 명인제약 기업가치가 5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되는데, 상속이 이뤄질 때 최대 주주 등 할증 과세가 적용돼 상속세율이 60%에 달할 것이란 평가가 있다. 평가 가액을 낮춰 상장하면 상장 후 주가 상승에 따른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고, 이에 따른 상속세를 줄일 수 있다.
다만 이런 의혹에 대해 명인제약은 "이번 상장은 승계 목적으로 추진되는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행명 명인제약 대표이사·회장은 "승계 목적이라면 최대 주주로서 회사 보유 현금을 전부 배당받은 뒤 소위 깡통 상장을 하지 않겠느냐"면서 "3~4년 안에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할 것"이라고 시장의 의혹에 대해 반박 목소리를 냈다. 깡통 상장은 오너 일가가 회사가 보유한 현금을 배당 등으로 빼간 뒤, 자산·이익은 거의 없는 상태로 상장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 회장은 "명인제약은 지난 수십 년간 축적해 온 CNS 분야의 독보적 역량과 원스톱 가치사슬을 기반으로 국내 1위를 넘어 글로벌 무대로 도약할 준비를 마쳤다"라며 "이번 IPO를 발판으로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장기적인 성장을 뒷받침할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