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보 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와 일라이 릴리의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한국 제품명 마운자로)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가 미국 일라이 릴리의 젭바운드(티르제파타이드, 한국명 마운자로)보다 심혈관 질환 위험을 낮추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임상시험 결과가 나왔다. 두 회사는 각각 위고비와 젭바운드를 당뇨·비만에 이어 심혈관 질환으로 치료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경쟁했는데 이번에 노보 노디스크가 우위를 선점한 것이다.

노보 노디스크는 유럽심장학회 연례학술대회(ESC 2025)에서 세마글루타이드가 심장마비, 뇌졸중 등 심혈관 질환 사망 위험을 티르제파타이드보다 57% 더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학회는 지난달 31일부터 1일까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렸다.

위고비와 젭바운드는 모두 GLP(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 비만 치료제다. GLP-1 호르몬은 식후 소장에서 분비돼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혈당을 낮춘다. 이를 모방한 두 약은 포만감을 유도해 체중을 감량한다. 원래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는데 체중 감량 효과가 나와 비만약으로 발전했다.

​이번 임상시험은 미국에서 당뇨병이 없는 45세 이상 비만 또는 과체중인 심혈관 질환자 2만125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위고비를 치료 중단 없이 꾸준히 투약한 환자군의 심혈관 사망 위험이 젭바운드보다 57% 낮았다. 위고비 투여군에서 심혈관 질환 발생 건수는 15건(0.1%), 젭바운드 투여군에서는 39건(0.4%)이었다.

평균 추적 관찰 기간은 각각 3.8개월, 4.3개월이었다. 중간에 투약을 중단한 환자군도 포함해 전체 환자를 분석했을 때 해당 위험이 위고비는 56건으로 젭바운드(83건)보다 29% 낮았다. 치료를 꾸준히 한 환자가 효과가 더 컸다는 의미다

루도빅 헬프고트 노보 노디스크 수석부사장은 지난 1일 "이번 연구 데이터는 세마글루타이드가 당뇨병이 없는 비만·심혈관 질환 환자에게 독보적인 이점을 제공하는 GLP-1 기반 약물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학회에 참석한 전문가들 사이에선 체중 감소와 심혈관 보호 효과가 별개의 지표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앞서 두 회사 약물의 체중 감량 효과를 비교한 연구 결과에서는 젭바운드가 위고비보다 우위로 나타난 바 있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번 연구를 통해 위고비의 젭바운드 대비 경쟁 우위가 부각됐다"면서 "노보 노디스크는 적응증을 확장해 선점하는 전략에 강점을 가진 반면, 일라이 릴리는 비만 분야에서 효능과 편의성 측면을 강점으로 경쟁 중"이라고 분석했다.

GLP-1, GIP 기능. 마운자로·젭바운드는 GLP-1과 함께 위 억제 펩타이드(GIP)에도 작용하는 유일한 이중 작용 비만 치료제다. /그래픽=조선일보DB

실제 앞서 위고비는 지난달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대사이상 지방간염(MASH) 치료제로도 승인 받았다. 위고비는 MASH 치료제로 승인된 첫 GLP-1 치료제이다. 노보 노디스크의 GLP-1 계열 당뇨 치료제 오젬픽은 이미 심혈관 위험 감소 효능을 인정받았다. 젭바운드는 아직 다른 적응증으로 승인받은 바가 없다.

일라이 릴리는 올해 안에 당뇨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심혈관 개선 효과를 확인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미 FDA 허가를 추진할 계획이다. 릴리는 먹는 비만약도 개발 중이다. 회사는 최근 먹는 약(경구용)으로 개발 중인 GLP-1 계열 후보 물질 '오포글리프론'이 임상 3상 시험에서 평균 10.5% 체중을 감량(72주 투약·최고 용량 기준)한 효과를 확인했다며, 이를 토대로 글로벌 승인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약사는 하나의 약을 여러 질병 치료제로 적응증을 확대하거나 주사제를 먹는 약으로 개발해 시장을 넓힐 수 있다. 회사들이 이런 노력을 계속하면서 비만 치료제 시장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비만 치료제 시장이 연 평균 약 50% 성장해 2030년엔 고혈압 치료제 시장에 버금가는 1000억달러(약 139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