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키사(성분명 투카티닙)는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치료제이며, 원래 미국 제약사 씨젠(Seagen)에서 개발했다. 아시아 판권은 미국 머크(MSD)가 갖고 있다. /SEAGEN

그룹 원더걸스 출신의 가수 유빈이 가족의 유방암 투병 사실을 밝히며 항암제 투키사(성분명 투카티닙)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촉구하는 청원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유빈은 지난 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큰 언니가 2020년 유방암 진단 후 힘겹게 치료 중인데, 지난해 뇌로 암이 전이되어 하루하루 고통스러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며 "효과적인 치료제를 어렵게 찾아냈지만 막대한 약값 등 현실적 제약으로 적절한 치료가 곤란하다"고 했다.

유빈이 말한 항암제 투키사는 미국 씨젠이 인간표피성장인자 수용체(HER)2 양성인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개발한 먹는 약이다. HER2 양성은 유방암 세포의 표면에 HER2라고 하는 수용체가 과도하게 많이 있다는 의미다. 이 수용체는 암세포가 자라도록 신호를 보낸다.

기존 항체 치료제는 HER2 단백질에 결합해 기능을 억제한다. 허셉틴(트라스투주맙)이나 퍼제타(퍼투주맙)가 그렇다. 하지만 이런 항체 치료제는 뇌의 보호막인 혈뇌장벽(血腦障壁·Blood Brain Barrier)을 통과하지 못해 뇌로 전이된 유방암을 치료하지 못한다.

투키사는 혈뇌장벽을 통과해 뇌 전이 부위에서도 효과를 발휘한다. 임상시험에서 기존 치료제와 병용했더니 전체 생존 기간과 무진행 생존 기간을 유의하게 늘리는 효과가 확인됐다.

투키사가 국민청원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국내 허가를 촉구하는 국민청원 끝에 2023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허가했다. 하지만 아직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약값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 유빈이 청원 동참을 요청하며 공유한 게시물의 청원인에 따르면 투키사 약값은 2개월에 3000만원에 달한다.

그룹 원더걸스 출신의 가수 유빈.가족의 암 투병 사실을 밝히며 고가 항암제의 건보 급여 적용을 촉구하는 청원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유빈 인스타그램

신약에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려면 약가(藥價) 협상과 경제성 평가가 필수적이다. 제약사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급여 신청을 하면 기존 치료 대비 효과와 비용을 비교해 경제성을 평가한다. 이후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제약사가 가격 협상을 완료해 급여가 결정된다.

투키사처럼 고가 약품이면서 대상 환자 수가 적은 경우, 경제성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그만큼 보험 적용 절차가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심평원의 암질환심의위원회(암질심)와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를 '통곡의 벽'이라고 부를 정도다. 그러자 환자와 보호자들이 직접 항암제의 급여화를 촉구하는 국민 청원 운동을 벌이는 일이 많다.

투키사 청원인은 "현재 제약사 사정으로 국내 판매가 무기한 지연되면서 환자들은 개인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막막한 현실에 놓여 있다"며 "치료가 시급한 환자들은 센터를 통해 세 사이클(9주)마다 각종 구비서류를 넣고 8주를 기다려 겨우 약을 구할 수 있지만, 그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라고 말했다.

투키사 약값만 문제인 것이 아니다. 청원인은 "투키사와 다른 항암제와 함께 써야 하는데 비급여 항목이다 보니 원래 건강보험이 적용되던 나머지 약마저 비급여로 전환돼 연 2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치료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현 항암제 급여 제도가 그렇다. 김인호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 설명에 따르면, 한 달 치료에 200만원인 A 약제는 건보 급여가 적용돼 환자 본인 부담률 5%를 적용해 환자는 10만원에 치료받을 수 있으나,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200만원짜리 B 약제를 함께 쓰는 병용요법을 적용하는 경우 A 약제마저 비급여를 적용해 환자가 400만원을 전액 부담하는 식이다.

이에 환자와 전문가들도 항암제 급여 제도를 개선해 달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라선영 대한암학회 이사장은 "현재 개발 중인 항암제의 70% 이상이 병용요법이고, 새로운 약이 개발되면서 암 치료 한계를 극복하고 있지만, 국내 제도가 이런 항암제 개발 환경과 추세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면서 "아무리 좋은 약이 나와도 급여가 안 되면 의사, 환자, 보호자에게 그림의 떡"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보건당국이 무조건 환자의 요구를 들어줄 수도 없다. 초고가 항암제둘이 나올 때마다 급여 혜택을 주면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심평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항암제 약제비가 전년보다 26%나 늘었다.이에 건강보험제도 밖 고가의 항암신약과 관련한 별도의 제도를 마련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