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한국 미용 제품이 큰 인기를 끌면서 신약을 개발하던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이 시장에 잇따라 진출했다. 화장품과 미용 의료기기가 신약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캐시카우(cash cow, 수익원)이자 제약·바이오 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올랐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티앤알바이오팹(246710), 샤페론(378800), 에스엘에스바이오, 지에프씨생명과학(388610) 등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잇따라 화장품·의료기기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티앤알바이오팹은 이달 들어 미국 뷰티 브랜드 '스타랩 홀딩스에 '위클리 스파 키트'를 비롯해 미용 제품 4종에 대한 공급 계약을 맺었다. 오는 10월 미국 시장에 기초 화장품 제품도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티앤알바이오팹은 3D(입체) 바이오 프린터로 세포를 뿌리며 쌓아 생체 조직을 만드는 재생의학 전문 기업이다. 지난해 화장품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 블리스팩을 인수하며 신사업 진출 시동을 걸었다. 회사는 미국의 주요 화장품 유통업체인 울타뷰티(UltaBeauty), 세포라(Sephora) 등에 제품 입점을 노리고 있다.
샤페론은 서울대 의대 성승용 교수가 2008년 학내 벤처로 설립한 회사로,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 후보물질 '누겔(Nugel)'을 비롯한 여러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이 회사도 면역복합체 억제 기술을 기반으로 염증성 노화를 개선하는 화장품을 개발, 출시할 계획이다.
성승용 샤페론 대표는 "공기 오염이나 식이 습관 변화 등으로 인해 땀샘과 피지선에 생기는 미세 염증도 주름과 피부 노화를 유발하는 요인"이라며 "염증성 노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능성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샤페론은 화장품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지난달 말 GC녹십자(006280) 그룹 출신 김도선 부사장과 LG생활건강(051900) 출신 김인채 전무를 영입했다. 김 부사장은 글로벌 재무와 사업다각화 전략을 총괄하고, 김 전무는 면역 기반 화장품의 브랜드 전략과 유통 확대를 이끌 계획이다.
의약품 품질관리·시험검사전문 업체인 에스엘에스바이오도 지난 6월 화장품 시험 검사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고 공식화했다. 화장품 시장이 커지면서 수출·수입 화장품에 대한 검사 수요도 커진다고 판단한 것이다. 회사는 우선 피부 독성 시험 등 고부가가치 화장품 검사를 집중적으로 공략해 3년 내 시장 점유율 10%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영태 에스엘에스바이오 대표이사는 "회사는 기존 주력 사업인 의약품 시험검사 분야에서 시장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며 "이는 화장품·식품 시험 검사에도 활용할 수 있어 과도한 투자 없이도 해당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 원료 생산 업체인 지에프씨생명과학도 식물성 원료 1000여 종을 국내외 화장품 브랜드에 공급하고 있는데, 이를 기반으로 미용 의료기기로 사업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모두 화장품과 미용 의료기기 사업을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성장시켜 바이오 기술과 신약 개발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시장 전망은 밝다.
삼일PwC경영연구원에 따르면 의약품과 의료기기, 화장품 사업이 이끄는 글로벌 항노화 시장 규모는 2022년 1조9774억달러(약 2738조원)에서 2029년 2조8062억 달러(약 3886조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성장률(CAGR)은 11.5%로 추산됐다.
삼일 PwC는 "K-뷰티 산업은 기존 화장품과 더불어 미용 의료기기, 주사제, 홈케어 디바이스까지 아우르는 기술 기반 복합 산업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며 "세계적인 고령화로 항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미용 의료기기와 주사제 시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