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패션, 파스타, 피자 같은 음식 등 소프트파워로 널리 알려졌지만, 생명공학에서도 강한 경쟁력을 가진 국가입니다. 한국과 이탈리아 양국의 제약·바이오 산업 협력이 더 활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할 겁니다."
에밀리아 가토(Emilia Gatto) 주한 이탈리아 대사는 지난달 2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하이스트리트 이탈리아에서 만나 이같이 말했다. 이날 이탈리아 대표 제약사인 메나리니(Menarini)의 한국법인 배한준 대표이사도 자리를 같이 했다.
가토 대사에 따르면, 이탈리아 제약 산업 수출 규모는 연간 480억 유로(약 76조 8400억원)에 달하며 제약사 수도 700개에 달해 독일에 이어 유럽 2위다. 그는 "이탈리아 국내총생산(GDP)의 10% 이상을 생명공학 산업이 차지하고 있고, 해당 산업 종사자 수가 7만여 명에 달한다"며 "위탁개발생산(CDMO) 분야는 유럽 전체 매출의 23%를 차지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고 말했다.
가토 대사는 메나리니처럼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전통 제약사들이 많은 점도 이탈리아 제약·바이오 산업의 강점으로 꼽았다. 그는 "제약 산업의 경쟁력 뒤에는 중세부터 이어진 약초 치료의 전통과 중소기업 중심의 기술 축적, 임상 데이터 기반의 실용주의가 있다"고 했다.
이탈리아 1위 제약사인 메나리니는 1886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설립돼 현재 140국에 진출해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49억8000만 달러(한화 6조 8900억원)로, 지난해 회계연도 기준 세계 36위 제약 기업이다. 전 세계 임직원 수는 약 1만8000명이다.
두 사람은 환자의 건강, 생명과 직결되는 의약 분야의 혁신과 발전을 위해 양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협력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토 대사는 "우주공학 분야에서는 이미 한국과 이탈리아 양국의 대기업뿐 아니라 연구소·중소기업까지 참여하는 포괄적 협력이 활발하다"면서 "제약 산업에서도 주요 제약사뿐 아니라 대학·연구소, 벤처기업 등이 함께하는 다층적 협력 전략이 확대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배한준 한국메나리니 대표는 "한국과 이탈리아가 가진 기술·임상·인력 자원을 결합한다면 글로벌 바이오 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양국의 연구 인프라와 임상 경험을 연결하면 더욱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정부도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한국과의 협력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오는 9월 서울에서 열리는 제1회 한-이탈리아 비즈니스 포럼에서도 제약·바이오 협력이 핵심 의제로 다뤄질 예정이다.
가토 대사는 "이탈리아 외교부는 '성장을 위한 외교(Growth Diplomacy)' 전략 아래, 제약·바이오를 핵심 산업으로 규정하고 한국과의 실질적 기술 협력과 민간 투자 확대를 지원하고 있다"며 "한국-이탈리아 과학기술 협력 협정을 체결한 이후 양국 간 조인트 벤처가 늘어나고 있고, 암·신경계·희귀질환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동 연구가 이뤄지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배한준 한국메나리니 대표는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탈리아 기업 문화의 특징을 이해하면 양국 간 협력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메나리니는 2013년 한국법인을 설립하고 상당 기간 한국에 투자한 비용이 수익보다 더 많았지만, 사업 철수를 고려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메나리니는 한국에서 전문의약품(ETC)·일반의약품(OTC)·의료기기까지 전 분야를 아우르며 사업을 확장해 왔다. 전문약 주요 품목으로 고혈압 치료제와 암 환자용 통증 치료제가 있고, 무좀 치료제 '풀케어', 흉터 치료제 '더마틱스' 등 일반약도 유명하다.
한국메나리니는 일동제약·대웅제약·광동제약·동화약품 등 국내 제약사들과 제품 생산·유통에서 협력하고 있다. 배 대표는 "지난해 7월 부임 후 인공지능(AI) 시스템을 업무에 도입했으며, 한국 시장에 최적화된 이커머스(전자상거래) 모델도 준비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