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ChatGPT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올해 2분기에도 호실적을 이어갈 전망이다. 미국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과 식품의약국(FDA)의 심사 지연, 글로벌 수요 둔화 등 불확실성 속에서도 국산 신약의 해외 기술이전 성과와 매출이 실적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실적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업계는 수년간 연구개발(R&D) 성과가 본격적으로 매출로 나타나 실적에 반영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유한양행(000100)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반기 매출 1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올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핵심은 해외에서 매출이 나오는 폐암 신약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미국 제품명 라즈클루즈)'다.

미국 존슨앤드존슨(J&J)의 폐암 치료제 '리브리반트(아미반타맙)'와 렉라자의 병용요법이 일본에서 출시되면서, 마일스톤(단계적 기술료)과 미국 판매에 따른 로열티(경상 수수료)가 유입돼 유한양행 2분기 실적에 반영될 예정이다.

유한양행은 지난 5월 일본에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이 출시되면서 J&J로부터 상업화 기술료 1500만달러(한화 207억원)를 수령했다.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은 미국 판매는 물론 오는 3분기 유럽 출시까지 예정돼 있는 만큼, 추가 마일스톤도 예상된다. J&J는 올 1분기 해당 병용요법을 통해 1억4100만달러(195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렉라자 외에도 위탁개발생산(CDMO) 자회사 유한화학이 미국 길리어드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예방 주사제 '예즈투고'의 원료의약품(API) 공급 계약을 맺은 것도 유한양행 실적 확대에 한몫 할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9월 1077억원 규모 수주에 이은 888억원 규모의 두 번째 대형 계약이다.

그래픽=손민균

SK바이오팜(326030)은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미국 제품명 엑스코프리)의 미국 성장세를 바탕으로 이번 분기에도 안정적인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IBK투자증권은 엑스코프리의 2분기 매출을 약 1497억원으로 추산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2.3%, 전 분기 대비 12.3% 증가한 수치다.

회사는 하반기 중 다른 기업으로부터 도입한 새로운 신약 후보물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후보물질은 중추신경계(CNS) 치료제로, 미국 내 구축한 영업망을 활용해 제2의 세노바메이트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세노바메이트 단일 품목에 매출이 집중된 만큼,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전망이다.

HK이노엔(195940)도 신약의 해외 매출 성과 덕을 보는 기업이다. 위식도 역류질환 신약 '케이캡'의 해외 매출이 확대되면서 올해 연 매출 1조원에 돌파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케이캡은 국산 30호 신약으로 한국을 비롯해 현재까지 총 54개국에 진출했으며, 이 중 15개국에서 출시됐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이전한 신약 물질도 속속 개발 성과를 내면서, 이들 기업의 실적에도 잇따라 반영되고 있다.

종근당(185750)은 2023년 스위스 노바티스로부터 심혈관 질환 치료 후보물질인 'CKD-510'에 대한 마일스톤 500만달러(69억원)을 받았다. 임상시험계획(IND)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제출되는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2023년 계약 당시 받은 계약금 8000만달러(1109억원)에 이은 첫 번째 마일스톤이다.

에이비엘바이오(298380)도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에서 받은 계약금 740억원이 2분기 실적에 반영된다. 회사는 지난 4월 뇌혈관장벽(BBB)을 통과하는 독자 기술을 GSK에 최대 4조1000억원 규모로 기술이전했다.

앞서 2018년 유한양행을 시작으로 사노피, 컴패스 테라퓨틱스 등과 기술이전 계약을 맺으며 흑자를 기록하다, 지난 2023년 2분기 이후 영업손실을 냈다. 이번 GSK와의 대형 계약으로 2년 만에 흑자전환이 기대된다.

올릭스(226950)는 중국 한소제약(Hansoh Pharmaceuticals)에 기술이전한 리보핵산 간섭(RNAi) 신약 후보물질의 마일스톤으로 약 43억원을 받아 2분기 실적에 반영된다.

올릭스의 리보핵산 간섭 기술은 짧은 가닥 RNA로 두 개의 유전자를 동시에 억제할 수 있는 기술이다. 기존 RNA 간섭 치료제는 한 유전자만 조절한다. 이번에 신약 후보물질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비임상 단계의 핵심 과정인 우수실험실기준(GLP) 독성시험 진입을 앞두고 첫 마일스톤을 받았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R&D 성과로 인한 호실적 흐름은 하반기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김승민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관세, 약가 인하 등 대외 불확실성으로 제약·바이오 업종이 전반적으로 부진했지만, 일부 기업의 R&D 성과가 주가와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하반기에는 금리 인하 기대와 함께 알테오젠, 리가켐바이오, 에이비엘바이오 등의 기술수출 기대감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