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속에 염증이 생긴 축농증을 수술 없이 치료하는 마이크로 로봇이 개발됐다. 동물실험에서 고름을 뚫고 세균을 제거하는 능력을 입증했다. 연구가 발전하면 방광, 장 등 다양한 부위의 감염 치료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홍콩중문대(CUHK)를 비롯한 중국·홍콩 공동 연구진은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수십 분의 1 크기인 마이크로 로봇을 콧속 부비동에 삽입해, 점막 깊숙한 곳의 박테리아 감염을 정밀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지난 26일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Science Robotics)'에 게재됐다.
알레르기 비염은 코 점막이 특정 물질에 과민하게 반응해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콧물·코막힘·재채기 등이 주요 증상이며, 심해지면 부비강에 세균이 증식해 부비동염, 즉 축농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진은 감염 부위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이 마이크로 로봇 기술이 항생제나 치료제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마이크로 로봇은 초소형 자석이라 할 수 있는 자성 입자에 구리를 더해 만든 것으로, 가느다란 관(카테터)을 통해 콧속에 삽입된다. 책받침 위의 쇳가루를 아래쪽 자석으로 옮기듯, 몸밖에서 자기장을 걸어 자성 입자를 가진 마이크로 로봇을 환부까지 이동시킬 수 있다.
외부에서 자기장을 변화시키면 그에 따라 자성 입자가 회전·진동하거나, 광섬유가 쏘는 빛으로 열을 낸다. 이 방식으로 로봇이 고름처럼 끈적한 조직을 뚫고 감염 부위까지 도달해 세균의 세포벽을 깨뜨린다. 구리는 활성산소를 방출해 세균을 제거한다. 치료가 끝나면 콧속 점액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몸 밖으로 배출되도록 설계됐다.
연구진은 돼지와 토끼를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에서 마이크로 로봇 치료법의 효과를 확인했다. 돼지의 부비동에서는 세균 제거에 성공했고, 토끼에서도 조직 손상 없이 감염이 치료됐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리장(Zhang Li) 홍콩중문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마이크로 로봇 치료 플랫폼은 수술처럼 조직을 절재하지 않고, 약물을 쓰지 않아 내성 걱정 없이 감염을 치료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 있다"며 "기존 항생제 중심 치료법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밀하게 감염 부위에만 작용하는 마이크로 로봇 치료법은 전신에 약물을 퍼뜨리는 기존 치료 방식보다 부작용과 약물 저항성 우려가 적은 표적 치료로 주목받고 있다. 과학계는 이 기술이 향후 방광, 장, 비뇨기 등 다양한 부위의 감염 치료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 스위스, 미국, 영국 등 전 세계 연구팀들도 혈관 속을 자유롭게 이동하는 마이크로 로봇 개발에 나서고 있다.
캐나다 몬트리올 공대 실뱅 마르텔(Sylvain Martel) 나노로봇연구소 교수는 "이 기술은 마치 자석으로 조종하는 로켓 같다"며 "마이크로 로봇의 가장 큰 장점은 필요한 부위에만 정확히 작용한다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규제·제조 공정 등을 고려하면 실제 상용화까지는 5~10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치료법의 또 다른 장점은, 로봇이 감염 치료를 마친 뒤 코를 풀거나 재채기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몸밖으로 배출된다는 점이다. 별도의 수술이나 추가 처치가 필요 없어 환자 부담이 적다. 다만, 로봇 일부가 몸 안에 남을 경우 생길 수 있는 부작용과, 몸속에 로봇을 삽입하는 개념 자체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은 향후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영국 러프버러대의 안드레아 솔토지오(Andrea Soltoggio) 교수도 "일부 사람들은 처음엔 로봇 삽입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지만, 감염 부위를 국소적으로 치료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오히려 약물보다 단순하고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Science Robotics(2025), DOI: https://doi.org/10.1126/scirobotics.adt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