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다케다제약의 위산분비 억제제 '보퀘즈나(보노프라잔)'가 미국에서 특허권을 연장해 앞으로 10년간 독점권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HK이노엔(195940)의 같은 계열 신약인 '케이캡(성분명 테고프라잔)'이 미국 시장에서 보퀘즈나와 본격 경쟁할 가능성이 커졌다. 복제약 출시가 금지되는 동안 두 신약은 약가 인하 걱정 없이 약효로 진검 승부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일(현지 시각)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보퀘즈나의 미국 판매사인 패썸 파마슈티컬즈(Phathom Pharmaceuticals)가 제기한 보퀘즈나의 독점권 연장 시민청원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보퀘즈나의 미국 내 독점권은 기존 2027년에서 2032년까지 5년 더 연장됐다.
보퀘즈나는 미국에서 최초로 승인된 칼륨 경쟁적 위산분비 억제제(P-CAB) 계열 신약이다. 2023년 11월 출시 이후 1년 만에 누적 처방 11만8000건, 순매출 788억원을 기록하며 빠르게 시장을 장악했다.
보퀘즈나가 미국에서 가장 먼저 승인받은 치료 질환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제균(除菌)이다. 이에 FDA는 보퀘즈나를 항생제 신약 개발을 장려하기 위한 제도인 '우수감염증치료제(QIDP)'로 지정해, 2032년 5월까지 시장 독점권 추가 연장 혜택을 줬다.
당초 헬리코박터 제균을 제외한 보퀘즈나의 다른 치료 대상 질환인 위장 질환 치료, 미란성·비미란성 식도염 등에 대해서는 독점권이 2027년까지였다. 그러나 패썸은 이들 질환에 대해서도 헬리코박터 제균처럼 똑같이 10년 독점권을 적용해 달라고 요청했고, FDA가 이를 받아들였다. 미국에서 2032년까지 보퀘즈나의 제네릭은 출시될 수 없다.
이로써 2027년 미국 출시 예정인 HK이노엔의 국산 P-CAB 신약 케이캡의 주요 경쟁 변수가 사라졌다. 제네릭이 출시될 경우 오리지널 의약품의 약값은 기존보다 70% 수준으로 떨어지며, 다른 신약의 가격 경쟁력도 약화할 수밖에 없다. 이번 FDA 결정으로 케이캡과 보퀘즈나의 양강 구도가 견고해진 것이다.
HK이노엔은 앞서 지난 4월 미국 협업사 세벨라의 자회사인 브레인트리 래보라토리스를 통해 케이캡의 미국 임상 3상 시험을 완료했다. 현재 FDA에 신약허가신청(NDA) 제출을 앞두고 있으며, 허가 시 미국 시장 출시는 2027년으로 예상된다.
3상 결과에 따르면, 케이캡은 미란성 식도염(EE)에서 기존 치료제(PPI) 대비 우월한 효과를 입증했고, 비미란성 위식도 역류질환(NERD) 환자의 가슴쓰림·위산역류 증상에서도 유의미한 개선을 보였다. 회사가 지난 2021년 세벨라에 케이캡을 기술이전한 지 3년 만에 나온 임상 결과다.
다만 케이캡이 미국에서 승인받은 치료 대상 질환은 보퀘즈나와 차이가 있다. 보퀘즈나는 헬리코박터 제균을 비롯한 위·십이지장궤양, 미란성·비미란성 위식도 역류질환 등으로 승인받은 반면, 케이캡은 미란성 식도염, 비미란성 위식도 역류질환 치료를 목표로 임상이 진행됐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제균은 P-CAB 계열 위산분비 억제제에게 중요한 경쟁 포인트로 꼽힌다. 위 점막에 오래 남아있는 헬리코박터균은 염증을 일으키고 위궤양, 위암 등으로 진행될 수 있어 조기 제균 치료가 필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도 헬리코박터균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도 제균 치료를 위한 약물 수요가 꾸준히 존재한다.
일반적으로는 제균 치료에는 항생제 2종과 위산분비 억제제를 함께 투여한다. 위산 억제가 강한 P-CAB 계열 약물은 제균 치료에서 유리한 효과를 낼 수 있다. 보퀘즈나는 미국에서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에 사용되는 최초의 P-CAB 계열 약물로 승인됐으며, 개발 단계에서 QIDP로 지정돼 10년 독점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케이캡도 국내를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 효과를 인정해 치료 질환 대상에 포함됐다. 다만 미국 임상에는 헬리코박터균이 아닌 위식도 역류질환을 중심으로 설계됐다.
HK이노엔 관계자는 "미국 임상과 판매는 현지 파트너사인 세벨라가 담당하는데, 아직 헬리코박터균 관련 적응증 확대를 위한 추가 임상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세벨라가 현지 시장 상황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HK이노엔은 가격 경쟁력과 파트너사의 미국 소화기 의약품 시장에서의 입지를 케이캡의 강점으로 보고 있다. 최근 한국투자증권 리포트에 따르면 보퀘즈나 약가가 22달러(3만1480원)인 반면, 케이캡의 미국 약가는 17달러(2만4325원)로 추정된다. 또 케이캡의 미국 내 판매와 마케팅을 담당하는 세벨라는 미국 소화기 의약품 전문 기업으로 현지 시장에서 두터운 입지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