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항체 신약 개발 기업인 파멥신(208340)의 코스닥 시장 퇴출이 확정됐다. 이 회사는 2018년 1000억개 넘는 인간 항체 라이브러리 기반 기술을 인정받아 기술특례 1호로 시장에 입성했지만, 임상시험 중단과 매출 부진 등으로 퇴출됐다. 기술특례로 상장한 바이오 기업으로는 두 번째 퇴출이다.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기술특례 바이오 기업들이 늘고 있다. 올해 들어 한국거래소로부터 상폐 심사 전 '관리 종목'으로 지정된 바이오 분야 기술특례 상장사가 9곳에 달한다. 2005년 기술특례 제도 도입 이후 최대 규모다. 아직 5월인데도 지난해 지정된 8곳보다 더 많다. 올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바이오 기업이 두 자릿수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기술특례상장은 자금은 부족하지만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일정 등급(A·BBB 이상)을 받으면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다. 2005년 처음 도입돼 지난해까지 총 250여 기업이 이 제도를 통해 상장했으며, 그중 바이오 기업은 130여 곳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만큼 이 제도는 바이오 기업들의 성장 발판이 돼줬다.
관리 종목 지정은 상장 법인의 경영 악화, 공시 의무 불성실 이행 등 거래소가 정한 지정 사유가 발생한 경우 투자 위험을 알리기 위한 제도다. 일반 코스닥 상장 기업은 연간 매출액 30억원 미만, 법인세차감전계속사업손실(법차손) 비율이 자기자본의 50%를 넘는 경우가 3년 중 2회 이상 발생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기술특례 상장 기업은 관리 종목 지정에서도 혜택을 본다. 상장 이후 매출액 요건은 5년, 법차손 요건은 3년간 유예된다. 하지만 이 기간을 넘겨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기술특례 기업도 다른 기업처럼 관리종목 지정을 받는다. 지정 후 일정 기간 동안 개선되지 않을 경우 상장이 폐지된다.
최근 유예 기간을 넘겨 관리종목 지정을 받는 바이오 기술특례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3월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다. 자기자본 대비 법차손 50% 초과 사유였다. 1년 뒤인 내년 3월 말까지 이 요건을 해소하지 못하면 상폐 심사 대상이 된다.
2019년 기술특례로 상장한 브릿지바이오는 지난달 특발성 폐섬유증(IPF) 치료 후보물질인 'BBT-877′이 글로벌 임상 2상 시험에서 실패하면서 위기에 빠졌다. 신약 개발 기대감으로 1만원을 넘보던 주가는 임상시험 실패 공시 이후 700원대로 추락했다. 브릿지바이오는 연내 70억원 이상의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만큼, 경영권 매각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특례 상장 5년차인 에스씨엠생명과학(298060)도 상황은 비슷하다. 줄기세포 배양 원천기술로 상장해, 올해 1월 이식편대숙주질환(GVHD) 치료제의 임상 2상 시험 성공 시 매출 발생을 기대했지만 임상시험이 좌초됐다. 그 여파로 법차손 비율 요건을 채우지 못해 관리 종목에 올랐다. 이 밖에 디엑스앤브이엑스, 애니젠, 카이노스메드(284620) 등이 법차손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관리 종목으로 지정됐다.
특히 올해 관리 종목에 오른 바이오 기압 중에는 유독 법차손 요건 미충족 사유가 많다. 법차손은 사업에서 발생한 지속적인 손실 규모에서 법인세를 차감하기 전 수치를 말한다. 이익보다 손실 중심의 지표다. 바이오 기업은 수익이 없는 상태에서 큰 규모의 연구개발(R&D) 비용을 지출하는 특성상 비교적 법차손이 크게 잡힌다.
실제로 한국바이오협회가 국내 바이오 기업 170개사를 상대로 실시한 '바이오 기업 특례상장 제도 개선 방안' 설문 조사 결과, 127개사(74.7%)가 법차손 요건 완화를 산업 활성화를 위한 최우선 개선 과제로 꼽았다. 업계에서는 현재 비용으로 인식되는 R&D 비용을 무형자산으로 처리해 달라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바이오 분야는 자기자본 자체가 작고, 업종 특성상 R&D 자금이 많이 드는 데 비해 매출이 없어 손실을 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매출·법차손 요건을 없애는 대신 이사회 구성과 경영 전반에 대한 감사를 강화해, 투자자와 기업 혁신 모두 보전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