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돼지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한 뒤 기능이 중단돼도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과학계는 이종이식이 장기 부족 문제를 풀 해법으로 주목하고 있다./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미국 50대 여성에게 이식된 돼지 신장이 4개월간 기능을 유지하며 이종(異種) 장기 이식 사상 최장 기록을 세웠다. 이후 신장 기능이 멈춰 장기를 제거했지만, 여성은 다시 투석 치료를 받으며 건강을 되찾았다.

돼지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한 뒤 기능이 중단돼도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과학계는 이종 장기 이식이 만성적인 이식용 인간 장기 부족 문제를 풀 해법으로 주목하고 있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미국 뉴욕대 랑곤병원에서 돼지 신장을 이식받은 50대 여성이 이식 130일 만인 지난 4일 신장을 제거했다. 지난 3월부터 배뇨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혈중 크레아티닌 수치도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크레아티닌은 근육에서 생기는 노폐물로, 신장 기능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이 여성에 이식된 돼지는 미국 바이오 기업인 유나이티드 테라퓨틱스 코퍼레이션(UTC)이 개발했다. 돼지 장기에서 면역거부반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10개 이상 변형해, 사람 몸속에서 거부반응을 최소화했다.

만성 신부전증을 앓던 이 여성은 이식 전까지 9년간 투석 치료를 받아왔다. 신부전은 노폐물을 걸러내는 신장 기능이 크게 떨어져 스스로 회복이 어려운 상태로, 이식 수술이 근본적 치료법이지만 기증받은 신장이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현재 미국 내 3700만명 이상이 만성 신장 질환을 앓고 있으며, 그중 10만 명이 신장 이식 대기자 명단에 올라가 있다. 하지만 기증 장기가 부족해 이식 수술 건수는 줄어드는 추세다. 2023년 한 해 동안 이뤄진 신장 이식 수술은 2만5000건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최근 장기 이식 대기자가 넘쳐 나는 상황에서 이종 이식이 대안이라고 보고 있다. 이식 수술을 집도한 랑곤병원의 로버트 몽고메리(Robert Montgomery) 교수는 "이종 장기 이식의 가장 큰 장점은 실패해도 환자가 다시 기존 치료로 돌아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번 사례가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번에 여성 환자는 돼지 신장을 제거한 이후에도 다시 투석을 받으며 빠르게 건강을 회복 중이다. 의료계는 돼지 장기가 일정 시간만 기능해도 인간 장기를 구하기까지 시간을 벌 수 있다고 본다. 가령 간 이식이 시급한 환자가 이식용 간을 구하지 못하는 동안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돼지 간을 이식하는 '가교 요법(Bridge Therapy)'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종 장기 이식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최근 UTC에 6명 규모의 돼지 신장 이식 임상시험을 승인했다. 결과가 긍정적일 경우 최대 50명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다른 바이오 기업인 이제네시스(eGenesis)도 임상시험 확대를 위해 FDA에 새로운 신청을 준비 중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첫 환자에게 유전자 변형 돼지 신장을 이식한 데 이어, 올해 1월 두 번째 환자인 60대 남성에게도 돼지 신장을 이식했다. 최근에는 간부전 환자에게 돼지 간을 이식하는 임상시험에 착수했다. 영국 오가녹스(OrganOx)도 임상시험에 참여한다.

이들 회사 모두 돼지 장기의 안전성과 적합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유전자 편집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사람의 면역계를 자극하는 당 성분을 제거하고, 혈전 발생 위험을 줄이며, 돼지 체내에 존재할 수 있는 바이러스 유전자의 작동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면역거부반응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유전자 편집 기술과 면역억제제 개발이 발전하면, 이종 장기 이식의 시대가 올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