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일인 1월 20일(현지시각)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AP연합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미국 보건의료 주무 부처에 칼끝을 겨누고 있다. 인력·예산 감축과 인허가, 약가 정책 등에 대한 미 보건당국의 기조 변화에 한국 기업·연구자들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상황이라 국내 업계도 주목하고 있다.

17일 외신에 따르면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보건복지부·내무부·에너지부·보훈부·농무부 등 주요 부처의 수습 직원들에 대해 대거 해고 조처를 내렸다.

의료 전문지인 스탯(STAT)에 따르면 해고는 14일에 시작됐으며 미국 식품의약국(FDA), 국립보건원(NIH), 질병통제예방센터(CDC)를 포함한 복지부 전체 직원 5200여명이 해고될 예정이다. 이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가 이끄는 정부효율부(DOGE)가 추진한 인력 감축 기조의 일환이다.

앞서 트럼프는 지난 11일 백악관에서 연방 정부 기관들이 대규모 감원 준비에 신속히 착수해야 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연방 공무원 약 230만명 중 2~5%(4만6000~11만5000명)를 감원하겠다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 목표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은 미 FDA에 대대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으며, NIH에 대한 예산 삭감도 추진 중이다. 그는 지난해 FDA의 치료법 승인 절차에도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FDA 관계자들은 이번 직원 감축이 역효과를 낼 것이라며 우려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FDA는 민간 제약 기업과 비교해 직원 채용에 어려움을 겪어왔는데, 최신 기술을 보유한 젊은 직원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미치 젤러 전 FDA 이사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해고는 연방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방법"이라며 "인재를 모집하고 유지하는 능력을 파괴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69억달러(약 9조9470억원) 규모의 FDA 예산 절반가량이 제약·의료기기 기업이 내는 수수료에서 나온다. 이는 의약품과 의료기기 제품을 신속하게 검토하기 위해 필요한 과학자를 고용하는 주요 재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FDA가 주요 직책을 없애도 정부 지출이 줄어드는 건 아니라고 AP는 전했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신 음모론자로 알려진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를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로 지명하고 임명됐을 때마다 화이자, 머크(MSD), 모더나 등 주요 제약 기업들의 주가가 떨어지는 타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건의료 당국에 대한 압박은 미국뿐 아니라 국내 산업계와 연구자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우려가 잇따른다.

한 국내 바이오 기업 대표는 "미국 대선 전 NIH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는 프로젝트를 미국 측과 논의해 왔는데, 트럼프 취임 이후 계획이 틀어진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FDA와 NIH 등 미국 보건당국의 정책과 예산, 허가 기조 변화가 국내 기업과 세계 시장 전반에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약가 문제도 국내에서 초미의 관심사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화이자, 머크, 길리어드 등 주요 기업 CEO들이 이번 주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할 예정이다. 미국 로비 단체인 미국제약협회(PhRMA)도 참석한다. 이번 회동의 핵심 주제는 약가 인하 문제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대로 약가가 떨어지면 한국 업계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황주리 한국바이오협회 국제협력본부장은 "오리지널 약품 가격이 떨어지면 한국의 복제약도 가격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의약품 관세 부과 여부, 중국 제약·바이오 시장 관련 정책도 한국 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들이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