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비만 치료 신약으로 선풍적 인기를 끈 미국 대형 제약기업 일라이 릴리가 한국 바이오기업 올릭스(226950)가 개발 중인 신약 후보 물질 기술을 9000억원대에 사들였다.
올릭스는 대사이상지방간염(MASH)과 심혈관·대사질환 치료 신약 후보 물질 OLX702A(물질명 OLX75016)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총 약 9117억원에 일라이릴리에 이전하기로 했다고 지난 7일 밝혔다.
총계약 규모가 1조원에 육박하는 데다 대내외적 요인들로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새해 첫 빅딜이라 시장의 관심을 모았다. 이번 계약에 따라 올릭스는 OLX75016의 임상 1상을 완료해야 한다. 이후 임상 개발과 사업화는 일라이 릴리가 진행하며, 일라이 릴리가 독점 권리를 갖는다.
◇ 美 릴리, 비만 다음 MASH 치료제 시장 노려
덴마크 노보노디스크와 미국 일라이 릴리는 혈당을 조절해 식욕을 억제하는 원리의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비만 치료 신약을 각각 선보이며 세계 당뇨·비만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이다.
일라이 릴리의 당뇨·비만 치료제 마운자로·젭바운드(성분명 티르제파타이드)로 지난해 450억4270만달러(약 65조39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전년보다 32% 늘어난 규모다.
공급이 달릴 만큼 미국에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으나, 최근 미국 증권 시장에서는 비만 치료제 실적이 기대치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동안 GLP-1 계열 치료제에 대한 수요가 과대 평가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더구나 비만 신약 개발에 뛰어든 후발 업체들도 늘고 있다. 기업으로선 선두 지위를 지키면서 중장기 성장성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인 셈.
일라이 릴리가 당뇨, 비만에 이어 겨냥한 영역이 바로 MASH, 심부전 등 대사질환이다. 대사질환은 인체가 영양물질을 분해해 에너지를 얻고 부산물을 배출하는 대사 과정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질환을 뜻한다. 이는 경쟁사 노보 노디스크도 노리고 있는 분야다.
MASH는 지방이 쌓이면서 염증과 간 손상을 동반하는 질환이다. 간이 딱딱해지는 간경화, 간암 등을 초래할 수 있다. 한동안 비알콜성 지방간염(NASH)으로 불리다, 대사 요인을 강조하기 위해 글로벌 간학회가 2023년 MASH로 공식 명칭을 바꿨다.
현재 전 세계 MASH 환자 수는 4억40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환자 수가 증가하고 있으나 아직 획기적인 치료가 없어, 제약 기업에는 사업 기회와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으로 꼽힌다. 시장조사기관 리서치네스터에 따르면 세계 MASH 치료 시장 규모가 2024년 61억6000만달러(약 8조원)에서 2037년 505억달러(약 70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지난해 미국 마드리갈 파마슈티컬스의 레즈디프라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세계 첫 MASH 치료제로 등장했으나, 부정맥, 심부전 등 부작용과 함께 치료 효과가 안 듣는 환자도 있어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 바 있다.
◇ 릴리 지갑 연 OLX702A, 에너지 대사 증가
RNA 간섭은 세포 내에서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현상이다. 유전자 스위치를 끄는 것과 같이 특정 RNA 분자를 이용해 원하는 유전자의 기능을 조절할 수 있다. 올릭스는 이런 RNA 간섭(RNAi) 현상을 이용해 질병을 일으키는 특정 단백질의 생성을 억제하는 원리의 치료제를 개발한다.
릴리가 점찍은 OLX702A도 올릭스의 비대칭 RNA 간섭 플랫폼을 통해 개발 중인 후보물질 중 하나다. OLX702A는 특정 유전자(MARC1)의 활동(발현)을 억제하는 유전자치료제 후보물질이다. 이 유전자의 활동이 억제되면 체내 에너지 대사가 증가해 체지방이 감소한다. 이를 통해 체지방을 줄이고, 과체중과 비만 때문에 생기는 지방간도 개선하는 치료 원리다.
회사는 전임상을 통해 OLX702A를 두 달 동안 원숭이에게 투여 후 지방이 최대 40% 줄어든 결과를 확인했다. 쥐(마우스)에 투여한 결과 두 달 동안 26%의 체중 감소 효과도 나타났다. 원숭이 모델 시험에서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 단독 투여군과 비교해 체중·체지방률·복부둘레 감소 효과가 더 컸다. 마우스 모델을 대상으로 일라이 릴리의 젭바운드(터제퍼타이드)와 병용 투여해 요요 현상을 늦추는 것을 확인했다.
즉, 식욕을 억제하는 원리의 GLP-1 계열 비만치료제의 한계가 투약 중단 시 다시 식욕이 돌아와 체중이 불어나는 요요 현상인데, 에너지 대사를 올려 체지방을 줄이는 효과를 내는 OLX702A가 이를 해결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 셈이다.
올릭스는 이후 호주에서 OLX702A의 안전성과 최대 내약 용량(MTD) 확인을 목적으로 한 임상 1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11월 회사는 BMI가 27 이상인 건강한 성인 60여 명을 대상으로 OLX702A를 투여한 임상시험 중간 결과, OLX702A를 통한 체지방 감량을 기대할 만한 데이터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지방성 간 질환과 관련된 대사 기능 장애(NAFLD) 환자 대상으로 OLX702A 투여 후 추적 관찰해 지방 함량이 최대 약 70%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올릭스의 이번 기술 수출에 대해 "일라이 릴리의 전임상 단계 R&D 파이프라인의 20%는 RNA 핵산 치료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며 "유전자 치료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업체와 손을 잡았다는 점이 주목된다"고 의견을 냈다. 그는 "전임상에서 젭바운드 저용량과 병용 투여 시 요요현상이 완화된 것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향후 비만 적응증 확대도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