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라이 릴리의 비만 주사 치료제 젭바운드와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 주사 치료제 위고비./로이터

비만 신약 위고비를 개발한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가 3년 동안 전 세계 비만약 시장을 독주하고 있는 가운데 그 뒤를 바짝 쫓아온 미국 일라이 릴리가 올해 안에 1위 자리를 탈환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시장조사업체인 글로벌데이터는 2일(현지 시각) 일라이 릴리가 개발한 비만약 젭바운드의 시장 점유율이 올해 빠른 시일 안에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를 제치고 비만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달 초 젭바운드의 체중 감량 효과가 위고비보다 47%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시장 지형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위고비는 2021년 6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승인을 받은 비만 치료제로, 현재 세계 비만 치료제 시장 약 74%를 점유하며 선두를 지키고 있다. 젭바운드(성분명 티르제파타이드)는 2년 뒤인 2023년 11월 승인을 받은 후발 주자다. 국내에는 ‘마운자로’라는 제품명으로 오는 5월 출시될 예정이다.

그래픽=정서희

◇”‘젭바운드’, 올해 ‘위고비’ 시장 점유율 넘어설 것”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초 젭바운드의 미국 내 신규 처방 건수가 처음으로 위고비를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8월까지 젭바운드가 미국 비만약 시장의 40%를 점유하며 위고비를 뒤쫓고 있다고 추정했다.

다만 위고비의 매출액을 넘어서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난해 3분기 위고비의 매출액은 17억 달러(한화 2조5000억원)를 기록한 반면 젭바운드는 12억6000만 달러(1조8540억원)였다. 위고비의 인기로 노보 노디스크가 지난 2023년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매출 1위에도 올랐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노보는 2023년 연 매출액이 680억 달러(99조800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위고비의 독주 체제가 올해 안에 깨질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12월 릴리가 젭바운드와 위고비의 체중 감량 효능을 직접 비교한 결과, 젭바운드를 복용한 참가자들은 1년 반(72주) 후 평균 20.2%% 감량한 반면, 위고비 복용 참가자들은 같은 기간 13.7%를 감량했다.

코스탄자 알치아티 글로벌데이터 연구원은 “위고비의 비만약 시장에서의 영향력은 엄청났지만, 젭바운드를 통한 혁신은 계속되고 있다”며 “보건당국과의 협상을 통해 위고비보다 비용면에서도 효율적일 것이며, 젭바운드가 조만간 비만 시장의 선두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 젭바운드가 경증·중증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OSA)에 대해서도 FDA 승인을 받은 게 한몫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릴리는 현재 젭바운드를 심부전, 당뇨병 전증, 대사지방간염(MASH) 등으로 치료 대상을 확대하기 위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노보는 만성 신장 질환, 알츠하이머병, MASH 등에 대한 효능을 검증하고 있다.

위고비와 젭바운드 모두 당뇨병 치료제로 먼저 개발했다가 체중 감량 효과 부작용이 확인돼 비만 치료제로 새롭게 탄생했다. 둘 다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비만 치료제로, 인슐린의 분비를 촉진하는 동시에 위에서 음식물을 소화하는 속도를 늦춰 포만감을 느끼고 식욕을 억제해 체중 감량 효과를 낸다.

다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젭바운드 성분인 티르제파타이드는 GLP-1은 물론, 위 억제 펩타이드(GIP)를 동시에 겨냥한다. GIP는 지방세포를 분해하고 메스꺼움을 줄여주는 만큼, 체중 감량 효과가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젭바운드·위고비’ 장악 막자”…차세대 비만약 개발도 이어져

두 기업이 비만약 시장을 점유하기 위해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여러 후발 주자들이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대표적으로 월 1회 투여 가능한 비만약 후보물질인 마리타이드를 개발 중인 암젠은 최근 임상 2상 결과를 발표해 업계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비만 또는 과체중인 성인 592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2상 결과, 평균 14.5%의 체중 감량 효과가 나타났다. 마리타이드는 젭바운드처럼 GLP-1과 GIP를 동시에 겨냥한다.

주사제가 아닌 먹는 방식의 경구용 비만 치료제로 환자들의 투약 편의성을 높이려는 곳도 있다. 중국 항서제약은 경구용 비만 치료 후보물질인 ‘HRS-9531′을 개발해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화이자는 지난해 7월 경구용 GLP-1 비만 치료 후보물질인 ‘다누글리프론’ 개발을 재개했다.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개발되고 있는 경구용 비만 치료제는 63개에 달한다.

HK이노엔(195940), 동아에스티(170900), 일동제약(249420), 디앤디파마텍(347850), 한미약품(128940) 등 국내 기업들도 차세대 비만 치료 물질 개발에 뛰어들었다.

HK이노엔은 지난해 5월 중국 바이오기업 사이윈드로부터 도입한 GLP-1 계열 비만 신약 후보물질 ‘IN-B00009′를 개발 중이다. 최근에는 국내 임상 3상 시험계획서(IND)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출했다. IN-B00009는 주 1회 투여하는 주사제로 중국에서 제2형 당뇨·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3상이 진행되고 있다. 중국과 호주에서 진행된 임상 2상에서 혈당강하·체중감량 효과와 함께 안전성이 확인됐다.

동아에스티 자회사인 메타비아는 GLP-1·GCG 이중작용제 ‘DA-1726′의 글로벌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며, 올해 1분기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한미약품은 근 손실을 최소화하면서도 25% 이상 체중 감량 효과가 기대되는 차세대 비만 치료 삼중작용제인 ‘HM15275′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며, 내년 2상 진입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