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바이오기업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이 발의한 '생물보안법(바이오보안법)'의 연내 통과 여부가 일주일 내 결정될 전망이다.
올해 초 이 법안이 발의되자, 시장에선 한국 기업들이 중국 기업들의 빈자리를 차지하며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관측이 잇따랐다. 하지만 최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면, 기회는커녕 위기가 될 수 있다는 경고음도 나오고 있다. 중국이 떠난 자리를 노리는 국가와 기업들이 늘고 있어, 자칫 출혈 경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3일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와 미국 폭스뉴스 등에 따르면, 미국 하원의장이 최근 국방수권법에서 빠진 생물보안법안을 연내 통과시킬 수 있도록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연내 통과되는 필수 법안에 이를 포함시키는 전략이 거론된다. 필수 법안에 포함되면 연내 통과될 수 있는데, 포함 여부가 오는 20일(현지 시각) 전까지 결정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물보안법은 미국 정부가 자국민의 건강·유전 정보 등 안보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제약·바이오 기업과의 거래·계약·보조금 제공 등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사실상 미국 바이오 공급망에서 중국 기업을 저지하는 게 핵심이다. 이 법안이 최종 통과하면 중국 우시바이오로직스를 비롯한 주요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퇴출당한다.
애초 미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무리 없이 연내 통과될 것으로 전망됐으나, 일부 민주당 의원이 법에 특정 기업을 적시하는 것은 추가적인 절차가 필요하다며 제동을 걸었고, 논의 막판에 내년도 국방수권법에서 제외됐다. 국방수권법은 미 국방부의 한 해 예산을 결정하는 정책 법률이다. 국방수권법에서 빠진 법안에는 생물보안법안을 비롯해 인공지능(AI), 컴퓨터 칩, 양자 컴퓨팅 분야에서 중국 기업 투자를 금지하는 법안이 있다.
존슨 하원의장은 성명을 통해 "협상 과정에서 중국에 대응하고 경제적 안보를 강화하는 데 동의하는 의원들이 꽤 많았다"며 "그 추진력은 여전히 남아 있으나, 이를 연내 통과시키려면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세계 제약·바이오 업계는 미국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생물보안법 통과 가능성에 빠르게 대비한 기업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지은 산업연구원 신산업실 연구위원은 "국내 업계에 기회가 될 수 있는 분야는 바이오시밀러와 위탁개발생산(CDMO)"이라며 "이미 기술력과 품질을 인정받은 기업에는 미국 시장의 수주 물량이 몰릴 수 있지만, 아직 입증하지 못한 후발 기업에는 기존보다 기회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황주리 한국바이오협회 대외협력본부장도 "생물보안법이 통과된다고 해도 한국에만 기회가 오는 게 아니라, 온 나라의 기업들이 다 달려들어 경쟁이 과열될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는 기술력, 네트워크, 자금력 등 3요소가 중요한 판가름이 될 것이며, 준비가 되지 않은 기업에는 아무런 혜택도 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의약품 CDMO 분야는 벌써 생산시설 증설 경쟁이 시작됐다. 세계 1위인 스위스 론자는 13일(현지 시각) 캡슐·건강 성분(CHI) 사업을 정리하고, CDMO 사업에 전념한다는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달에는 바이오접합체 출시와 상업용 대량생산을 위해 1200L 규모의 신규 제조시설 2개를 스위스 바스프 지역에 추가로 건설하고, 기존 시설을 확장해 2028년 본격적으로 가동할 계획을 내놨다.
이웃 국가인 일본과 인도도 정부 지원에 힘입어 발 빠르게 생산 능력을 키우고 있다. 후지필름 다이오신스는 다양한 제품군과 생산능력 확대로 론자와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에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로 떠올랐고, 인도는 저분자 생산 분야에서 중국 뒤를 바짝 뒤쫓고 있다.
황주리 본부장은 "얼마나 준비했는지에 따라 생물보안법 통과가 한국에 기회가 될 수도, 위기가 될 수도 있다"며 국내 진단키트 업체들이 코로나19 대유행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공급력을 키워 폭발적인 수요에 대응한 사례를 들었다. 그는 "우리 진단키트 업체들이 물량 싸움에서 빛을 발한 것은 팬데믹을 예측했다기보다 가능성을 열어두고 미리 준비한 덕분"이라며 "일본과 인도 등 주변국은 물론 주요 기업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동향을 잘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