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7~10일(현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5′에서 '디지털 헬스'와 '뉴로테크(신경과학 기술)' 분야가 큰 조명을 받을 전망이다. CES 주최사인 미국소비자기술협회에 따르면, 이번에 디지털 헬스, 인공지능(AI), 지속가능성 분야에 가장 많은 혁신상이 수여된 데다 행사 첫날 콘퍼런스 트랙 주제로 '뉴로테크(신경과학기술) 프론티어-뇌 기계 연결의 미래 탐구'를 선정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분야에서 한국 기업과 기관들이 약진하고 있다. 10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분석 결과에 따르면, CES 주최사인 미국 소비자기술협회가 발표한 CES 2025 혁신상 선정 대상 1차 결과, 전 세계 292개 수상 기업 중 129개사가 한국 기업이다. 제품 기준으로는 165개 상을 받았다. 메인 카테고리인 디지털 헬스, AI 분야에서 한국 기업이 각각 24곳(53%), 23곳(53%)으로 과반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CES 혁신상은 미국 소비자기술협회가 전 세계 혁신제품 중 기술성, 심미성, 혁신성이 뛰어난 제품에 주는 상이다. 세계 각지에서 온 심사위원 100여명이 평가하며, 그해 처음 출시된 제품만 상을 받을 수 있다. 전체 수상 결과는 다음 달 7일 CES 전시회 개막일에 발표될 예정이다. 이번 CES 2025의 주제는 '뛰어들어라(Dive In)'로, 157개국, 4500여개 업체가 참여할 예정이다.
◇CES 키워드로 떠오른 신경과학 기술
CES는 올해 행사 주요 키워드로 뉴로테크를 꼽았다. CES는 '뉴로테크 프론티어-뇌 기계 연결의 미래 탐구'를 주제로 한 콘퍼런스 트랙을 통해 "웨어러블(wearable·착용형)부터 임플란트(implant·이식)에 이르는 최첨단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 BCI) 기술을 조명한다"고 밝혔다. 또 "뉴로테크가 신경 질환 분야에서 어떻게 의료 혁신을 이루고 있는지, 이 분야 스타트업과 투자자들의 통찰력을 함께 조명할 것"이라고 했다.
BCI 기술은 뇌의 신경세포(뉴런)가 근육에 어떤 동작을 하라고 신호를 내면 컴퓨터가 그 신호를 해독하는 기술이다. 사람 뇌에는 신경세포가 약 860억개 있다. 이 신경세포들은 서로 시냅스(신경세포 연결부)로 연결돼 있다. 사람이 움직이고 느끼고 생각할 때마다 작은 전기 신호가 나와 한 신경세포에서 다른 신경세포로 빠르게 전달된다. BCI는 이 체계를 해독하고 컴퓨터로 신호를 보내 사람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다.
뇌공학자들은 BCI를 '인류의 미래를 바꿀 혁신 기술'이라고 꼽는다. 특히 신경이 손상되면서 일어나는 신체 장애나 전신이 마비되는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 같은 난치성 뇌 질환을 극복할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트러티스틱스 MRC는 BCI 시장 규모가 올해 23억달러(약 3조2124억원)에서 2030년 80억달러(약 11조1736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기업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뉴럴링크는 BCI 대표 주자다. 미국 싱크론, 스페인 인브레인 뉴로일렉트로닉스뿐 아니라 국내 지브레인(Gbrain) 등이 이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 2019년 설립된 지브레인은 뇌의 피질에 칩을 심어 컴퓨터가 인식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왔다.
지브레인이 개발한 무선 신경 임플란트 '핀스팀(Phin Stim)'은 디지털 헬스 부문 CES 혁신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핀스팀은 파킨슨병과 뇌전증을 치료하고, 생각만으로 주변 기기를 제어할 수 있는 제품이다. 파킨슨병, 뇌전증 환자가 이상 증상을 보일 때 뇌 표면에 붙인 핀스팀이 자극을 줘 정상 상태로 돌리는 방식이다.
CES는 "핀스팀은 이동 중에도 신경 가소성(신경회로 복구) 치료를 해 환자가 활동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다"며 "개인화된 신경 치료의 미래를 제시한 제품으로, 지브레인이 신경 기술 분야 리더로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고 평했다.
◇AI와 만난 헬스케어 혁신 조명
혁신상 수상 명단에는 AI(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국내 헬스케어 스타트업과 대학도 다수 올랐다. 에이슬립, 프리베노틱스, 피티로브,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한양대 등 22개 기업, 대학이다.
모바일 기기로 수면 중 발생하는 숨소리를 측정해 수면 상태를 진단, 추적하는 AI 서비스를 개발한 에이슬립은 CES 2025 AI와 디지털 헬스 부문 혁신상을 수상했다. 에이슬립은 이동헌 대표, 홍준기 최고기술책임자(CTO), 구윤표 제품총괄 등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실에서 만난 6명이 2020년 공동 창업한 회사다. 회사가 개발한 '슬립봇'은 수면 단계와 장애를 가정과 병원에서 자동으로 측정할 수 있는 AI 분석 솔루션이다. 시계나 반지 형태로 개발된 다른 제품과 달리 비접촉식으로, 실시간으로 수면 단계를 분석하고 맞춤형 수면 환경을 제어해 수면의 질을 개선한다. 회사에 따르면 진단 정확도가 병원 검사의 94%에 이른다.
프리베노틱스는 AI 위암 예방 솔루션인 '프리베노틱스-지프로(Prevenotics-G Pro)'로 인간 안보 부문에서 혁신상을 수상했다. 이 제품은식품의약품안전처 의료기기 승인을 받고 은성의료재단 좋은문화병원, 국립의료원, 서울대병원 등 실제 의료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프리베노틱스는 글로벌 제약사인 사노피에서 사업 개발과 효율화 부서 상무를 지낸 장수연 대표가 LG전자 출신 산업 영상 AI 전문가 이준우 박사와 함께 2021년 창업한 회사다.
위에 장과 닮은 조직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바로 장상피화생(腸上皮化生)이다. 상피 조직이 이렇게 변성(화생)되면 위암이 생기기 쉽다. 회사는 내시경 검사 영상만으로 장상피화생을 진단하는 AI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장수연 대표는 "암 전 단계인 장상피화생의 육안 진단 정확도는 50%대인데, 프리베노틱스의 장상피화생 진단 정확도는 85~90% 수준"이라며 "제품을 계속 고도화하고,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 다각도로 속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