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제약 연구원이 AI 신약개발 시스템으로 통해 신약 후보 화합물질을 탐색하고 있다./뉴스1

올해 노벨 과학상은 인공지능(AI)이 휩쓸었다. 화학상은 AI로 새로운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고 설계해 신약 개발 혁신을 이끈 과학자에게, 물리학상은 대규모 정보에서 스스로 답을 찾는 AI의 머신러닝 학습법과 인공신경망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모두 AI가 신약 개발의 속도와 정확도를 높여 인류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에서도 지난 9월 기준 AI로 찾은 9개 후보물질이 임상시험에 돌입했다. 하지만 국내 AI 신약 기업들이 처음 시장에서 큰 주목받은 것과 달리 최근 실적 악화로 위기에 빠졌다. 기업들의 성장 전략도 해외보다 뒤졌지만 정부의 지원도 외국보다 부족했기 때문이다. 업계는 한국 신약 개발이 성과를 보려면 AI 업체들을 살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AI, 신약개발 비용·시간 절감 효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AI 신약 개발 글로벌 시장 규모는 2023년 9억270만달러(한화 약 1조2651억원)에서 오는 2028년에는 28억9360만달러(약 4조553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AI 신약 개발 플랫폼으로 발굴한 후보물질 가운데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승인받아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 건은 지난해 기준 67건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AI 분야의 성장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기존 신약 개발보다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AI는 치료 후보물질 발견부터 임상시험과 환자 맞춤형 치료까지 신약 개발 전주기에서 중요한 도구로 부상했다. 스스로 수많은 화합물과 질병과 연관된 인체 단백질의 구조 정보를 담은 빅데이터(대용량 정보)를 학습해 인간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치료 후보물질을 찾을 수 있다.

치료제가 공략할 인체 단백질을 지정하면 AI가 새로운 화합물을 제시하고, 컴퓨터 가상실험과 문헌 분석을 통해 약효도 거의 정확하게 예측한다. 전통적인 신약 개발로는 평균 10~15년이 걸리고, 1조~2조원 이상의 비용이 들지만, AI를 활용하면 시간과 비용이 크게 줄어든다. 기존에 발견한 후보물질 1만개 중 신약으로 출시된 게 1개(0.01%)에 불과했다면, AI는 성공 사례를 더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래픽=정서희

◇국내 AI 기업, 적자 이어지고 상장도 위태

국내에서도 AI 신약 개발 업체들이 잇따라 설립됐지만 최근 실적 악화가 계속되고 있다. 이는 매년 AI 산업의 규모와 수준을 평가하는 글로벌 AI 인덱스 2024 조사에서 드러났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싱가포르, 영국, 프랑스에 이어 전년과 동일한 종합 6위를 유지했지만, 연구 부문은 1단계 하락한 13위, 운영환경 부문은 무려 24단계 하락해 35위를 기록했다.

국내 대표적인 AI 신약 업체인 신테카바이오(226330)는 AI 신약 발굴 플랫폼인 딥매처를 활용해 매달 후보물질을 50개 이상 발굴하고 있다. 미국 키메라테라퓨틱스, 국내 한미사이언스(008930) 등과 협업도 하고 있다. 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2019년 기술특례제도로 상장한 이래 매출 성장률이 한 자릿수에 머물고 적자 폭이 커졌다. 회사는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 800만원, 영업손실 107억원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관리종목 지정 유예기간도 끝나고 있다. 올해가 마지막 해로, 내년부터 매출 30억원을 넘겨야 상장을 유지할 수 있다.

신테카바이오는 당장 수익을 낼 수 있는 신사업으로 돌파구 마련에 나섰다. 최근 자체 운영 중인 대전 둔곡 AI 바이오 슈퍼컴센터(ABS 센터)에 중앙처리장치(CPU)를 보관할 수 있도록 공간을 임대해주는 서비스와 설계·운용 관련 교육 컨설팅 사업을 신사업으로 추가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신테카바이오 관계자는 "내년에는 주력 사업인 AI 신약 개발과 더불어 신사업에 선택과 집중을 할 것"이라며 "내년에는 꼭 30억원 달성을 가능하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파로스아이바이오(388870)도 상황이 비슷하다. 회사는 AI 신약 개발 플랫폼인 케미버스로 발굴한 급성 골수성 백혈병(AML) 치료 후보물질인 PHI-101의 임상 1상 시험 중간 결과를 지난 7일(현지 시각) 미국혈액학회에서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상장한 뒤로 기업 자금을 모두 신약 개발에 쏟아부으면서 실적은 악화일로이다. 영업손실은 2021년 84억원, 2022년 106억원, 2023년 101억원으로 점점 매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0을 기록했다.

온코크로스도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금 창구를 마련해보려 했지만 전망이 밝지 않다. 경기 부진과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으로 인해 커진 시장 불확실성에 최근 비상계엄 사태라는 돌발 악재도 발생했다. 국내 증시가 휘청이는 상황에서 대부분 기업이 IPO를 미뤘지만, 온코크로스는 자금 확보를 위해 예정대로 9~10일 일반청약을 진행했다.

업계는 계엄령 이전에 확정한 공모가를 일반청약에서 소화하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회사는 희망 공모가를 1만100~1만 2300원으로 제시했지만, 결국 실제 공모가는 그보다 큰 폭으로 떨어진 7300원으로 확정됐다. 회사는 국내 제약사인 대웅제약(069620), 동화약품(000020), JW중외제약(001060), 보령(003850) 등과 협업 중이다. 현재 신약개발 플랫폼인 랩터 AI로 찾은 신약 후보물질의 치료 대상 질환을 확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정부 지원 절실…기술이전으로 자금력 갖춰야"

전문가들은 전 세계 제약사들이 AI에 투자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AI 신약 개발이라는 방향은 맞는다고 보면서 이런 상황에서 국내 업체들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다양한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AI를 활용한 신약개발 방향은 명확하지만, 성장을 도모할 시기가 문제"라며 "제약·바이오 산업에 특화된 기구가 핸들을 잡고 이들 업체들을 육성하는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업체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트랜드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우려도 있다. 김용우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제약바이오산업단장은 "글로벌 빅파마는 대부분 훨씬 돈이 많이 드는 임상시험 단계에서 AI 예측에 투자를 많이 하는데, 국내 업체들은 대부분 초기 단계인 후보물질 탐색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후보물질 발굴에 걸리는 시간을 기존 3년에서 3개월로 크게 단축해주는 것도 물론 이점이 있다"면서도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우선 글로벌 기업들과의 접점을 늘려 기술이전 계약으로 자금력을 갖춰 뒷단에서의 예측 기술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AI 기업 지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내 제약사와 AI 기업 간 협업을 늘려 AI 신약개발 기업의 데이터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K멜로디(K-MELLODDY) 프로젝트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김용우 단장은 "K멜로디 프로젝트는 아직 제약사의 데이터만 접근이 가능한 상태"라며 "AI 신약개발 업체들에게 도움이 되려면 환자들의 방대한 데이터가 있는 병원과의 연계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