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두 번째로 무선 인슐린 주입기 상용화에 성공한 한국 기업 이오플로우(294090)는 미국 경쟁사 제소로 진행된 미국 배심 재판에서 패소하면서 위기에 봉착했다. 알테오젠(196170)은 미국 바이오 기업 할로자임과 피하주사 제형 기술을 두고 특허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는 미국 제약사 화이자와 폐렴구균 백신을 둘러싼 특허 분쟁으로 7년간 분쟁 중이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과 벌이는 특허 분쟁이 잇따르고 있다. 이런 특허 분쟁은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고, 한국 기업들의 기술 역량과 경쟁력이 커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국내 업계는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년 1월 취임하면 한국 기업들의 특허 분쟁 리스크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오플로우, 美 인슐렛 특허 분쟁에 존폐 위기
이오플로우는 미국 기업 인슐렛이 제기한 해외 지적재산권 침해·부정 경쟁 소송으로 사업 존폐 위기에 놓여 있다. 지난해 8월 세계 최초로 일회용 웨어러블(wearable, 착용형) 인슐린 펌프를 개발한 인슐렛은 세계 두 번째로 웨어러블 인슐린 펌프를 상용화한 이오플로우가 영업 비밀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회사에 따르면 지난 4일 미국 매사추세츠 지방법원에 모인 배심원은 이오플로우가 인슐렛에 4억5200만달러(약 6337억원) 규모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평결을 내렸다. 해당 소송 담당 판사는 배심원 평결을 토대로 최종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6000억원을 웃도는 배상금은 이오플로우의 자기자본 723억원의 877%에 달하는 규모다. 이오플로우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두 회사의 주력 제품은 당뇨 환자에게 자동으로 인슐린을 주사해주는 첨단 의료기기다. 인슐렛은 이오플로우의 '이오패치'가 자사의 '옴니팟'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한다. 작년 10월 미 매사추세츠 지방법원이 이번 소송과 관련한 이오패치의 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이오패치의 세계 판매 길이 막힐 뻔했다. 하지만 이오플로우가 즉각 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집행 정지를 신청했고, 미국 연방항소법원이 지난 5월 "인슐렛이 주장한 '회복할 수 없는 손해'에 대해 근거가 없다"며 "판매 금지 명령을 취하한다"며 이오플로우의 손을 들어줬다.
이오플로우는 이번 배심원 평결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이달 말까지 서면으로 제출할 계획이다. 최종 판결은 내년 3월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재판부가 최종적으로 미국 기업의 손을 들어주면 이오플로우는 글로벌 판매 길이 막힐 위기에 놓인다.
◇알테오젠의 미 특허 분쟁서 우군 MSD
최근 글로벌 제약사들의 주요 연구개발(R&D) 추세는 기존 정맥 주사(IV) 투여 방식으로 개발된 의약품을 피하주사(SC) 제형으로 바꾸는 것이다. 피하주사 방식은 정맥주사 제형보다 투여 시간이 짧고, 병원에 방문하지 않고 환자가 집에서 투여할 수 있다. 투약 편의성을 높여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알테오젠은 인간 히알루로니다제 기반 SC 제형 약물 전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같은 기술을 가진 미국 할로자임 테라퓨틱스와 특허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제기됐다.
지난달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미국 머크(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에 사용된 알테오젠의 SC제형 기술 'ALT-B4′가 할로자임의 같은 기술인 엠다제(MDASE) 특허를 침해했을 가능성이 있고,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증권 시장에서 이 보고서를 짜깁기한 정보지(속칭 찌라시)가 돌면서 알테오젠 주가가 급락했다.
그러자 미 MSD가 할로자임을 상대로 MDASE에 대한 특허무효 심판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알테오젠과 MSD가 연합해 할로자임과 다투는 것이다. MSD가 개발 중인 '키트루다SC' 제품은 알테오젠의 기술이 적용됐다. MSD는 키트루다의 SC제형 출시를 위해 사전에 특허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차단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할로자임이 특허 연장 전략을 펼칠 것으로 예상하고 특허무효심판 청구 소송으로 선제 대응한 것이다.
◇7년간 벌인 SK바사·화이자 백신 특허 분쟁
SK바이오사이언스는 글로벌 제약사인 미국 화이자와 폐렴구균 백신에 관한 특허 분쟁을 7년간 벌이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화이자의 '프리베나13′ 백신과 구성이 동일한 '스카이뉴모'를 개발해 2016년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국내에서 개발한 첫 폐렴구균 백신이었다.
화이자는 SK바이오사이언스가 자신들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은 2019년 6월 화이자 측 손을 들어준 '화해 권고'를 결정했다. 프리베나13 특허 존속기간인 2027년까지 SK바이오사이언스가 스카이뉴모를 생산하거나 판매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법원 결정에 따라 스카이뉴모를 국내에서 판매할 수 없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2018년 화이자 측이 프리베나13 특허권을 등록하지 않은 러시아의 제약사에 기술을 수출했다. 그러자 화이자가 또 소송을 제기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러시아에 연구용 폐렴구균 원액을 수출한 것은 법원의 화해 결정을 위반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1심에선 화이자가 승소했고, 항소심 격인 특허법원에선 SK바이오사이언스가 승소했다. 최근 특허법원 21부는 화이자의 자회사인 와이어쓰LLC가 SK바이오사이언스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SK바이오사이언스의 손을 들어줬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글로벌 제약사들의 특허소송 남용을 적절히 견제한 판결"이라며 환영 입장을 표했다.
하지만 아직 분쟁의 불씨가 남아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무역위원회에서도 불공정무역행위 조사를 하고 있다. 앞서 무역위원회는 SK바이오사이언스에 시정 명령을 내렸지만, SK바이오사이언스가 반발해 서울행정법원에 불복 소송을 제기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이번 특허법원이 자사 손을 들어줬기 때문에 불공정무역행위에 대한 재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기대했다.
글로벌 특허 업계는 내년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미국이 자국 우선의 강력한 특허 보호 정책을 펼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국내 시장도 한국 기업들이 자칫 특허 분쟁에서 불리해지거나, 분쟁에 휘말릴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문가들은 특허 관리를 강화하고, 기술 유출을 경계하고, 분쟁이 의심되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경호 법무법인 클라스한결 변호사는 "규모가 작은 중소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특허 관리에 많은 투자를 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어, 관리가 허술한 측면이 있다"며 "국내 기업들의 특허 관리에 대한 역량을 강화해줄 수 있는 정부 차원의 투자·지원책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