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128940)그룹의 창업자 일가 형제와 경영권 분쟁 중인 대주주 3자 연합이 지주사 한미사이언스(008930) 이사회 재편을 위해 추진한 정관 변경이 무산됐다. 최대 주주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은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진입에 성공했고, 장녀 임주현 한미약품그룹 부회장의 이사 선임안은 자동 폐기돼 불발됐다.
이로써 한미사이언스 이사회가 형제 측 인사 5명, 3자 연합 측 인사 5명으로 대치 구도가 돼, 경영권 갈등 교착 상태가 장기화할 전망이다.
28일 서울 송파구 서울교통회관에서 열린 한미사이언스 임시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정원을 기존 10명에서 11명으로 확대하는 정관 변경 안건을 두고 의결권이 있는 주주 대상 찬성·반대 투표를 진행한 결과, 찬성 표가 출석 주주의 66.7% 이상 나오지 않아 부결됐다. 의결권 있는 전체 주식 수(6771만3706주) 중 출석률은 84.7%(5734만864주)로 집계됐다.
정관 변경은 모녀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임주현 한미약품그룹 부회장, 최대 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등 대주주 3자 연합이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를 재편해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제안한 안건이다.
기존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현재 3자 연합 측 인사 4명, 형제 측 인사 5명으로 형제 우위 구도였다. 3자 연합은 한미사이언스를 전문경영인 체제로 재편하고자 이사회 정원을 11명으로 바꾸고, 이사 2명을 신규 선임해 이를 6대 5로 뒤집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표심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서 5대 5 구도가 됐다. 지분 경쟁에서 밀려 있는 형제 측은 경영권을 뺏길 위기를 방어하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와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 등 형제는 지주사에 이어 핵심 사업사인 한미약품 경영권을 잡으려 하고, 3자 연합은 형제가 지주사를 비롯한 그룹 경영에서 물러나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동국 회장의 기타비상무이사, 임주현 부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에 대해서도 각각 투표를 진행했는데, 신 회장만 이사회 진입에 성공했다. 정관 변경이 부결된 여파로 임주현 부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안은 자동 폐기됐다. 3자 연합 입장에선 절반만 성공한 격이다.
이사 선임 안건은 출석 주주의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되는 일반 결의 사안이지만, 정관 변경은 특별 결의 사안이라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해 문턱이 더 높다. 각 안건에 대한 찬성률은 공개되지 않았다. 앞서 한미사이언스 지분 6%가량을 보유한 국민연금은 정관 변경과 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 사실상 기권으로 해석되는 ‘중립’을 행사했다.
이로써 한미사이언스 이사회가 5대 5 구도로 교착 상태가 되면서,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에 따른 혼란도 해소되지 못한 격이다. 최근까지 한미약품과 한미사이언스 간 여론전과 고소 고발 등 갈등이 이어져 왔다. 5대 5 구도에서는 대표이사 변경, 주요 경영에 관한 결정을 한쪽에서 단독으로 내릴 수가 없게 된다.
신규 이사로 선임된 신동국 회장은 주총이 끝난 후 “치열한 분쟁 상황을 빠르게 정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임종훈 대표는 취재진에게 “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겠다”며 지주사 경영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한편, 이날 임시 주총은 오전 10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의결권 위임장 집계 등을 이유로 지연돼 오후 2시를 넘어 열렸다. 또 경영권 분쟁 당사자 중에서 이사회 의장인 임종훈 대표만 총회 현장에 나왔으며, 임종윤 이사, 송영숙 회장, 임주현 부회장, 신동국 회장은 모두 불참하고 의결권 대리인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