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병 임상시험은 연구하기 어렵지만, 노보 노디스크가 추진 중인 대규모 프로젝트입니다. 현재 여러 국가에서 임상 3상 시험을 진행 중이며, 내년 그 결과가 공개될 겁니다.”
사샤 세미엔추크(Sasha Semienchuk) 한국노보노디스크 대표는 14일 서울 송파구 본사에서 “노보 노디스크는 지난 30년간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물질에 대한 연구를 100건 이상 진행했으며, 현재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한 뇌 질환의 치료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한 비만 치료제 위고비는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GLP-1 호르몬을 흉내 내 포만감을 느끼고 식욕을 억제해 체중을 감량하는 효과를 낸다. 위고비는 2021년 6월 미국에 처음 출시됐으며, 지난해부터 유럽 각국에도 진출했다. 한국에는 지난달 15일 출시됐다.
그는 “당뇨·비만·심혈관 질환 등 노보 노디스크의 주요 임상시험이 모두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어 자랑스럽다”며 “지난 5년간 우리 의약품의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한국 기관 수가 5배나 늘었다”고 말했다. 알츠하이머병 임상시험도 한국에서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보 노디스크는 지난 11일 세브란스병원과 임상시험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세브란스처럼 서울 대형 병원인 이른바 빅5 병원에 속하는 다른 병원과도 협력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노보 노디스크는 지난 30년간 GLP-1 유사체 물질에 대한 연구에 집중했다. 위고비의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를 포함해 GLP-1 유사체로 현재까지 100건 이상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세마글루타이드는 당뇨 치료제인 오젬픽으로 처음 세상에 나온 뒤 체중 감량 효과가 확인돼 비만 치료제 위고비로 개발됐다. 이후 심혈관 질환, 대사이상 지방간염(MASH)과 알츠하이머성 치매, 파킨슨병 등 뇌 퇴행성 질환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미국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대 연구진은 세마글루타이드가 제2형 당뇨병 환자의 알츠하이머병 발생 위험을 낮춘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달 국제 학술지 ‘알츠하이머병&치매’에 공개했다. 세마글루타이드는 알츠하이머병 위험을 40~70% 줄여 실험에 쓰인 다른 GLP-1 유사체 계열의 약물 7종 가운데 가장 효과가 높다고 나왔다. 노보 노디스크는 이런 연구를 토대로 위고비를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개발하기 위한 임상시험에 돌입했다.
미 국립보건원(NIH) 임상시험 정보사이트에 따르면 현재 노보 노디스크는 한국과 미국, 일본 등 20개국 이상에서 경도인지장애와 초기 알츠하이머성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3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국내 알츠하이머병 임상시험은 이대서울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11곳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환자 모집까지 마친 상태다.
위고비는 미국에서 일론 머스크와 킴 카다시안, 오프라 윈프리 같은 유명인들이 감량 효과를 봤다고 밝히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자난달 위고비가 출시되기 전부터 예약 문의가 빗발쳤고, 출시되자마자 병·의원과 약국의 주문이 폭발했다. 위고비의 생산은 노보 노디스크가, 국내 유통·판매는 쥴릭파마코리아가 맡았다. 출시 초기 현장은 위고비 품귀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세미엔추크 대표는 “한국 출시 이후 재고가 부족했던 적은 없었다”며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한국 환자들에게 공급할 수 있는 상황까지 기다린 뒤에 위고비를 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출시 초기에는 신규 거래 등록 또는 배송 과정에서 다소 지연될 수는 있다”며 “산업군을 막론하고 모든 신제품 출시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며, 현재 한국 유통·공급망에 만족한다”고 했다.
위고비는 고도비만환자 치료를 위해 개발된 전문의약품으로 의사 처방 없이는 사용할 수 없다. 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인 BMI(체질량지수)가 30 이상인 성인 비만 환자 또는 비만 관련 질환이 있으면서 초기 BMI가 27 이상인 비만 환자에 처방할 수 있다. 그러나 인기가 높아지면서 비만 환자가 아니라 미용 목적 다이어트약으로 소비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실제 불법적인 경로로 판매되거나 오남용되는 사례가 다수 나타났다.
이를 두고 대중에 위고비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알리지 못해 오남용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노보 노디스크는 지난달 위고비 출시를 국내 신문과 방송에 알리지 않았다. 백신을 제외한 전문의약품은 의·약학 전문가 대상 매체나 학술지에만 광고할 수 있다는 내용의 약사법 때문이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당시 “위고비 출시를 앞두고 노보 노디스크가 언론 공개 여부를 문의하지 않았다”며 “정부가 출시 사실을 언론에 알리지 못하도록 요청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세미엔추크 대표는 “정보 제한에 대해서는 유감”이라며 “정확한 정보가 전달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비만도 다른 만성 질환처럼 심도있게 관리돼야 하며, 한국의 전문약 광고 규제가 결코 특이하지는 않다”고 했다. 이 점에서 한국의 의약품 시장이나 정보 유통 환경을 과거 기준으로만 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세미엔추크 대표는 지난 2020년 10월 한국 법인 대표로 한국에 왔다. 그 전에 캐나다, 스위스, 일본 등 6개국의 노보 노디스크에서 일했다. 프랑스 의료기기 제조 업체에서 경력을 시작해 2012년 노보 노디스크의 글로벌 제품 매니저로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