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대 미국 대통령 선거 투표 결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됐다. 의료비를 줄이기 위해 복제약 시장을 확대하는 반면 자국 산업과 경제를 우선으로 하는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에 기회와 위기 요소가 공존해 빠른 대응과 경쟁력 강화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6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의 헬스케어 공약과 정책 기조는 의료비 지출 절감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미국 내 제네릭(합성의약품 복제약)과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시장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제네릭과 바이오시밀러는 오리지널약과 치료 효능은 비슷하지만 가격은 더 저렴해, 국가의 의료비 재정 부담을 낮추고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넓힐 수 있다.
특히 트럼프 당선으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폐기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2022년 제정된 이 법안은 의약품과 에너지 가격 인상을 억제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도 후보 시절 약가 인하를 주요 공약으로 언급했왔지만, 약가 인하 대상 의약품을 정해서 협상하는 직접적인 방식을 폐지하고 복제약을 통한 가격 경쟁으로 간접적인 약가 인하를 촉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복제약 시장 과열 대비해 경쟁력 높여야”
산업연구원은 지난달 낸 ‘미국 대선 시나리오별 한국 산업 영향과 대응 방향’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 후보는 제네릭과 바이오시밀러의 사용 촉진에 우호적인 입장이라, 한국 바이오시밀러 제품의 수요가 최소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6일 현재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셀트리온(068270) 등 한국 기업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품목 허가를 받은 바이오시밀러는 총 14종이다. 10월 기준으로 FDA가 허가한 바이오시밀러 62종 가운데 미국(24종) 다음으로 많다.
하지만 미국에서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확대되면 기업 간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그만큼 한국 기업의 협상력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술력은 물론, 현지 시장에서의 네트워크와 마케팅·협상 능력이 중요한 판가름이 될 것”이라며 “미국은 의약품 판매와 처방에 있어 보험사의 역할이 크니, 새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에 따른 보험사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국내 기업들이 이미 바이오시밀러를 14종이나 선점했지만, 현재 전 세계 수많은 기업들이 개발 중인 만큼 레드오션(경쟁이 치열한 시장)이 될 것”이라며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 제고가 절실한 시기”라고 말했다.
◇”생물보안법 통과로 한국 CDMO 수혜”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의약품을 포함한 필수 상품의 중국산 수입 중단을 목표로 하는 4년 계획도 도입하겠다”고 표명했다. 중국 기업을 저지하는 게 핵심인 ‘생물보안법’이 최종 통과되면 중국 바이오 기업의 입지는 크게 위축될 전망이다.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업체인 중국 우시바이오로직스, 우시앱텍은 2032년 전에 미국에서 사실상 퇴출된다. 우시를 통해 약을 생산하던 기업들은 다른 CDMO 기업을 찾아야 하는데, 중국 업체의 경쟁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가 수혜를 받을 수 있다.
이승규 부회장은 “CDMO의 경우 중국을 제외하면 한국 기업 외엔 선택지가 많지 않다”며 “생물보안법 통과로 경쟁사인 중국 우시가 힘을 잃으면, 사실상 CDMO는 다른 분야에 비해 경쟁력을 강화할 시간적 여유가 많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의 통상 보호주의 기조가 강해질수록 비교적 규모가 작은 CDMO 업체는 미국 진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지은 산업연구원 신산업실 연구위원은 “바이오시밀러든 CDMO 분야든 삼성이나 셀트리온 등 대기업은 기술력과 품질을 인정받은 만큼, 미국 시장의 수주 물량은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반대로 평가 데이터가 비교적 부족한 신생 또는 영세한 후발주자들에게는 기회가 전보다 줄어들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업계 혼자 감당 어려워…정부 지원 절실”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가 자국 중심주의 기조를 강화할 때일수록 국내 바이오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승규 부회장은 “연구개발(R&D) 자금 지원은 물론, 인허가 규제 장벽을 낮춰 기술이 개발됐을 때 시장에 빠르게 출시할 수 있도록 현실성 있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그 어느 때보다 정부의 제약·바이오 산업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재국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도 “트럼프 2기는 1기 때보다 더 자국 중심주의 정책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인다”며 “개별 산업이 감당하는 것보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최근 한미 정부 주도로 의료 인공지능(AI) 협의체가 구성됐다”며 “이처럼 미국 업계를 경쟁 상대로만 보지 말고, 정부가 나서서 한미 간 바이오 동맹 관계를 키워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