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노인 돌봄 서비스시설인 개호센터에서 경도 인지 장애 환자들이 로완의 디지털치료제 '슈퍼브레인'으로 치매 예방 훈련을 하고 있다./로완

디지털치료제는 작년부터 국내에 등장했다. 지금까지 4종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승인을 받았다. 5호, 6호를 준비하고 있는 회사들도 줄지어 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디지털치료제를 시장에 내놓은 업체가 있다. 충남 천안에 본사가 있는 로완은 디지털치료제 허가 기준이 없을 때부터 경도인지장애를 치료하고 치매를 예방하는 디지털치료제 ‘슈퍼브레인’을 개발했다. 이미 국내 병원 80곳에서 쓰이고 있다. 동시에 일본에서도 시범 사업을 추진했다. 초고령 사회로 일찍이 진입한 일본 시장에서 기회가 많다고 본 것이다.

전 세계에서 디지털치료제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면서 수요도 늘고 있다.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도 인지기능을 회복하고 불면증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뾰족한 치료제가 없는 치매를 예방, 치료하는 데도 도전하고 있다. 로완은 한국에서 거둔 성공을 발판으로 기술을 업그레이드한 후속 디지털치료제로 세계 시장에서 승부를 걸 예정이다.

2017년 설립된 로완은 빅데이터,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치료제 ‘슈퍼브레인 덱스(DEX)’를 개발 중이다. 지난해 11월 식약처의 제48호 혁신 의료기기 지정을 받았다. 혁신 의료기기는 기존 의료기기나 치료법에 비해 안전성·유효성을 현저히 개선했거나 개선할 것으로 예상되는 의료기기를 뜻한다. 현재 식약처의 디지털치료제 인허가를 위한 확증 임상시험을 국내 12개 기관에서 진행 중이며 막바지 단계에 있다.

로완은 슈퍼브레인 덱스에 앞서 디지털치료제를 시장에 내놓았다. 바로 ‘슈퍼브레인’이다. 이는 인지 훈련, 혈관 관리, 영양(식단), 운동, 동기 강화 등 5가지 영역의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합친 디지털 치료 도구다. 카드들을 화면에 보여주고 뒤집으며 위치를 기억하는 훈련을 게임처럼 한다. 이후 ‘인지 훈련’에 초점을 맞춰 AI 기술을 적용해 개발한 게 슈퍼브레인 덱스다.

한승현 로완 대표는 25일 조선비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 확증 임상시험 중인 슈퍼브레인 덱스는 AI 기술을 적용해 환자의 인지능력 상태와 호전도에 따라 적절한 인지훈련을 자동으로 추천해 주는 알고리즘”이라며 “같은 경도인지장애라도 환자마다 신체 상태와 증상 등이 차이가 있는데 AI 기반 자동화 기능을 활용해 치매 예방 활동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회사의 자신감은 앞서 개발한 슈퍼브레인에서 나왔다. 회사는 2019년 5월부터 2020년 2월까지 69~79세 고령자 152명을 대상으로 슈퍼브레인의 치매 예방 효과 임상 연구를 진행했다. 인지능력 측정 검사 점수를 평가한 결과,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은 고령자들은 점수가 내려간 반면, 슈퍼브레인을 사용한 고령자들은 점수가 5점가량 향상됐다. 이는 10년 정도 인지 상태가 좋아진 것으로 볼 정도로 의미 있는 결과라고 한다. 세 번째 진행한 임상 연구에선 뇌세포 활성화에 관여하는 뇌 유래 영양인자 수치도 개선되는 효과를 보였다. 다음은 한 대표와의 일문일답.

로완 한승현 대표

–슈퍼브레인 개발 배경이 궁금하다.

“슈퍼브레인 개발은 2017년 시작했다. 현재 대한치매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최성혜 인하대병원 신경과 교수와의 인연으로 시작됐다. 그땐 디지털치료제라는 용어도 없었다. 개발 초기 단계였던 2018년에 보건복지부가 후원하는 디지털 인지 중대 치료 프로그램 관련 임상 연구에 참여했다. 최 교수가 주축으로 이끄는 대형 연구 과제로, 기업은 로완만 참여했다. 이 연구를 계기로 본격적인 서비스 개발이 이뤄져 상용화에 성공했다.”

–제도가 없던 시기였는데, 어떻게 상용화할 수 있었나.

“슈퍼브레인은 단일 디지털치료제로서 품목 허가를 받은 게 아니다. 개발 당시 식약처 허가 기준이 없었다. 디지털치료제 관련 제도가 생기기 전부터 임상 연구를 했기 때문에, 증거가 있는 비(非)의료기기 제품으로 출시됐다. 당시 ‘인지 중재 치료’라고 하는 신의료 기술 행위 치료 행위의 치료용 디지털 도구(툴)로 나온 것이다. 개발 이후 후속 연구를 계속 이어가면서 증거 데이터를 계속 쌓아가는 과정에서 디지털 치료제, 디지털 치료기기라는 단어가 세상에 나왔다.”

–디지털치료제 개념이 없던 시기라 연구개발이 어려웠겠다.

“첫 번째 무작위 대조 연구가 완료된 후,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위해 1차부터 3차 의료기관에 걸쳐 의료진들과 협력했다. 약 1년간 사용자 인터뷰 과정을 거쳤다. 병원마다 규모와 성격이 달라, 각 환경에 맞는 가격 정책과 마케팅 전략을 고민해야 했다. 특히 디지털치료제라는 개념이 생소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의료진에게 효과성과 도입 필요성을 설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초기에는 임상 유효성을 검증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면서 사업화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현재 슈퍼브레인 공급 현황은.

“이대서울병원, 인하대병원, 서울성모병원 등을 비롯한 1차부터 3차 의료기관까지 널리 도입돼 있다. 25일 기준 80곳이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면서, 노인성 질환과 퇴행성 질환, 특히 치매를 우려하는 환자들에게 슈퍼브레인은 탁월한 솔루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본에서 한 시범 사업을 소개해달라.

“일본 도쿄에서 가장 노인 인구가 많은 지역이 이타바시구다. 이곳의 공적 노인 돌봄 서비스 사업인 개호센터에서 5개월가량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65세 이상 경도 인지장애 환자 또는 치매 초기 환자를 대상으로 슈퍼브레인 서비스를 제공했다. 인지 선별 검사를 통해 참여자들의 슈퍼브레인 사용 전과 사용 후의 점수 변화를 평가했는데, 슈퍼브레인 사용 후 점수가 2점 이상 올랐다. 인지 기능이 유지만 돼도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좋은 결과가 나와 일본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에서 사업 확대를 추진 중이다.”

–일본에서 슈퍼브레인에 대한 반응은 어땠나.

“일본 어르신들이 슈퍼브레인을 정말 잘 수용해서 놀랐다. 사업 전에는 일본 어르신들이 한국 어르신들보다 디지털 수용성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해 우려했다. 그런데 매뉴얼대로 열심히 참여했고, 인지 개선 효과 결과가 잘 나왔다. 일본 내에서 사용하는 인지 선별검사를 통해 슈퍼브레인 사용 전, 후를 확인한 결과이기에 더 고무적이다. 이것을 시작으로 일본 시장 진출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

–일본 시장 진출 전략은 뭔가.

“일본은 초고령 사회 진입 후 치매 환자 수가 증가세다. 경도 인지 장애 환자 수는 600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슈퍼브레인의 수요가 큰 시장이다. 현재 일본 상위 종합상사와 논의 중이다. 내년에는 일본 개호센터와 의료기관에 슈퍼브레인을 공급할 수 있도록 파트너들과 논의 중이다. 슈퍼프레인의 증거 기반 논문 파워를 바탕으로 현지에서도 신뢰를 얻고, 이를 발판으로 시장을 확대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