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띄워 보낸 대남 쓰레기 풍선이 10월 7일 오전 서울 상공을 날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24일 오전 2시 30분쯤 “북한이 대남 쓰레기 풍선 추정체를 또다시 부양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올해 들어 북한이 계속 날려 보내고 있는 ‘오물 풍선’이 생물 테러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가운데, 대표적인 생물 무기인 탄저균(菌)에 대처할 국산 백신이 허가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4일 취재 결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질병관리청과 GC녹십자(006280)가 공동 개발한 첫 국산 탄저 백신을 두고 막바지 허가 심사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보건당국 자문위원인 한 의료계 전문가는 “지난달 초 GC녹십자가 식약처에 허가 심사와 관련한 마지막 서류를 제출해 탄저 백신의 허가가 임박했다”며 “식약처의 허가 검토가 막바지 단계에 있어 이르면 이달 안, 늦어도 연내에는 허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탄저 백신 개발사인 GC녹십자는 “허가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면서도 “품목 허가를 취득한 후 국가 비축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회사 측은 “백신은 탄저 자연 발생과 생물 테러에 대비할 수 있어 백신주권 확보와 국가 공중보건 안보 증진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유전자 재조합 방식은 세계 최초

GC녹십자는 2002년부터 질병관리청의 연구용역 사업을 통해 탄저백신 GC1109의 개발을 진행해 왔다. 질병관리청은 지난해 10월 31일 “국내 기술로 개발한 세계 최초 ‘재조합 단백질 탄저백신’을 대테러 위기대응 의약품으로 상용화하기 위해 식약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했다”고 발표했다.

탄저균 감염병인 탄저는 조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치명률이 97%에 달하는 1급 법정 감염병이다. 탄저균은 치명률이 높아 사람을 탄저균에 감염시키고 백신을 투여하는 임상시험을 할 수 없어 동물시험으로만 효능을 확인한다. 생물 테러 백신과 치료제는 임상 2상 시험에서 백신의 안전성만 평가해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GC녹십자가 개발 중인 GC1109는 탄저 독소 단백질 2가지를 항원으로 설계됐다. 항원은 인체에 침입해 면역반응(방어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GC녹십자는 두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미생물 유전자에 끼우고 배양·정제하는 유전자 재조합 방식으로 백신을 제조했다.

회사에 따르면,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한 지난 임상 2상 시험 결과 탄저 백신 접종군에서 탄저균 독소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항체가 충분히 생성되는 것을 확인했다. 안전성도 확인했다. GC1109가 식약처의 품목 허가를 받으면, 첫 국산 탄저 백신이자 세계 최초로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 개발한 탄저 백신이 된다.

현재 탄저 백신을 자급자족하는 국가는 미국과 영국 등 일부 국가로 알려져 있다. 탄저균 배양액의 독소를 약품 처리해 독성을 없애고 투여하는 약독화 생백신을 생산한다.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가 생물 테러에 대비해 탄저 백신을 비축하고 있으나 가격이 비싼 편이고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해 비축 물량을 늘리는 데도 부담이 있다. 국산 탄저 백신은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지난 9일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공장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북한 오물 풍선 발열 타이머 추정 물체. /연합뉴스

◇북한 풍선으로 생물 테러 우려 증가

탄저 백신 국산화는 최근 북한의 생물 테러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관심이 높아졌다. 국회와 의료계에선 북한이 살포하고 있는 오물 풍선이 생물 테러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보건당국 자문위원인 한 교수는 “북한의 오물 풍선은 발열 타이머를 달아 폭파해 떨어뜨리는 방식인데, 이를 통해 생물 테러를 하면 감염병이 빠르게 전파되면서 그야말로 초토화되는 끔찍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채현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방부에서 받은 ‘북한 오물 풍선 구조도’에 따르면, 북한이 지난 5월부터 살포한 오물 풍선은 쓰레기를 채운 비닐봉지에 화약 띠를 두르고 타이머 장치를 달아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이머 장치가 스파크(불꽃)를 일으켜 화약 띠를 점화하면 수소 가스를 채운 풍선이 폭발해 쓰레기를 떨어뜨리는 식이다.

만약 풍선에 탄저균을 넣어 살포하면 엄청난 피해가 예상된다. 질병관리청과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50㎏ 탄저균 포자를 인구 50만명 거주 지역의 2㎞에 살포하면 환자가 12만5000명 발생하고, 9만5000명이 사망한다. 실제로 탄저균 포자는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 전역에 우편물을 통한 생물 테러에 사용돼 22명이 감염됐고 이 중 5명이 사망해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

정부가 이런 생물 테러에 대비하려면 백신 비축 의지가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탄저 백신이 허가돼도, 구매해 주는 데가 없으면 어느 기업이 생산을 할 수 있겠느냐”면서 “정부가 생물 테러 대비 의지가 있다면 백신 비축 예산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은 지난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북한의 오물 풍선과 관련해 생물 테러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다”면서 “생물 테러 감염병을 대비하기 위해 두창이나 탄저 백신 비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비축을 시작하려 한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은 24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비난하는 내용의 전단(일명 삐라)이 든 풍선을 날려 보냈다. 일부 풍선의 전단은 용산 대통령실 경내에 떨어졌다. 북한이 오물 풍선을 보낸 건 30번째로, 풍선 안에 전단을 넣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