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 직원이 바이오 의약품 생산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올해 1~3분기 누적 매출액이 3조원을 돌파하며 실적 랠리를 이어갔다. 글로벌 바이오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시장에서 삼성 특유의 초격차 전략이 통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3일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누적 매출액은 약 3조2908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5.55% 늘었다. 영업이익은 9943억8800만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0.2% 증가했다. 올해 3분기 매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5% 늘었고, 영업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6% 늘었다.

위탁생산 계약 수주가 꾸준히 이어졌고,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바이오 의약품 복제약) 제품 판매도 늘어난 결과이다. 이 추세라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올해 연 매출이 사상 최대인 4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회사는 이날 오후 올해 연 매출 전망치를 4조1564억원 규모에서 4조3411억원 규모로 상향한다고 공시했다.

삼성은 2010년 바이오를 미래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한 뒤 2011년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설립해 바이오 의약품 CDMO 사업을 시작했다. 2016년 상장 당시 연 매출은 3000억원 수준이었는데 14배 이상 불어났다. 창사 이래 누적 수주 총액은 154억달러(약 21조2800억원)를 돌파했다.

◇생산시설 선제적 투자로 경쟁력 확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장은 생산 역량 확대와 품질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과감한 투자의 결실이다. 이 회사는 세계 바이오 의약품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고 보고 선제적으로 투자하며 생산능력 키우는 데 주력해 왔다.

2011년 1공장(생산능력 3만L)을 시작으로, 2013년에는 2공장(15.4만L), 2015년에는 3공장(18만L), 2020년 4공장(24만L)을 증설했다. 이런 투자 덕에 2022년 생산 능력 세계 1위를 달성했는데, 지금도 멈추지 않고 경쟁사와 간격을 벌이는 ‘초격차’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4월 18만L 규모의 5공장을 착공해 2025년 4월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는 지난해 기자들과 만나 “5공장 가동 시기를 당초 2025년 9월에서 2025년 4월로 앞당기겠다”며 “초스피드 생산 역량 확대로 초격차를 실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5공장이 완공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78만4000L로 세계에서도 압도적인 생산능력을 확보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6~8공장도 증설해 2032년까지 총 132만4000L의 생산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세계적인 생산능력을 기반으로 글로벌 제약사들을 고객으로 확보했다. 현재 시가총액 기준 글로벌 상위 20개 제약사 중 17곳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객사다. 지난해 14곳 대비 올해 3곳이 더 늘었다.

◇신기술 고객 투자, 사업 포트폴리오 확대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기존 항체 의약품 중심에서 항체·약물결합체(ADC)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 ADC는 암세포와 결합하는 항체에 약물을 붙여서 정확하게 전달하는 차세대 항암제 기술이다. 회사는 올해 12월 완공을 목표로 ADC 전용 생산시설을 건설 중이다. 이 공장에는 500L 접합 반응기 및 정제 1개 라인이 구축될 예정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물산(028260),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벤처투자와 함께 조성한 ‘삼성 라이프 사이언스 펀드’를 통해 아라리스 바이오텍, 에임드바이오 등 우수 ADC 기술 보유 기업에 투자했다. 이를 바탕으로 ADC 관련 다양한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신규 모달리티(Modality·약물전달기술)에 대한 투자도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5223만달러(약 720억원) 규모의 삼성 라이프 사이언스 2호 펀드를 통해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 8호 펀드’에 투자하기도 했다.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 8호 펀드는 총 26억달러 규모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약 개발 플랫폼 기술에 중점을 두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앞으로 생산능력과 포트폴리오, 글로벌 거점 확대라는 3대 축 중심의 성장 전략으로 글로벌 종합 바이오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회사 측은 “CDMO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인오가닉(inorganic) 전략도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오가닉 전략은 인수합병과 지분 투자 등을 통해 회사 내부적으로 단기간 개발하기 어려운 기술, 개발 환경 등을 빠르게 획득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천사업장을 찾은 이재용 회장이 5공장 건설 현장에서 관계자 브리핑을 듣고 있다./삼성전자 제공

◇글로벌 협력 강화하는 이재용 리더십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급성장 뒤에는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과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의 글로벌 리더십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이 회장은 글로벌 제약사 리더들과의 네트워크 협력을 강화해 왔다. 지난해 아킨 두아토 미국 존슨앤드존슨(J&J) 최고경영자(CEO), 조반니 카포리오 브리스톨-마이어 스퀴브(BMS) CEO, 모더나 공동 창업자인 누바르 아페얀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 CEO, 크리스토퍼 비에바허 바이오젠 CEO, 케빈 알리 오가논 CEO 등을 잇달아 만났다. 모더나 관계자는 “이 회장과 친분과 신뢰 관계가 두터운 글로벌 빅파마 경영진들이 상당수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이 회장은 방한 중인 미국 연방 상원의원단,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 등과 회동했는데, 여기에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도 배석했다. 이 회동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빌 해거티 상원의원(테네시)을 비롯해 존 튠(사우스다코타), 댄 설리번(알래스카), 케이트 브릿(앨라배마), 에릭 슈미트(미주리·이상 공화당), 크리스 쿤스(델라웨어), 개리 피터스(미시건·이상 민주당) 의원이 자리했다.

올해 취임 6년차인 존림 대표는 직접 세계 곳곳을 발로 뛰며 사업 수주 기회를 잡는 데 주력하는 한편, 임직원이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원팀’을 강조하며 내부 결속을 강화해 왔다. 이달에도 바이오 재팬(일본 요코하마), 세계 의약품 전시회(CPHI, 이탈리아 밀라노) 등 글로벌 제약·바이오 컨퍼런스에 참여해 수주 활동을 이어갔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보스턴, 뉴저지 등에 영업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곧 일본 도쿄에도 사무소를 열기로 했다.

◇美생물보안법, 중국 경쟁사 퇴출 가능

시장은 글로벌 시장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유리한 상황이라고 평가한다. 세계적으로 바이오 의약품 생산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데다, 미국이 중국 바이오 기업을 겨냥해 발의한 생물보안법이 지난 9월 하원에서 통과돼 연내 최종 통과 가능성이 높아졌다.

법안이 통과하면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경쟁하고 있는 중국 우시바이오로직스, 우시앱텍은 2032년 전에 미국에서 사실상 퇴출된다. 우시를 통해 약을 생산하던 기업들은 다른 CDMO 기업을 찾아야 하는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유력한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올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 위탁 개발 플랫폼인 ‘에스-텐시파이(S-Tensify)’를 공개했다. 첨단 배양 기술을 통해 고농도의 바이오 의약품 초기 개발을 지원하는 기술이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우시바이오로직스는 초기 위탁 개발에 강점이 있는 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대규모 위탁 생산에 강하다”며 “새로운 위탁 개발 플랫폼을 출시해 우시의 고객들을 끌어오려는 포석”이라고 의견을 냈다.

최근 증권사들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목표 주가를 잇달아 올렸다. 이달 미래에셋증권은 기존 110만원에서 135만원으로, BNK투자증권도 기존 110만원에서 130만원으로 목표 주가를 각각 상향 조정했다.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황제주(주당 100만원 이상)’ 타이틀을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