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픽셀 임직원들이 지난 5월 27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심혈관 진단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분석 결과를 보고 있다. 메디픽셀은 심혈관 조영술 영상을 2초 만에 분석하는 AI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조선비즈

심혈관 질환은 전 세계 사망 원인 1위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심혈관 질환은 사망자만 연간 900만 명에 달한다. 한국도 심혈관 질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내 심혈관 질환 사망자 수는 2021년 기준 암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3만1569명이다. 심혈관 질환은 특히 돌연사가 많아 ‘예고 없는 암살자’로 불리기도 한다.

정보기술(IT)과 의료 전문가들이 심혈관 질환을 잡기 위해 손을 잡았다. 메디픽셀은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인공지능(AI) 기술을 기반으로 심혈관 시술을 돕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최근 수출까지 성공했다. 지난해 12월 인도 의료장비 업체 인볼루션 헬스케어(Innvolution Healthcare)와 60억원 규모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전 직원이 2018년부터 심혈관 질환 진단 소프트웨어 개발에 매달려 일군 성과다.

송교석 메디픽셀 대표는 LG전자(066570)안랩(053800)을 거친 IT 전문가이다. 그는 2016년 구글의 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국을 본 뒤로 AI만 공부했다. 이후 서울아산병원이 개최한 빅데이터 대회에서 폐암 진단 AI 솔루션(소프트웨어)으로 입상한 뒤 메디픽셀을 창업했다.

메디픽셀은 처음에 폐암 진단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지금은 심혈관 질환을 공략하고 있다. 송 대표는 “시장에 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 생각했을 때 폐암 쪽은 냉정하게 봐서 부족한 점이 많았다”며 “한 대학병원 심장내과 교수가 같이 과제를 해보자고 제안하면서 심혈관 질환으로 방향을 바꿨다”고 말했다. 그렇게 선택한 심혈관 질환 의료용 AI 진단 소프트웨어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심혈관을 감시하는 파수꾼이 됐다.

메디픽셀이 개발한 인공지능(AI) 기반 심혈관 진단 소프트웨어로 심혈관 조영술 영상을 분석한 모습./메디픽셀

◇2032년 세계 시장 176조원 규모로 성장

메디픽셀이 보유한 AI 기반 의료용 소프트웨어는 ‘메디픽셀(MP)XA’와 ‘메디픽셀(MP)FFR’ 두 가지이다. 두 제품은 모두 심혈관 조영술로 촬영한 혈관을 분석한다. 심혈관 조영술은 지름 2~3㎜, 길이 1m 크기의 관으로 심장 상태를 파악하는 방법이다. 혈관에 조영제를 주입하고 관을 넣어 심장 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 형태를 X선으로 관찰한다.

심혈관 조영술은 심장 상태를 보여주긴 하지만, 심혈관 질환이 어느 정도인지 수치로 보여주진 못한다. 의사가 보기에 촬영한 심장의 모습이 정상인 것처럼 보여도 혈관이 좁아지는 협착이 있어 혈류량이 적을 수도 있다. 특히 한시가 급한 심혈관 환자의 경우, 의사가 빨리 증세를 판단해야 한다는 중압감까지 받을 수 있다.

MPXA는 심혈관 조영술로 촬영한 영상으로 심혈관에 문제가 있는지, 협착은 어느 정도인지 단 2초 만에 분석한다. 심혈관 조영술 영상이 컴퓨터로 들어와 AI로 분석하면 심혈관 협착률을 소수점 두 번째 자리까지 알 수 있다. 또 심혈관 상태에 따라 필요한 시술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MPFFR은 심근분획혈류예비력(FFR) 계산으로 관상동맥 협착으로 일어난 혈류량 감소를 측정하는 소프트웨어다. FFR은 혈관으로 가느다란 철사 형태인 압력계를 넣어 혈류량을 정확히 측정하는 방식이다. 세계 각국에서 진료 표준으로 추천하는 방식이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번거로워 활용률이 굉장히 낮다. MPFFR은 압력손실 정량화 알고리즘과 3차원 혈관 재구성 기술로 2차원인 심혈관 조영술 영상에서 FFR 값을 얻어낸다.

송 대표는 “FFR은 심혈관 질환을 진단하는 데 정확하지만, 가격도 비싸고 시간도 오래 걸려 쓰이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며 “MPFFR는 사용하기는 더 쉽고, 결과가 실제 FFR 값과 유사한 만큼 의료계의 관심도 높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소프트웨어와 다르게 모든 과정이 자동화돼 분석 결과가 나온다는 게 큰 특징”이라고 했다.

심혈관 질환은 전 세계 사망원인 1위인 만큼, 관련 의료기기 시장도 크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프리시던스 리서치(Precedence Research)에 따르면 심혈관 의료기기 시장 규모는 2032년 1272억달러(176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메디픽셀은 전 세계에서 심혈관 조영 영상장비를 가장 많이 판매하는 기업인 필립스와 2021년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필립스가 제작한 심혈관 조영 영상장비에 메디픽셀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넣어 해외 진출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송교석 메디픽셀 대표가 지난 5월 27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메디픽셀은 심혈관 조영술 영상을 2초 만에 분석하는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조선비즈

◇인도 넘어 미국·일본·동남아로 진출 계획

“인도 업체와 수출 계약을 맺은 건 해외 진출의 시발점이라는 의미가 큽니다. 앞으로 미국은 당연히 꼭 수출해야 하는 곳이고, 동남아시아나 일본 같이 가까우면서 심혈관 진단 수요가 있는 나라에도 진출할 계획입니다.”

송교석 메디픽셀 대표는 지난 5월 27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조선비즈를 만나 인도 수출은 시작일뿐이라고 말했다. 메디픽셀은 송 대표 같은 IT 전문가를 포함해 의사·간호사·방사선사 출신 직원 62명이 AI 의료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MPXA는 지난해 미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고, MPFFR은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임상시험계획(IND) 승인을 받았다.

송 대표는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단의 지원으로 AI 진단 기술을 빠르게 개발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송 대표는 “범부처 의료기기 과제를 5년째 진행하고 있는데, 이 기간에 MPXA를 고도화할 수 있었다”며 “MPFFR은 범부처 의료기기 사업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특히 범부처 사업단이 대형병원과 긴밀히 협력할 수 있도록 지원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송 대표는 “병원들과 협력하면서 제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고, 결국 필립스와 같은 글로벌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었다”며 “메디픽셀 입장으로서는 성장하는 데 매우 핵심적인 과제였다”고 말했다.

메디픽셀은 심혈관 질환 다음으로 뇌혈관을 진단하는 AI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계획이다. 뇌혈관도 조영술로 뇌동맥류를 진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음 사업으로 정했다고 했다. 송 대표는 “이미 2022년부터 신경외과 의료진과 연구 계약을 맺고 개발에 착수했다”며 “오는 연말에 시제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