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이미지. /픽사베이(pixabay)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아도 지방간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 마땅한 치료제도 없다. 국내외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전 세계 4억4000만명이 앓고 있는 대사이상 지방간(MASH) 치료제를 두고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MASH는 음주 여부와 관련 없이 신진대사 문제로 간에 중성지방 침착물이 쌓여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심하면 간이 딱딱해지는 섬유화 증상이 나타나고 간암으로 악화할 수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외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MASH 치료제 개발 임상 2상 시험 단계를 진행 중이거나 최근 완료하며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사는 인체가 영양물질을 분해해 에너지를 얻고 부산물을 몸밖으로 배출하는 과정을 말한다. 신약 후보물질들은 대사과정에서 공략하는 대상이 제각각이다. 시장에선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갑상선 호르몬 수용체(THR)-β', ‘섬유아세포성장인자(FGF)21′ 표적 약물이 경쟁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 잇따른다.

GLP-1은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인체 호르몬이다. THR-β는 인슐린 분비에 관여하고, FGF21은 혈당과 중성지방을 낮추고 에너지 대사와 지방 활용, 지질 배설을 증가시킨다.

미국 마드리갈 파머슈티컬스가 올해 출시한 세계 첫 대사이상지방간(MASH) 치료제 ‘레즈디프라.’/마드리갈 홈페이지

◇비만 치료제를 지방간 치료로 확장

현재까지 MSAH 치료제로 승인받은 약은 올해 3월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가속 승인받은 미국 마드리갈 파마슈티컬스의 ‘레즈디프라’가 유일하다. 이 약은 갑상선 호르몬 수용체인 THR-β를 공략하는 치료제다. 알약 형태의 먹는 약으로 THR-β 수용체에 결합해 간세포의 지방 대사, 염증 반응, 섬유화 과정을 개선한다. 이 약은 4월 미국에 처음 출시됐다.

MASH 치료제로 승인받으려면 염증과 섬유화 개선 효과 모두를 입증해야 한다. 다른 기업들은 레즈디프라와 대적할 만한 치료 효능과 함께 투여 편의성을 높이고 부작용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MASH 의약품 시장이 초기 단계인 데다 출시된 THR-β 표적 치료제는 부정맥, 심부전 같은 부작용 우려가 있고, 섬유화 개선 효과가 아주 크지는 않아 경쟁력 있는 약물로 승부를 겨뤄볼 만하다”고 말했다.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와 미국 일라이 릴리, 독일 베링거 인겔하임은 GLP-1 계열 약물을 당뇨, 비만 치료에서 MASH 치료로 확장해 개발 중이다. MASH 환자 절반이 비만을 겪고 있다. 이 업체들은 비만 치료제로 각광을 받고 있는 GLP-1 계열 치료제는 체중 감소 효과와 심혈관계 질환 예방 효능이 입증돼 있어, 간 섬유화 개선 효능을 입증하면 시장 경쟁에서 큰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본다.

일라이 릴리는 MASH 환자 19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 2상 시험에서 터제파타이드 성분을 투여한 환자의 절반 이상에서 섬유화 악화 없이 증상이 개선됐다고 지난달 국제 학술지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발표했다. 터제파타이드는 일라이 릴리가 당뇨약 ‘마운자로’, 비만약 ‘젭바운드’로 개발해 출시한 GLP-1 계열 성분이다.

터제파타이드를 투여한 환자 중 질병 악화 없이 섬유증이 한 단계 이상 개선된 비율은 51~54.9%로, 위약군(29.7%)보다 월등한 효능을 보였다. 고용량인 15㎎를 투여해도 환자 73.3%에서 섬유증이 악화되지 않았다. 이 같은 MASH 치료제 임상 2상 결과가 나오자, 미국 증시에서 일라이 릴리 주가가 상승하고 마드리갈 주가는 하락해 희비가 엇갈렸다.

베링거 인겔하임은 지난 6월 GLP-1계열 MASH 후보물질인 서보두타이드의 임상 2상 시험 결과를 공개했다. MASH 환자 295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48주차에 환자 83%가 통계적으로 의미있는 치료 효과를 보였다. 이 회사는 서보두타이드 외에도 2019년 유한양행(000100)으로부터 사들인 MASH·비만치료 후보물질 ‘YH25724′도 개발 중이다. 이는 GLP-1과 FGF 21을 표적하는 이중 작용제로, 지난해 임상 1상 시험을 개시했다.

◇유한양행, 한미약품, 동아쏘시오도 각축

국내에서는 한미약품(128940)이 MASH 치료제 후보물질인 ‘에포시페그트루타이드(LAPS Triple Agonist)’로 글로벌 임상 2상 시험을 하고 있다. 이 후보물질은 에너지 대사량을 증가시키는 글루카곤(Glucagon)과 인슐린 분비와 식욕 억제를 돕는 GLP-1, 인슐린 분비 촉진와 항염증 작용을 하는 GIP 수용체를 동시에 활성화하는 삼중작용 바이오 신약이다. 이는 지난 2020년 미국 머크로 기술 이전돼 개발되고 있다.

동아쏘시오그룹은 미국 보스턴에 있는 자회사 뉴로보 파마슈티컬스를 통해 GPR119 표적 MASH 치료제 후보물질인 DA-1241의 글로벌 임상 2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DA-1241은 원래 당뇨병 치료제 후보물질로 개발했다. GPR119는 췌장의 베타세포에 있는 수용체다. 활성화되면 인슐린 분비를 증가시킨다. 회사 관계자는 “전임상에서 DA-1241 투여 후 간경화, 염증, 섬유화, 지질 대사, 포도당 조절 등의 개선 효과를 확인해 MASH 치료제로 개발하고 잇다”며 “올해 말 글로벌 임상 2상 주요 데이터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신약개발 업체인 퓨쳐메디신(341170)은 항염증과 항섬유화를 목표로 하는 MASH 치료 후보물질 ‘FM101′를 개발 중이며, 현재 임상 2상 시험을 하고 있다. 디앤디파마텍(347850)도 지난달 10일 GLP-1·글루카곤 기반 후보물질인 ‘DD01′의 미국 FDA 임상 2상 승인계획(IND) 승인을 획득했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데이터는 전 세계 MASH 치료 시장이 2026년 253억달러(약 34조9215억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는 “MASH는 만성질환이라 장기 투약 시 약물의 안전성과 환자 편의성이 향후 시장 경쟁의 주요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