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범부처 의료기기 제품화지원 거버넌스 통합포럼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 사업단 제공

의료기기 업체들이 해외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서 국산 의료기기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잔문가들은 내수 시장도 공략하지 못한 채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먼저 국산 의료기기에 대한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세준 분당서울대병원 의료기기 연구개발 센터장은 27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24 범부처 의료기기 제품화 지원 거버넌스 통합포럼’에서 “종합병원급이나 상급종합병원급 등 규모가 클수록 외국산 의료기기를 많이 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21년 기준으로 의료기기 산업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세계 10위였다. 정부와 의료기기 산업계는 오는 2025년까지 세계 7위권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청사진을 세웠다. 하지만 2022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자료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의 국산 의료기기 점유율은 12.5%, 종합병원은 20.7% 수준에 불과했다.

우세준 센터장은 “대형 병원일수록 국산 의료기기를 덜 선호하는 여러 이유 중 핵심은 신뢰성의 문제”라고 말했다. 고장 발생 가능성과 기기 수명의 문제가 해결돼야 국산 의료기기를 믿고 구매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의료기기는 환자의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안전성이 보장되고 성능을 유지하는 것이 신뢰성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덧붙였다.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단이 주최한 이날 행사는 의료기기가 인허가를 받은 후 실제로 쓰이기 위한 신뢰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평가할지를 두고 집중 논의했다. 출시 이전의 시험검사가 의료기기 제품의 현재를 진단한다면, 신뢰성 평가는 장기간 반복되는 사용을 전제로 제품의 현재와 미래를 모두 확인하는 절차다.

김법민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단장(고려대 바이오의공학부 교수)은 “신뢰성 평가는 제품을 사용하는 도중에 발생할 수 있는 고장이나 기대 수명 등을 평가해 입증하는 대표적인 선진국형 기술”이라며 “국산 의료기기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품질은 물론 신뢰성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 센터장은 “신뢰성을 얻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의료기관으로 대표되는 사용자”라고 했다. 전통적인 신뢰성 측정 방법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고장이나 기기 수명 관련 데이터를 취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장이 발생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고 데이터 취합 비용도 많이 소요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 새로운 유형의 의료기기라면 전례가 없기 때문에 사용자 경험을 바탕으로 신뢰성을 평가하기가 더 어렵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 센터장이 제안한 기술은 사용 적합성 평가다. 실제와 유사한 사용 환경에서 의료기기의 유효성과 효율성, 사용자 만족도를 평가하는 것이다. 우 센터장은 “사용 적합성 평가를 의료기기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임상 현장에서 새 의료기기를 시연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고주파 수술기 제조업체인 스타메드의 이준혁 연구기획팀장은 “기업의 입장에서 신뢰성의 핵심 요소는 설계 수명을 넘어서도 과도한 유지·보수나 수리가 필요 없는 내구성”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의 의료기기 산업은 다품종 소량 생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안정적인 자재 확보가 어려워 의료기기의 내구성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팀장은 내구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기 설계 단계부터 서비스 제공과 유지·보수 단계까지 신뢰성 개념을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원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바이오헬스센터장과 한태화 연세대 의대 뇌심혈관질환연구센터 연구부교수는 각각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사업단 1단계 사업에서 신뢰성 평가 지표 개발과 적용·해외 사례에 대해 발표했다. 그러면서 국내 신뢰성 평가가 국제 표준에 반영돼야 해외 의료기기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