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학현 아이센스 대표가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남 대표는 "연속혈당측정기는 나노기술의 집약체"라고 말했다. /조선비즈

요즘 헬스장에서 24시간 혈당 측정기를 몸에 붙이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당뇨병 환자가 아니라, 체중을 감량하려는 사람들이다. 소셜미디어인 인스타그램에는 ‘혈당 스파이크’라는 해시태그(#)와 혈당 그래프 화면을 캡처한 인증 사진이 쏟아진다.

국내 당뇨병 환자도 수년간 크게 늘었다. 당뇨병 진단을 받았거나, 혈당약을 먹고 있는 환자는 600만명에 육박한다. 당뇨병 전단계로 취급하는 고혈당(공복혈당 100~125㎎) 환자도 급증세다. 혈당 관리를 한다며 가려 먹는 사람도 많다. 실시간 혈당 측정기가 인기가 있는 이유다.

연속 혈당 측정기는 손가락을 찌르지 않고 혈당을 확인할 수 있는 의료기기다. 피부에 패치 형태로 사람 머리카락보다 얇은 200㎛(마이크로미터, 100만분의 1m) 굵기의 바늘을 찔러 혈당을 측정한다. 국산 1호 연속 혈당 측정기인 ‘케어센스 에어’를 개발한 아이센스(099190) 남학현 대표는 “연속 측정기는 피부의 전극과 효소 시약, 보호막으로 일정한 신호를 발생시키는 나노기술의 집합체”라고 말했다.

◇연속 혈당 측정기 국내 시장 석권 채비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동 본사에서 만난 남 대표는 옷소매를 걷어 올려 양쪽 팔에 부착한 연속 혈당 측정기를 보여줬다. 오른팔에는 올해 출시한 ‘케어센스 에어’, 왼팔에는 미국 시장 진출에 도전하는 ‘케어센스 에어2′가 붙어 있었다. 남 대표는 “비행기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아보려고 측정기를 달고 해외를 다녀왔다”며 “케어센스와 상위 버전인 케어센스2 모두 끊김 없이 측정이 되는 것을 확인하고 한시름 놓았다”고 말했다.

아이센스는 이미 손가락에서 혈액을 채취해 혈당을 재는 자가측정기 분야에서 국내 1위 업체다. 다국적 의료기기 기업이 국내 시장을 점령했던 지난 2000년 저렴한 국산 제품을 개발해 시장을 석권했다. 아이센스가 등장하면서 자가측정기 가격은 30만원에서 3만~4만원대로 떨어졌다.

남 대표는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건주립대에서 석박사를 받았다. 국산 자가 혈당 측정기는 광운대 화학과 교수였던 남 대표가 국가 과제로 개발했다. 남 대표는 “당시 외국 기기는 손가락에 피를 철철 내야 혈당이 측정됐는데, 우리는 피가 살짝 맺히는 정도로 측정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했다”며 “우리 제품이 출시되자,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던 외국의 신제품들이 물 밀듯이 들어왔다”고 웃었다.

아이센스 연구원들이 서울 서초동 아이센스 본사 혈당측정 연구실에서 혈당 수치를 재고 있다./조선비즈

◇범부처사업단과 협력, 미국 진출 박차

아이센스는 자가측정기처럼 연속측정기도 국내 시장을 5년 안에 압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금 국내 시장은 애보트, 덱스콤 등 외국산 제품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외국산 제품의 한 달 비용이 20~30만원인데, 아이센스는 가격을 절반 수준인 16만 5000원으로 책정했다. 이미 카카오헬스케어, 한독과 손을 잡고 올해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올해 안에 유럽 시장에도 진출한다. 아이센스는 최근 헝가리 의료기기 유통업체와 협약을 맺었다. 남 대표는 “한국과 유럽 시장은 크게 염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아이센스의 가장 큰 현안은 미국 진출이다. 아이센스는 500원짜리 동전 크기인 측정기를 손톱 정도로 줄인 초경량 제품을 개발해, 미국 인허가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국내 1위 기업이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개발사업단에 손을 내민 것도 미국 시장 때문이다. 정부 과제에 참여하면 귀찮은 일이 많다. 서류도 시기마다 제출해야 하고, 간섭도 감수해야 한다. 남 대표는 “내부적으로는 ‘정부 사업에 지원하지 말자’는 의견도 있었다”며 “하지만 미국 시장에 진출해 성공하려면 범부처사업단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아이센스는 올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케어센스 에어 2에 대한 임상시험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 내년 임상시험을 마치고 2026년 허가, 2027년 출시라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목표를 실현하려면 국내 허가부터 성공해야 한다. 의료기기가 성공하려면 어느 곳에서 사용해본 임상 근거를 충분히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범부처사업단은 국산 의료기기의 글로벌 진출에 발 벗고 나섰다. 남 대표는 “사업단은 기업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며 “사업단 주선으로 식약처에 제품의 근거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남 대표는 ‘글로벌 시장에 팔리는 국산 의료기기를 개발하자는 범부처사업단의 비전에 공감했다고 한다.

아이센스 남학현 대표가 서울 서초동 아이센스 본사에서 미국 시장을 겨냥해 개발한 연속 혈당 측정기인 케어센스 에어 2를 들고 있다./조선비즈

◇“5년 안에 글로벌 의료기기 목표”

남 대표에 따르면 케어센스 에어 2는 현재 세계 최고 사양 제품이다. 패치 크기는 가장 작고, 블루투스로 혈당 값이 1분 간격으로 스마트폰에 전송된다. 채혈을 통한 혈당값 보정도 필요없다. 패치 한 개로 쓸 수 있는 기간(21일)도 가장 길다. 남 대표는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경쟁사 특허만 수천개 분석했고, 이를 방어하는 특허도 수백개 등록했다”고 말했다.

물론 미국 시장에서 허가를 받고 나중에 경쟁사가 더 좋은 사양의 제품을 내놓을 수도 있다. 남 대표는 “측정값의 정확성을 보정하거나, 혈당 측정기를 인슐린 펌프와 연동한 ‘인공 췌장’을 개발하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 대표는 혈당 측정값을 실시간 확인하고, 혈당 관리를 조언하는 앱(app, 응용프로그램) 개발 능력이 있는 파트너사도 찾고 있다.

남 대표는 미국 시장 진출을 두고 “회사의 명운이 달려 있어 꼭 성공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의 전자 의료기기 기업 가운데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한 곳은 아직 없다. 하지만 성공하면 바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 아이센스는 케어센스 에어2로 5년 안에 글로벌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리서치앤마켓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세계 연속 혈당 측정기 시장은 오는 2030년 75억달러(약 10조 3400억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아이센스의 자가측정기 세계 시장 점유율은 5%다. 글로벌 시장의 5%만 가져와도 연 5000억원의 매출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남 대표는 아이센스 창업 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하필 혈당 측정기를 만드나”였다고 했다. 교수 출신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지 않고, 굳이 이미 있는 상품을 개발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때 남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회사는 새로운 걸 만드는 게 아니라, 돈을 버는 곳이거든요. 저는 큰 시장을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