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석 딥노이드 최고의료책임자(CMO)는 "영상의학과 의사로 일하면서 영상 판독에서 2% 정도 오류가 있었다"며 "의료 AI는 의사의 오류를 잡는 동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김명지 기자

“안녕하세요. 저는 90점짜리 인공지능(AI) 의사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지난 4월 제주도에서 열린 대한신경두경부영상의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최현석 딥노이드(315640) 최고의료책임자(CMO) 이사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대한신경두경부영상의학회는 뇌영상을 판독하는 신경과와 영상의학과 전문의들이 모인 곳이다. 최 이사는 서울성모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신경방사선과 부교수 시절 뇌영상 판독 명의로 활약했다.

최 이사는 이번 학회에는 기업 관계자로 나와 “세상에 100점짜리가 어디 있겠냐”며 “제가 만드는 AI는 여러분의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졌다. 그는 “공학자 출신의 기업인들은 자기 제품이 완벽하다고 설명하는데, 이런 말은 오히려 의사들의 반감을 산다”며 “좀 모자란 걸 인정했더니, 오히려 차별화가 됐다”고 말했다.

딥노이드는 의료 인공지능(AI)을 개발하는 회사다. 지난 2008년 삼성전자 연구원 출신인 최우식 대표가 창업했다. 회사는 처음엔 통신 서비스 회선(M2M)을 개발했다. 그러다가 의료 영상 기술은 발전하는데 판독할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에 착안해 2015년 의료 AI 기업으로 변신했다. 최 이사는 지난 2017년부터 서울성모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로 딥노이드의 임상시험을 진행했는데, 지난해 아예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딥노이드의 간판 제품인 ‘딥뉴로’를 임상시험한 사람이 최 이사다.

딥뉴로는 국내 최초로 자기공명영상(MRI)에서 뇌동맥 일부가 약해져 부풀어 오른 뇌동맥류를 찾는 의료 AI 소프트웨어이다. 현재 국내 상급종합병원 아홉 군데서 쓰고 있다. 회사의 의료 AI는 흉부 X선 영상에서 이상 부위를 찾는 AI인 딥체스트, 흉부 컴퓨터단층촬영(CT) 이미지로 폐결절을 알아내는 딥렁도 있다.

최 이사는 원래 신기술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개인맞춤형 뇌졸중 진단을 위한 의료 영상 처리 시스템 같이 특허도 여러 번 출원했다. 그가 AI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자신이 98점 짜리 의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 이사는 “그동안 영상 판독에서 2% 정도를 놓쳤다”며 “2%의 오류에도 의료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은 동료 의사들이 오류를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 이사는 AI가 자신의 실수를 잡아준 동료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봤다.

최 이사는 의료 AI가 의사의 오류를 잡는 도구가 되려면 좀 더 쓰기 쉬워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의료 AI를 대화형 AI인 챗GPT같은 형태로 만들기 위해 초거대언어모델(LLM)을 구축하려고 한다”며 “예를 들어 AI가 단순히 영상 사진에서 병변 부위를 찾아 표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판독문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딥노이드는 올해 LLM을 전공한 서울대 출신 박사를 영입했다.

최현석 딥노이드 최고의료책임자(CMO) 이사는 "의사뿐 아니라 환자도 의료 AI를 쓸 수 있도록 챗GPT 같은 대화형 AI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딥노이드

의료 AI가 대화형으로 발전하면 환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요즘 병원은 환자에게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MRI 영상을 USB(이동식 저장장치)나 이메일로 제공한다. 딥노이드는 의료 영상을 회사 홈페이지에 올리면 챗봇이 환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을 구상하고 있다. 최 이사는 “의료 AI는 전문의와 환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내 의료 AI 시장은 딥노이드와 루닛, 제이엘케이, 뷰노 4개 업체가 주도하고 있다. 루닛은 서울대병원, 제이엘케이는 분당서울대병원, 뷰노는 서울아산병원, 딥노이드는 세브란스병원, 강남성모병원과 손을 잡았다. 제이엘케이는 가장 먼저 의료 AI를 국민건강보험에 등재했고, 루닛은 해외 의료 AI 기업을 인수하며 해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딥노이드는 영상 판독 전문의가 부족한 군부대 환자의 영상을 AI로 판독하는 정부 사업으로 차별화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최 이사를 서울 구로구 딥노이드 본사에서 만나 의료 AI의 가능성과 향후 계획을 물었다.

–90점짜리 AI를 개발한다고 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오히려 100점짜리를 개발한다고 말하는 게 허풍 아닌가. 세상에 무(無)오류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의사가 필요한 것은 자신보다 뛰어난 AI가 아니라, 의사가 가끔 실수를 하면 잡아줄 정도가 되는 AI이다. 꼭 우수한 실력이 필요한 게 아니다. 교수 시절 내 실수를 전공의들이 잡아줄 때도 있었다. ”

–의료 AI가 지방 의료 격차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지방 병원이 연봉 4억원을 준다 해도 의사들이 가지 않는 건 동료가 없기 때문이다. 환자의 생명이 걸린 일을 혼자서 결정하는 건 두려운 일이다. 지방 의료원에서는 의사가 혼자 일한다. 그 의사가 놓치면 그걸로 끝이다. 그걸 AI가 도와줘야 한다. 나는 우리 AI가 동료 의사, 후배 의사 역할만 해도 지방 의료 격차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AI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의사들이 뇌종양 CT를 볼 때 가장 어려워 하는 것이 교모세포종이다. 교모세포종은 신경세포에 생긴 악성 종양인데 뇌 전반에 넓게 펼쳐져 있어 CT를 찍으면 뿌옇게 안개가 낀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뇌 감염도 영상에서 비슷하게 뿌옇게 나온다는 것이다. 단순 뇌염이라면 지방에서도 치료가 가능하지만, 뇌종양이라면 대학병원을 가야 한다. 판독 경험이 부족한 의사가 의료 AI를 활용해 교모세포종과 뇌염을 구분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충분히 효용이 있다.”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일수록 AI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의료 AI는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동남아시아나 중남미, 아프리카 시장에서 기회가 있다고 본다. 지난달 22일 딥노이드 본사에 페루 보건부와 통합건강보험청 공무원 10여명이 방문했다. 중남미 국가인 페루는 직장⋅군인⋅경찰로 나뉜 의료보험을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건강보험 통합을 하려면 의료비를 줄여야 하는데, 페루에는 환자를 진료할 의사가 부족하다. 국토가 대부분 산간이라 교통도 여의치 않다. 의료 AI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동남아시아, 중남미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반응이 뜨겁다. 지닌해 필리핀 의사협회 관계자들을 만났는데, 최근 의료 AI 합작사를 만들자고 연락이 왔다. 섬 국가인 필리핀은 원격 의료가 발달해 있고, 영상 판독 비용도 한국과 비교하면 훨씬 비싸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베트남의 영상 판독 시장을 온라인으로 연결하면 적지 않은 시장이 될 것으로 본다.”

–해외 시장을 뚫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동남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는 미국, 유럽과 비교하면 규제 장벽이 낮지만, 시장을 뚫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올해 두바이에서 열린 아랍헬스 전시회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느냐’였다. 의료 AI는 의사가 고객이다. 저개발국가일수록 의사가 그 사회에서 최상위층이기 때문에 제품을 구입할 때 가장 높은 수준을 요구한다. 의약품과 의료기기는 결국 미국을 넘어야 다른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다.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