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중국 설날인 춘제 연휴동안 중국 포털 검색어 상위권에 ‘살빼는 사람 자링(賈玲)’이 올랐다. 자링(41)은 푸근한 외모의 중국 코미디언인데, 지난 1년 동안 50kg 넘게 체중을 감량해 화제가 됐다. 자링은 자신이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에서 체중 감량 과정을 공개했지만, 중국 누리꾼 사이에서는 ‘오젬픽(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이 비결’이라는 말이 나온다.
오젬픽은 노보노디스크가 개발한 비만치료제 위고비와 같은 성분의 당뇨병 치료제다. 한 달 약값 139달러(약 20만원)이지만 중국에서는 없어서 못 구할 정도다. 이런 인기를 반영하듯 요즘 중국 제약 업계에서 오젬픽 바이오시밀러(복제약) 개발 열기가 뜨겁다. 중국에서 세마글루타이드 특허는 2026년 만료된다.
◇ 中 GLP-1 비만치료제 임상 3상 진입 12곳
12일 중국의약품진흥협회(中国医药创新促进会)에 따르면 중국 국가의약품안전청 산하 의약품평가센터(CDE)는 최근 세마글루타이드 복제약 임상 연구와 개발을 안내하는 기술 표준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CDE에 따르면 세마글루타이드 복제약을 개발하려는 제약사는 제2형 당뇨가 없는 비만인을 대상으로 비교임상을 해야 한다.
세마글루타이드는 위·소장에서 분비되는 글루카곤펩타이드(GLP)-1 호르몬과 유사한 작용을 하는 약물이다. GLP-1은 음식을 먹으면 췌장에게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을 분비하라고 알린다. 음식을 한꺼번에 먹으면 소장이 소화하기 힘드니, 위장에게 음식 배출 속도를 줄이라고도 지시하고, 뇌에는 그만 먹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몸 속에 혈당(물)을 조절하는 댐 역할을 하는 호르몬을 몸에 넣어주는 것이다.
중국 규제 당국이 세마글루타이드 약물 임상 표준화에 나선 것은 중국 제약업계에서 복제약 개발 경쟁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세마글루타이드 계열 비만치료제로 임상 3상 단계에 진입한 회사는 12곳에 달한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중국 화둥제약의 신약개발 회사인 지우위안진이다. 이 회사는 최근 중국 당국에 오젬픽 복제약인 ‘지유타이’(JY29-2)에 대한 판매 허가 승인을 신청했다.
이번에 허가를 받으면 세계 최초 세마글루타이드 복제약이 된다는 것이 회사 설명이다. 다만 제품 출시 시기는 미뤄질 수 있다. 중국 특허청이 지난 2022년 노보노디스크와 화동제약의 특허 소송에서 화동제약의 손을 들어줬지만, 노보노디스크가 항소했다.
중국 자체 글루카곤펩타이드(GLP)-1 계열 비만치료제 개발도 한창이다. 중국 이노벤트바이오는 일라이 릴리로부터 인수한 마즈두타이드(Mazdutide)를 비만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다. GLP-1과 글루카곤(GCG)에 동시에 작용하는 이중작용제다. 중국 신약개발사인 청이바이오텍은 지난해 11월 아스트라제네카와 20억 달러 규모의 GLP-1 후보물질에 대한 독점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고 개발에 돌입했다.
◇ 중국 어린이 10명 중 4명 과체중 전망
중국 정부가 비만치료제 복제약 개발을 적극 지원하는 것은 비만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한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오는 2030년 중국 어린이 10명 중 4명은 과체중이 될 것이라는 유엔 아동기금과 북경대의 공동 연구 결과가 란셋 지역 건강에 지난 1월 게재돼 충격을 줬다. 중국 정부는 5년 후에는 성인 만성 질환 관리 비용으로 매년 490억 위안(약 9조 270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한다.
당뇨병 치료제인 오젬픽 중국 매출은 6억 9400만 달러(약 1조원)로, 전 세계 매출의 5%에 이른다. 문제는 약값이다. 중국에서 오젬픽 한 달 약값은 139달러(약 20만원)로 미국 한 달 약값 1349달러(176만원)과 비교하면 저렴하지만 국가건강보험에 포함시킬 정도는 아니다.
중국의약품진흥협회는 “GLP-1 비만치료제의 특허가 풀리게 되면, 이 시장이 혁신 전쟁에서 비용 전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라고 기대했다. 비만치료제는 효과는 좀 떨어지더라도 가격이 저렴한 제품을 찾을 수도 있다. 체중의 20%이상 감량이 필요한 초고도비만 환자와 달리 비만치료제를 구입하는 대부분은 5~10% 정도면 충분하다.
전 세계는 혁신 비만 치료제 개발 전쟁 중이다. 릴리가 개발한 젭바운드(성분명 터르제파티드)는 GLP-1과 GIPR을 이중 표적하는 약물이다. GLP-1이 아니라 다른 효소를 표적하는 비만치료제 연구도 활발하다. 미국 바이오벤처인 노드테라(Nodthera)는 최근 파킨슨병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었던 물질(NT-0796)이 체중 감량에도 효과가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후보물질은 면역을 조절하는 단백질 효소인 NLRP3 분비를 줄이는 작용이다.
비만한 쥐들은 음식을 먹을 때 NLRP3가 활성화되면서 뇌의 시상하부에서 음식 섭취를 조절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약을 투여한 그룹의 쥐는 28일동안 체중의 19%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여한 그룹에서 같은 기간 21.5%의 체중이 줄어든 것과 큰 차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