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 사진 노보노디스크 2.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 사진 일라이릴리 3. 비만 치료제를 사용해 체중 감량에 성공했다고 밝힌 킴 카다시안, 일론 머스크, 오프라 윈프리.(왼쪽부터) /조선DB

비만 치료의 돌풍을 일으킨 덴마크 노보노디스크가 개발한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와 일라이 릴리의 젭바운드(성분명 티르제파타이드)의 주요 성분인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가 이번에는 지방간염(MASH) 치료제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27일(현지 시각) 의료 전문지인 스탯(STAT)에 따르면, 미국에서 개발 중이거나 시판 중인 GLP-1 기반 비만 치료제 103개 가운데 20%에 해당하는 23개가 지방간염 치료제로도 개발되고 있다.

GLP-1은 원래 당뇨병 치료제로 쓰였다. 하지만 체중 감소 효과도 인정받아 비만 치료제로 널리 쓰이고 있다. GLP-1은 혈당이 떨어지면 췌장이 인슐린 분비를 늘리도록 하는 호르몬인데, 위에서 장으로 음식물이 넘어가는 시간을 늦춰 식욕을 조절한다.

◇ 노보노디스크·릴리·베링거·한미 참전

노보노디스크는 지난 2021년 위고비를 간 질환에 적용해 임상 3상 중이다. 일라이 릴리의 젭바운드를 지방간염 환자들에게 투여하는 임상 2상을 마쳤다. 릴리는 GLP-1, 글루카곤, GIP 등 세 가지 호르몬을 표적으로 하는 트리플G 약물을 개발하고 있다. 릴리가 이 제품을 지방간염 치료제로 개발할 것인지 계획을 발표하진 않았지만, 지난해 소규모 하위 분석에서 지방간 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이 약물을 복용하면 간 지방이 크게 감소한 것을 확인했다.

독일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은 GLP-1에 지방분해 호르몬인 FGF21수용체를 결합한 약물을 개발하고 있다. GLP-1으로 체중을 조절하는 동시에, 간에서 지방을 연소해서 지방간염을 치료한다는 복안이다. 미국의 바이오벤처인 89바이오와 아케로(Akero)테라퓨틱스가 개발한 FGF21 표적 약물은 동물실험에서 간섬유증까지 개선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만은 지방간을 일으키고, 지방간이 악화되면 지방간염으로 이어진다. 지방간염은 간 섬유증을 일으키고, 섬유증이 간경변으로 악화되면 간 이식이 필요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이론적으로는 비만을 잡으면 간경변도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 간섬유증 개선 입증 여부가 성공 가를 듯

국내 제약사 중에서는 한미약품이 GLP-1을 지방간염 치료에 적용하는 임상 2b상을 진행 중이다. 한미약품은 미국 MSD(머크)에 GLP-1 유사체 신약 후보물질인 에피노페그듀타이드를 기술 이전해 임상이 진행 중인데, 이 물질은 얼마 전 미국 FDA에서 패스트트랙 대상 품목으로 지정됐다. 한미약품은 내년 하반기 임상 종료를 기대하고 있다. 에피노페그듀타이드는 GLP-1 유사체에 GCG(글루카곤)를 동시에 활용하는 매커니즘이다. 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GCG는 에너지 소비를 촉진시켜 체중을 줄인다.

GLP-1유사체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는 제약사들이 지방간염 치료제로 영역을 넓히는 것은 시장의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 성인의 약 1.5~6.5%가 지방간염을 앓고 있지만 지방간염은 공식 승인된 치료법이 없다. 이 때문에 업계는 지방간염 치료제 시장은 수십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지방간염 치료제를 개발에 처음 성공하는 제약사는 최대 30조원 규모의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들 비만 치료제가 지방간염 치료제로 정식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간 섬유증과 중증질환에 대한 치료 데이터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에버코어 ISI의 애널리스트 리사 베이코는 “비만치료제가 지방간염 치료제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간 섬유증이 개선되는 효과를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릴리는 젭바운드 임상 2상에서 지방간염 치료 효과는 입증했지만, 간 섬유증을 치료했는지 여부는 공개하지 않았다. 일라이 릴리는 젭바운드의 지방간염 임상 3상에 대해서도 “향후 개발 계획을 언급하기는 시기상조”라고 한발 물러섰다. 릴리가 물러난 것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태도도 영향을 받았다. 미국 FDA가 지방간염 치료제 개발사에게 임상 참여자의 간 조직을 직접 떼서 확인하는 생검을 요구하면서, 임상 참가자를 모집하는 것이 어려워진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