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테오젠 전태연 부사장/ 알테오젠 제공

국내 신약개발기업인 알테오젠(196170)은 이달 22일 늦은 밤 급히 먹통이 된 홈페이지 복구작업을 해야 했다. 미국 글로벌제약사인 MSD(머크)가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정맥주사(IV)에서 피하주사(SC)로 바꾸기로 했는데 알테오젠의 기술을 사용하기로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홈페이지가 먹통이 됐기 때문이다. 알테오젠 홈페이지에는 이튿날 새벽까지 밀려드는 접속자로 접속 중단 사태가 이어졌다.

알테오젠의 주가는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이달 초 7만 8000원 선에서 움직이던 주가는 13만원까지 치솟았다. 홈페이지 접속자가 몰리고, 주가가 급등한 것은 이번 계약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면역항암제인 키트루다는 글로벌 매출이 한해 238억 달러(약 32조원)에 육박하는 초대형 블록버스터다. 현대건설의 작년 매출이 30조원이었는데, MSD는 키트루다 한 품목만으로 30조원을 벌어들인다.

MSD와 알테오젠의 협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알테오젠과 MSD는 지난 2020년 총 계약금 8450억원으로 계약을 맺었다. 그 때는 MSD의 어떤 의약품을 피하주사로 바꿀지도 결정되지 않았다. 그저 MSD가 알테오젠의 기술을 활용하고, 알테오젠은 마일스톤을 임상이 1상~3상과 판매까지 진행될 때마다 단계 별로 받기로 했다. 여기에 MSD는 알테오젠에게 자신과 협력하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리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이번 계약 변경으로 알테오젠은 계약금 266억원을 더 받고, 기존 계약 마일스톤 8450억원에 5767억원을 얹어서 받기로 했다. 키트루다SC가 임상 3상에서 성공하면 알테오젠이 받는 마일스톤은 총 1조 4217억원에 이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키트루다SC가 상업화에 성공해 오는 2028년까지 27조원 이상 매출을 내게 되면 알테오젠은 매출에 따른 로열티를 받는 계약을 맺은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알테오젠이 키트루다SC 업계 평균치인 연 매출의 5% 가량을 로열티로 받고, MSD가 키트루다 매출의 절반을 키트루다SC로 전환한다고 가정하면, 알테오젠은 한 해 8000억 원을 로열티로 받게 된다. 그러니 증권가에서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딜’이라는 말이 나온다.

알테오젠은 병원에서 1시간 넘게 맞아야 하는 정맥주사를 8분 만에 맞을 수 있는 피하주사로 바꿔주는 하이브로자임(Hybrozyme) 플랫폼 기술을 갖고 있다. 항암제는 혈액으로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혈관에 직접 주사하는 정맥주사 형태로 개발돼 왔다. 알테오젠은 유전자 재조합 히알루로니다제(용해제)를 활용해 약물이 피하조직을 뚫고 들어가게 한다. 이 같은 엔자임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미국의 할로자임과 한국의 알테오젠 단 두 곳뿐이다.

MSD와 계약을 이끈 전태연 알테오젠 부사장은 “요즘 글로벌 빅파마들 사이에는 제형 변경에 대한 관심이 크다”고 설명했다. 미국 의료 보험 시장에 IRA(인플레이션감축법)가 도입되면서 고가의 신약에 대한 약가 인하 요구가 거세다. 미국에서는 원료 물질을 통해 제형을 변경하면 신약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IRA를 회피할 수 있다.

값싼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에도 대응할 수 있다. 의약품은 특허가 만료되면 곧바로 복제약이 나온다. 허가가 만료되기 전에 편의성을 높인 제형으로 의약품을 개발해 신약으로 허가를 받으면 같은 의약품이라도 시밀러 제품들과 차별화가 가능하다. SC주사는 대학병원이 아니라 동네 병원에서 맞아도 되기 때문에 시장도 넓힐 수 있다. 브리스톨마이어스퀴브(BMS)는 면역항암제 옵디보를 할로자임의 기술로 피하주사제로 개발하고 있다. 로슈의 티센크릭도 할로자임 기술로 피하주사제를 개발 중이다.

전 부사장은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하고, 위스콘신대학에서 생화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인디애나대 로스쿨을 졸업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미국에서 변리사 시험에도 합격했다. 이공계 출신 변호사인 전 부사장은 “계약 상대방이 어떤 것을 요구할 지 쉬지 않고 분석한다”며 케네스 프레이저 전 MSD 대표(CEO)의 취임사를 소개했다. 프레이저 대표는 임직원들에게 “경쟁사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MSD를 망하게 할 수 있는지 솔루션을 내 보라”는 숙제를 냈다고 한다. 전 부사장을 대전 본사에서 인터뷰했다. 알테오젠은 LG화학 출신의 박순재 사장이 지난 2008년 설립한 바이오벤처다. 다음은 일문일답.

-MSD와 독점 계약 체결을 공시했다. 언제 어떻게 계약을 체결했나.

“지난주 금요일 미국에서 전체적인 내용에 합의를 했다. 영화를 보면, 커다란 원목 책상에 앉아 양측이 만년필로 사인하고 기념사진을 찍는데, 현장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회의실에 양쪽에서 변호사가 서너 명씩 들어와 계약서를 검토하는 작업이 길게 이어진다. 우리는 2020년 체결한 계약서가 있으니, 양쪽 계약서를 보면서 문구를 맞추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내용 합의는 금요일(16일)에 했는데 계약 체결 공시는 다음 주 목요일(22일)에 나왔다.

“시차도 있고, 월요일이 미국 공휴일이라서 세부 내용 협의 과정에서 계약 체결 시점이 늦춰졌다. 계약에 합의는 했지만, 양측이 계약서에 넣어야 할 세부 문항이 남아있었다. 사실 공시 직전까지도 정말 긴장했다. 오죽하면 혹시나 정보가 새 나갈까 봐 토요일 밤에 귀국했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에 계약이 성사될 것을 예상했나.

“그렇진 않다. 오히려 계약이 성사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물질에 자신이 있었으니, 다른 파트너를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세일즈맨이 물건을 팔 때 품질이 변변치 않으면 정말 힘들지 않나. 그런데 우린 자신감이 있었다. 바이오USA와 같은 국제 대회를 가면, 글로벌 빅파마들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하지만 처음부터 글로벌 빅파마들이 찾진 않았을텐데.

“그건 사실이다. 지난 2021년 MSD가 키트루다SC 임상 1상에 착수하면서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 때도 MSD가 우리 물질로 제형 변경을 한다고는 알리지 않았지만 업계는 다 알고 있었다. MSD로부터 얻은 것이 많다. 신약 개발은 연구개발(R&D)과 상업화로 나뉜다. 한국이 연구(R)는 잘 하지만, 개발과 상업화는 엉망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MSD와 협업으로 개발과 상업화 과정을 정말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글로벌 스탠다드 매뉴얼을 익혔다. 신약을 만들어 낸다는 건 정말 존경스러운 작업이다.”

-MSD의 임상을 비롯해 경쟁사 동향은 어떤가.

“BMS는 작년 11월 임상 3상에 할로자임의 기술을 활용한 옵디보 피하주사제 임상 3상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MSD가 알테오젠의 기술을 활용해 개발하는 키트루다SC는 오는 9월 임상 3상 결과가 나온다. MSD는 내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키트루다SC의 승인을 받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항체약물접합체(ADC) 신약을 피하주사 제형으로 바꾸는 것도 기술적으로 가능한가.

“ADC를 상업화한 기업과 물질이전 계약 체결 단계에 있다. 이 회사가 동물실험에서 ADC도 피하주사로 변경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으로 안다. ADC 뿐만 아니라, 이중항체, RNA(리보핵산)의약품도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에피소드는 없나.

“우리 물질을 활용하면 신약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IRA(인플레이션감축법)를 피해갈 수 있다. 한 파트너 회사에 이런 팁을 줬더니, 줌 회의 내내 조용히 있던 그 회사 변호사가 튀어나와서 설명을 요청했다. 그 만큼 글로벌 빅파마들이 의약품 제형 변경에 관심이 많다는 뜻이다. "

-항암제를 피하주사 제형으로 바꾸는 것이 IRA와는 무슨 상관이 있나.

“미국은 의료비가 비싸다. IRA는 미국 정부가 제약사들에게 자신들이 운영하는 메디케어(공보험)에 등재된 약 가운데, 수요가 많은 약들에 대해서 약값을 낮추라고 요구하는 정책이라고 보면 이해하면 쉽다. 미국 기술을 보호해 줘야 하는 최신 신약을 제외하고는, 모두 약가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메디케어는 미국 의료보험 시장의 40%가량을 차지하기 때문에 제약사들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 그런데 기존의 항암제라도 SC제형으로 개발하면 가격 인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제형 변경에 쓰이는 물질이 API(의약 물질)이라면, 신약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증권사 리포트를 보면 MSD가 키트루다 공급의 절반을 피하주사 제형으로 바꿀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수년 안에 MSD가 키트루다를 피하주사 제형으로 대부분 교체할 것이라고 본다. 정맥주사 방식의 저렴한 바이오시밀러에 시장을 내주지 않으려면, 최대한 빨리 환자와 의료진들이 키트루다SC에 적응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MSD가 키트루다SC로 전환을 빨리 할 수록, 누적 매출이 빨리 늘어날 것이고, 그러면 알테오젠으로 돈이 더 빨리 입금될 것이다.(웃음)”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입금되나.

“키트루다SC의 글로벌 임상 3상이 올해 9월 끝난다. 마일스톤은 내년에 제품이 시장에 출시되고 팔리기 시작할 때까지 들어온다. 또 키트루다SC 누적 판매 금액을 달성하면 그 때부터 로열티를 받게 된다. ”

-명문인 위스콘신대학에서 생화학 박사를 받고, 로스쿨에 다시 진학해 미국 변호사가 된 이력이 특이하다. 왜 진로를 바꿨나

“박사를 받고, 연구를 하다보니 전세계에 뛰어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연구개발로 성공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요즘 한국에서도, 다들 의대를 가려고 하지 않나.”

-MSD와의 계약을 성공시켰다. 알테오젠의 기술력이 가장 주효했겠지만, 이 밖에도 딜을 성사시킬 수 있는 비결이 있나.

“알테오젠의 박순재 대표가 해 주신 말씀이 있다. 사업개발(BD)을 잘 하려면 4가지가 필요하다. 유창한 영어, 기술에 대한 이해도, 사회성,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정치 문화 예술 상식. 그런데 일을 막상 해 보니, 여기에 하나를 추가해야 하더라. 법에 대한 이해다. 기술을 법으로 해석해 내는 것은 단순히 번역만 잘한다고, 기술만 잘 안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결국 커뮤니케이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