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근당 대웅 보령 HK이노엔 각사 전경

올 들어 국내 제약 업계에서 연 500억원 이상 대형 의약품 국내 판권 신규 계약이 잇따르고 있다. 제약사들이 기존의 계약을 깨고,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새 파트너를 찾고 있다.

업계에선 '시장에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는 속설을 반영하듯 시장 확보를 위한 피튀기는 경쟁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 앙숙에서 전략적 파트너로, 종근당·대웅

8일 업계에 따르면 종근당(185750)대웅제약(069620)이 최근 대웅의 역류성 식도염 치료제 신약인 '펙수클루' 국내 유통으로 손을 잡았다. 펙수클루는 대웅제약이 개발한 역류성 식도염 치료제로, 칼륨경쟁적억제제(P-CAB) 방식의 신약인데, 국내 제약 영업 1,2위를 다투는 앙숙인 종근당과 대웅제약이 계약을 맺은 것을 두고 업계에선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P-CAB 방식의 역류성 식도염 치료제는 HK이노엔(195940)의 '케이캡'이 원조다. 이 성분은 위벽에 직접 작용하기 때문에 기존 제품과 비교하면 효과가 빠르고 지속 시간이 길다 보니 출시와 동시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출시 5년 만인 지난해 케이캡의 연매출은 1582억원을 달성했다.

대웅제약의 전문의약품 펙수클루와 엔블로. /대웅제약

종근당은 케이캡이 출시된 2019년부터 작년까지 5년 동안 국내 유통을 맡았다. 종근당과 HK이노엔은 지난해 말 재계약 협상에 들어갔지만, 불발됐고, 이후 종근당의 영업력을 높이 산 대웅제약이 종근당에 펙수클루 유통을 제안하면서 양사의 파트너십이 성사됐다.

종근당은 케이캡을 통해 구축한 동네 병의원 영업망을 '펙수클루'에 그대로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펙수클루 매출은 500억원으로 케이캡과는 격차가 있지만, 종근당의 영업력이 가세하면 케이캡을 곧 따라잡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숙적, HK이노엔·대웅

HK이노엔은 종근당과 결별하고 케이캡 국내 유통 파트너사로 보령(003850)을 낙점했다. 보령은 전체적 영업력은 종근당과 비교하면 약하지만, 만성질환과 항암제에서는 강자로 통한다. 보령의 고혈압 신약인 카나브는 한 해 매출이 1500억원에 육박하는 블록버스터다. 역류성 식도염은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보령과 케이캡의 시너지는 충분할 것으로 HK이노엔은 보고 있다.

HK이노엔이 지난해 말 아스트라제네카와 손잡고, 당뇨병 치료제 포시가⋅직듀오⋅시다프비아 국내 유통을 맡은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포시가는 나트륨-포도당 공동 수송체2(SGLT-2)억제제 계열의 당뇨병 치료제이고, 직듀오는 포시가에 메트포르민을 더한 복합제다. 시다프비아는 포시가에 시타글립틴을 합친 조합의 신약이다.

HK이노엔의 '케이캡', 보령의 '카나브'. / 양 사

사실 포시가·직듀오는 대웅제약이 2018년부터 국내 유통을 했던 제품이다. 그런데 대웅제약이 지난해 SGLT-2 억제제 계열의 당뇨병 치료제인 '엔블로'를 출시한 데 이어 엔블로에 페트포로민을 더한 '엔블로멧'까지 출시했다. 아스트라제네카와 결별은 예고됐고, HK이노엔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이로써 대웅제약과 HK이노엔이 역류성 식도염 시장은 물론 당뇨병 치료제 시장에서도 한 판 맞붙게 됐다고 업계는 본다. HK이노엔의 모회사인 한국콜마홀딩스의 윤동한 회장은 대웅제약 출신으로, 대웅제약과 대웅제약 출신 신흥기업의 정면승부를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다.

◇ 친구에서 피튀기는 경쟁자로, GC녹십자·JW중외

GC녹십자와 JW중외제약(001060)은 친구에서 경쟁자로 경쟁자로 지위가 바뀐 경우다. 두 회사는 그동안 직접 경쟁하는 제품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 사이로 통했다. GC녹십자는 혈액제제와 백신이 주력이고 중외제약은 수액 사업이 주력이라 시장이 겹치지 않는다. 그런데 중외제약이 연매출 1조원의 블록버스터 혈우병 항체 치료제 '헴리브라'를 들여오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헴리브라는 로슈의 자회사인 주가이 제약이 개발한 혈우병 이중항체 신약으로, 지난 2019년 국내 허가를 받고 지난해 건강보험 급여까지 등재됐다. 혈우병은 혈액 응고 인자가 부족해 피가 잘 멈추지 않는 병이다. 기존의 혈우병 치료제들은 1주일에 2~3번 병원에서 정맥주사를 통해 혈액 응고 인자를 맞아야 했다면, 헴리브라는 15~30일에 한번 피하주사로 맞으면 된다.

JW중외제약 혈우병 치료제 '헴리브라'.(JW중외제약 제공)/뉴스1 ⓒ News1

헴리브라가 들어오기 전까지 국내 혈우병 치료제 시장은 GC녹십자가 막강한 지위를 갖고 있다. GC녹십자의 혈우병 치료제인 '애드베이트', '그린모노'의 시장점유율은 70%에 이른다. 국내 혈우병 환자 2000여명 대부분이 한국혈우재단을 통해 치료를 받는데, GC녹십자는 혈우재단의 관계사다.

한국혈우재단이 헴리브라를 '처방약물 목록'에 올리지 않으면서 재단 산하 병원은 약을 처방하지 않고 있다. GC녹십자는 지난해 8월 헴리브라의 부작용 사례가 기존 치료제와 비교해 2.83배 많다고 미국출혈장애학회 자료를 공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