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미국과 중국이 양국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제약 바이오 분야에서도 자국우선주의 법안과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두 거대 시장에 진출한 기업들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업계에선 국내 제약 바이오기업이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미국 하원이 중국 최대 유전체회사 BGI그룹 등의 미국 사업 금지를 골자로 한 이른바 ‘생물보안법(Biosecure Act)’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병원 등 의료 제공자가 중국 BGI 그룹 또는 그 계열사의 제품이나 서비스 사용을 금지하려는 게 주요 골자다.

법안이 제정될 경우, 미국 연방 자금을 지원받는 의료서비스 제공자는 중국 BGI 그룹과 그 자회사인 MGI테크(MGI Tech), MGI 자회사 컴플리트지노믹스(0Complete Genomics), 중국인민해방군과 연계된 우시앱테크(WuXi AppTec) 등 이른바 ‘적대적 해외 바이오기업’이 제조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이 금지된다.

해당 법안 발표 이후 중국 의약품 위탁 개발생산(CDMO) 기업 우시바이오로직스의 주가는 급락했다. 이미 미중 갈등과 중국 경제 불황 영향으로 수주가 감소하면서 지난해 실적이 부진한 가운데, 사업 활동에 불리할 수 있는 법안까지 발의된 것이다.

중국 BGI그룹은 해당 법안에 대해 성명을 내고 비난 목소리를 냈다. BGI그룹은 “미국인의 개인 데이터를 보호한다는 법안의 기본 전제를 전적으로 수용하지만 불행하게도 법안은 BGI를 미국에서 몰아내고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한 기업이 차지하는 실질적인 시장 독점을 더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며 “결국 미국인의 의료 비용을 증가시키고 기술과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제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두 나라간 갈등이 바이오 분야에까지 확산하면서 국내 기업들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일각에선 국내 기업에 기회가 더 생기거나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승규 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중국과 미국이 앞다퉈 자국 제약바이오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과 제도를 내놓고 있어 업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미중의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가 실제 강화한다면 한국 기업으로선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특히 중국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 위탁개발생산(CDMO), 컴파운드(COMPUND, 의약품 핵심원료물질),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위축을 받을 수 있는데, 이 분야에서 한국 바이오 기업이 긍정적인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본다”고 의견을 냈다.

시장에서는 스위스 론자, 중국 우시바이오로직스, 한국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이 경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세계 CDMO 시장에서 우시의 부진 속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수주 증가 기대감도 있다.

이런 해석이 최근 국내 증시에 반영되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주가가 상승세를 보였고, 5일 장중 52주 최고가인 86만7000원를 기록하기도 했다.

미국 메릴랜드주 화이트오크의 식품의약국(FDA) 본부 앞. /연합뉴스

지난달 말 미국원료의약품혁신센터는 미 백악관에 제출한 ‘담대한 목표, 5년 이내에 모든 저분자 원료의약품(API)의 25%를 리쇼어링’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앞서 2022년 9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속 가능한 바이오경제를 실현하고 미국 내 바이오 제조 강화하기 위해 내린 ‘행정명령 14081호’의 후속 조치로, 5년 내 미국에서 바이오기술을 통해 저분자 원료의약품(API)의 25% 생산 목표 달성을 위한 권장사항을 담은 것이다.

해당 보고서는 바이오 제조 기업과 정책 입안자들이 유휴 제조시설을 활용하기 위한 공공 인센티브 프로그램과 첨단 바이오 제조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또 합성생물학을 통한 바이오 제조 공정을 구현해야 하며 기술 구현에 드는 비용 해결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담겼다.

제네릭의약품의 경우 마진이 적어 리쇼어링에 따른 자금 부담을 해결할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권장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단기·장기적인 단계별 이행을 구분하고, 조정기관의 임명, 새로운 투자라인 구축, 규제당국과 담당 부처의 검토 등 포괄적인 접근방식이 필수적이라는 내용도 담겼다.

업계에선 미국 제네릭 의약품 대부분이 중국 또는 인도 원료 의약품이라는 점에서 이는 중국과 인도를 겨냥해 내놓은 것이라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오기환 바이오협회 전무는 “현재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원료의약품 시장이 중국과 인도 의존율이 높은데, 이를 낮추기 위한 일환으로 자국의 제조 역량을 강화하려는 정책이 검토되고 있는 것”이라며 “미국 내 원료의약품 공급망 불안 문제를 해소하고 안정화하려는 목적이 깔린 것”이고 해석했다.

그는 “해당 보고서 내용 만으로는 아직 국내 기업의 유불리를 따지기는 어렵다”면서 “다만 중국과 인도에 대한 산업 의존도를 낮추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공급망 안정화와 원료의약품 품질 개선을 위한 동맹국과의 협력 강화 등에 관한 구체적인 정책이 나올 지도 지켜볼만 하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 일본이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의 제약바이오산업이 일본에 대한 견제를 강화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이승규 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미중 갈등을 바라보고만 있다가 자칫 일본한테 대체 시장을 뺏길 수도 있다”며 “작년 7월부터 본격 CDMO 시장에 뛰어든 일본 후지필름이 현재 미국 4개 주에 공장을 설립 중”이라고 예를 들었다. 그는 “일본 기업과 일본 제약바이오산업 육성 정책 등도 계속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연홍 제약바이오협회장은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이 자국 우선주의 하에 제약바이오산업 육성과 지원책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국도 정부와 기업이 발빠르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